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창조! (창2:18-23)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절정을 이루는 사역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천지 창조의 마지막 날인 여섯째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천지 창조의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이루어진 사역은 창세기 1장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에 이루어진 사역, 특별히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는 창세기 2장에서 다시 한번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창조와 관련해서, 창세기 2장은 먼저 사람이 창조될 때의 주변 환경을 묘사했습니다. 그 때의 환경은 완벽했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상태였습니다. 아직은 땅이 저주를 받기 이전이었기에, 땅에는 가시덤불이나 엉겅퀴와 같은 잡초들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모든 식물들은 마음껏 성장하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땀을 흘리면서 밭을 경작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먹을거리가 풍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그 때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는 땅에서 솟아나는 물만으로도 온 지면을 적시기에 충분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에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은 창조 사역의 절정인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서 하나의 특별한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이른바 에덴 동산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물이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흐르는 강은 그곳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네 지류로 갈라졌습니다. 비손과 기혼과 힛데겔과 유브라데였습니다. 이와 같이 에덴 동산은 물이 넉넉했기에 그 만큼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시며,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 동산의 청지기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다스리며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그것을 먹는 날에