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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2) (행1:6-11)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2) (행1:6-11)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사도들을 통해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또 그 자신의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행1:1-5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공해주신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전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the example, 1-2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the faith, 3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셋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the might, 4-5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의 말씀도 그 연속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가 복음전파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한 비밀을 남겨놓으셨습니다(the mystery, 6-7절).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the mission, 8절).

셋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주셨습니다(the motive, 9-11절).

이제 말씀을 차례대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놓으신 하나의 신비한 비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mystery, 6-7절).  


6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은 어디였습니까? 오늘 본문 바로 뒤에 있는 행1:12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그들은 감람산(the Mount of Olives)에 모였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여기에 “묻는다”라는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형은 반복적인 동작을 나타낼 때 쓰이는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이 질문을 예수님에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유의 질문을 예수님에게 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하나님이 모세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듯이 저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예컨대 요6:14-15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기를 원했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런 바람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 되시면, 당연히 자기들도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 사이에는 자리다툼까지 생겼습니다. 막9:33-34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러더니 급기야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인사청탁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막10:35-37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입을 통해서 그들의 허탈한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눅24:21 상반부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희망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에 대한 기대가 다시금 제자들에게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또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셨습니까?

“그래, 참 좋은 질문을 했다. 너희들이 바라는 대로 우리 함께 힘을 합쳐서 이 나라를 한번 바로 세워보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7절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의 관심을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돌려놓고자 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하면 이스라엘 한 나라의 회복이 문제가 아닙니다. 온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나라의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오직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만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임할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의 결정은 오직 성부 하나님의 권한에 달린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24:36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신 바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면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때를 하나의 신비스러운 비밀로 남겨놓으셨을까요? 이는 다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때를 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주신 사명에 그다지 열심을 내려고 들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뭐!” 그러면서 세월아 네 월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예기치 않았을 때 갑자기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벧후3:10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또 계3:3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스러운 비밀로 남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과 그 때를 억지로 추정하려고 들지 맙시다.

여러 해전에 우리 나라에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어서, 한 때 교계가 어지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신비스러운 비밀로 남겨놓으신 것을 억지로 인위적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심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한다고 그들이 해야 할 일상적인 책임을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직장을 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학교를 떠난 학생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가정을 등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24:40-41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평소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가운데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눅19:1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과 아울러서 우리가 우리의 가정에서 해야 할 일들을 충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신비스러운 비밀로 남겨놓으신 것을 억지로 풀려고 들지 말고, 예수님의 뜻하신 바에 따라서 매일매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면서 맡은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mission, 8절).


오늘 본문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오직”(but)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시면서 그들의 관심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행1: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게 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될 두 가지 현상을 본문 행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나타나게 될 필수적인 현상입니다.

첫째는 권능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사용된 권능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두나미스”입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영어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면, 우리는 유한한 인간의 권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여기에 사용된 증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마르투르”입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영어의 순교자(martyr)가 나왔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단어가 순교자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일이겠습니까?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권능을 받을 때만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약 한 주간 정도 지났을 때, 제자들은 오순절을 맞이했습니다. 그 날을 기해서 제자들은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그 즉시 나아가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행1-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 때까지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핍박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예루살렘에만 머물러있는 제자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행8:1입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래서 제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행8-1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행13-28장까지는 복음이 그 당시로서는 땅 끝이라고 볼 수 있는 로마까지 계속해서 전해지게 된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서로 간에 적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니까, 그런 감정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권능이 생겼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니까, 자신들을 속박하고 핍박하는 로마인들에게까지도 얼마든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권능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1:8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엄청난 권능을 이미 우리의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이것을 터뜨리기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터뜨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복잡한 교리나 따지는 신학자로 세워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남녀전도회를 잘 조직해서 회장을 뽑고, 총무를 뽑으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증인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요일1:3 상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보고, 듣고, 아는 것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만큼,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신 만큼,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만큼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성령님이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동기에 대해서 살펴봅니다(the motive, 9-11절).


오늘 본문 9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광경을 황홀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구름이 예수님을 가리워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계속해서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홀연히 두 천사가 저들 곁에 서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절입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두 천사는 제자들을 가리켜서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이미 죽은 가룟 유다는 그 이름 그대로 유대 남방지방인 가룟 출신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열 한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어떠한 곳이었습니까? 요7:52입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갈릴리는 그만큼 천대받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처럼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어부나 세리 또는 목동으로 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사회적인 권세나 지위도 누리지를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니까 그들은 권능을 받고, 온 세계를 복음으로 뒤흔들어놓은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천사들이 오늘 본문에서 전하는 말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이제 하늘 나라로 되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우셨다,” “하늘로 가셨다”라고 두 번이나 그 사실을 반복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창세 전에 누리시던 본래의 영광을 되찾으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해서 천사들은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먼저 천사들은 “이 예수는”하면서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같은 모습일 것을 밝혔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창에 허리를 상하신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하면서 예수님은 오실 때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것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사실을 이미 마24:30에서 말씀하신 바가 있으십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적으로 또 오늘날에도 자신을 재림주라고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 그대로, 또 하늘로 가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우리에게로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또 저기 있다 하더라도 그런 말에 미혹을 받아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자신의 증인으로 삼으신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계22:12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사도 바울은 그 날을 바라보면서 고후5:9-10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힘써 복음을 전파했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에는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동기가 되어서 우리는 더욱 충성스럽게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입을 열어 예수님에 대해서 보고 듣고 아는 바에 대해서 전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구원을 받기를 계획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했을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들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길이 없어 우리의 두 손으로 우리의 얼굴을 감싸 쥐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면류관이 없는 우리의 머리를 부끄러운 듯이 예수님 앞에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찬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성찬에 참예할 때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거룩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고전11:26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힘써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 복된 소식을 힘써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 곧 복음전파의 사명에 늘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한 비밀을 남겨두셨습니다(the mystery, 6-7절).

둘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the mission, 8절).

셋째, 예수님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주셨습니다(the motive, 9-11절).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 것인가는 우리에게 신비한 비밀로 남아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이든지 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복음전파의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예수님은 우리가 충성한 대로 우리에게 상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잔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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