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창조! (창2:4-7)
창2: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은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천지 만물의 기원을 밝히 계시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대략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첫째 날에는 빛이 창조되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이 창조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육지와 육지에서 살아갈 식물들이 창조되었습니다. 넷째 날에는 하늘의 일월성신이 창조되었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어류와 조류가 창조되었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육지에서 살아갈 동물과 아울러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곱째 날에는 하나님이 안식하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복 주셔서, 그 날에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천지 창조의 첫째 날부터 창조가 완성된 일곱째 날까지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람의 창조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천지의 창조된 대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4절). 둘째, 창조된 천지의 환경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5-6절). 셋째,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7절).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마땅할 것인가를 깨닫고 새롭게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천지의 창조된 대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大略)이 이러하니라
여기에 “대략”(大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큰 줄거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문을 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오기에 앞서 먼저 그 전체의 내용을 간추린 제목이 등장합니다.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는 말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받는 느낌은 어떠합니까? 아마도 우리는 본문의 제목과 본문의 내용이 서로 간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제목이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면, 본문의 내용은 어떠해야 합니까?
당연히 천지의 창조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뒤따라 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는 천지 창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예컨대 첫째 날에 창조된 빛에 대한 설명이나, 둘째 날에 창조된 하늘에 대한 설명이 전연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는 창조된 사람의 거주지인 에덴 동산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남자의 돕는 배필인 여자의 창조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문과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은 전부 사람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제목으로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붙여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사람의 창조가 천지 창조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은 마지막으로 창조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그 날을 복 주셨던 것도 역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천지 창조의 중심은 사람의 창조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그 제목을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고 정하고서, 그 이하의 내용을 천지 창조의 중심인 사람의 창조와 그 이후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 있어온 존재가 아닙니다. 하등동물이 진화해서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천지 만물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명심하면서, 우리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우리의 성품을 다하고, 우리의 힘을 다하여 우리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창조된 천지의 환경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방금 읽은 말씀은 사람이 창조될 당시의 환경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피상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마치 오늘 본문이 좋지 못한 환경, 황폐한 환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상황은 그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창조될 때의 환경은 완벽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상태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모든 환경은 창세기 1장에 자주 등장하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이 창조될 때의 완벽한 환경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습니다. 둘째,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습니다. 셋째,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본문은 사람이 창조될 때, 주변의 환경이 완벽할 수 있었던 이유를 두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들에는 초목이 없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는 것이 완벽한 환경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경작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어떻게 완벽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아마도 얼른 이해가 가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본적인 한 가지 사실만 명심한다면, 본문의 뜻은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고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한 가지 사실만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환경은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 위에 서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의미를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들의 초목
오늘 본문은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사람이 창조되기 직전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천지 창조의 셋째 날 이미 모든 식물들은 각기 종류대로 아름답게 창조가 되었습니다.
창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창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여기에 나오는 모든 식물들은 죄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창조된 식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자, 그 때 새롭게 생겨난 식물들도 있었습니다. 어떠한 것들이었습니까?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자 그 때 비로소 생겨난 식물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들의 초목은 바로 이들 가시덤불이나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창조될 때,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이 아직은 나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땅이 저주를 받기 이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천지 창조의 셋째 날에 창조된 각종 식물들은 잡초들의 방해를 전연 받지 않고 마음껏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영양가 있는 열매도 풍성하게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양식으로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좋은 환경이었습니까?
(2) 밭의 채소
들의 초목과 마찬가지로 “밭의 채소”도 역시 타락의 결과로 생겨난 식물이었습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사람이 땅을 경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떡)을 먹고....
사람이 타락하고 난 후에,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리며 밭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농작물이 바로 “밭의 채소”였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밭의 채소”는 어떠한 농작물들을 의미하겠습니까? 방금 읽은 창3:19에서는 이를 “식물”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에 쓰여진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레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명인 베들레헴에 사용된 단어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레헴”의 뜻은 “떡”입니다. 그러기에 베들레헴은 “집”이라는 단어와 “떡”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떡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떡은 일반적으로 무엇으로 만듭니까? 우리는 쌀이나 찹쌀로 만듭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보리나 밀로 빵을 만듭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밭의 채소”란 사람이 타락한 후에 땅을 경작해서 수확해야 했던 여러 가지 곡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창조될 때,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사람이 재배를 해서 추수하는 곡물들이 필요하지를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식물들로도 양식이 넘쳐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 환경이었습니까?
(3) 땅에서 올라오는 물
오늘 본문 6절에서, 우리말 성경은 땅에서 올라오는 물기를 “안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 NIV는 이를 “시내들”(streams)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미루어보아 이는 “안개”보다는 “샘”이나 “시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얼마나 자욱할는지 모르지만, 안개만으로는 온 지면을 적시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온 지면을 적시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올라오다”라는 동사는 많은 물이 솟아오를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민21: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여기에 사용된 “솟아나다”라는 단어가 바로 오늘 본문에 사용된 “올라오다”라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만일 오늘 본문이 땅에서 많은 양의 물이 올라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면, 이는 안개를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샘이나 시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땅 여기저기에서 샘물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작은 시내들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시내들이 모여서 강을 이루었습니다. 강물은 온 지면을 적시기에 넉넉했습니다. 이는 바로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에덴 동산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창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 동산에 있는 식물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전연 필요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땅에서 솟아나는 물만으로도 넉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에 있는 모든 식물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도 좋은 환경입니까? 에덴 동산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 주일에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이 창조될 때, 주변의 환경이 어떠했는가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습니다. 아직은 땅이 저주를 받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가시덤불이나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식물들은 마음껏 성장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밭에는 곡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 풍성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수고로이 밭을 경작해야 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밭에 곡물이 있어야만 할 이유도 전연 없었습니다.
셋째, 땅에는 물이 넉넉했습니다. 식물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는 땅에서 솟아나는 물만으로도 온 지면을 적시기에 넉넉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때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창조될 때, 그 주변의 환경은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쾌적했습니다. 말 그대로 패러다이스, 곧 지상의 낙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모든 환경을 먼저 완벽하게 준비하시고, 그런 다음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창조될 때, 그 주변의 환경이 이와 같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5절은 두 가지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기 때문이었고, 둘째, 경작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 땅에 내리는 비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만으로도 온 지면을 적시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때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때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필요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동산”은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에 살았던 에덴 동산을 가리킵니다. 에덴 동산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에덴 동산은 땅에서 적당한 양의 물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전연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겼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은 비로소 땅에 비를 내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비가 내리게 된 것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땅에 내리시는 비는 종종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땅에 비를 아주 내리지 아니하시면, 땅에는 극심한 가뭄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땅에 너무 많은 비를 내리시면,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 심판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아직은 죄가 이 땅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아직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결과 땅에는 비를 필요로 하는 가시덤불이나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이 생기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5) 경작할 사람
사람이 창조될 때, 하나님은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들에는 아직 초목 곧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식물들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창조될 때, 경작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먹을거리가 풍성했기 때문에, 구태여 경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재배한 농작물이 필요하지를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No rain, no weeds. No man, no crops.”
“비가 없기에, 잡초가 없다. 사람이 없기에 농작물도 없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은 땅에 비를 내리셨습니다. 비가 오게 되자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이 생겨났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타락한 후에, 사람은 비로소 땅을 경작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밭에는 농작물이 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천지의 환경은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없었습니다. 농작물을 재배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물도 넉넉했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이와 같이 완벽한 환경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낙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좋은 환경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범사에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그러진 길로 가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고달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지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인해서 평안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 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날마다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1)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2)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3)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의 환경은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준비하신 후, 이제 하나님은 드디어 창조 사역의 절정인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그 방법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의 창조를 세 단계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셋째,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흙으로 지으심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단한 바위나 강철로 만들지도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찮은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와 같이 사람의 근본은 흙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생기가 떠나게 될 때, 다시금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18: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시103: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우리는 티끌과 같고 진토와 같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낮추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생기를 불어넣으심
사실 하나님은 사람만 흙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에게도 역시 생기를 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사람과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창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氣息)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노아의 홍수 때,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습니다. 여기에는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식이 곧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생기와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도 동물도 모두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똑같이 생기를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사람과 동물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각종 들짐승이나 공중의 각종 새들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그 순간, 그들에게는 자동적으로 생기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달랐습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한 가지 특별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사람처럼 입이 있으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오늘 본문은 보다 생생한 설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의인화시켜서 우리에게 설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만 친히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사실이 바로 사람과 동물 사이를 구별짓는 분명한 차이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동물과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흙으로 지음을 받은 질그릇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비천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우리에게 직접 생기를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언제나 힘있게 의지합시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심히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3) 생령(生靈)이 됨
“생령”이라는 단어는 창1:20, 21, 24, 28에서 이미 사용된 “생물”과 같은 단어입니다. “생물” 곧 “생령”은 사람이나 동물처럼 자의로 움직이며 이동하는 생명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식물의 경우는 생물에서 제외됩니다. 식물은 자의로 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비로소 생령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 때부터 사람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는 그저 사람의 모양을 갖춘 흙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생기가 사람 속에 들어가니까, 그 때부터 사람의 심장은 박동을 시작했습니다. 혈관을 따라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코가 열려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뜨여서 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온 몸의 조직과 기관이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7절은 우리들에게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명쾌한 설명입니까? 이 말씀 가운데는 진화가 들어갈 여지가 전연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와 사람 사이에 그 어떠한 중간 단계의 존재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No evolution her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요, 진토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친히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우리를 동물과는 다른 존귀한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본시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면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 좋은 환경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죄를 멀리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갑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의 삶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이 날마다 넘쳐흐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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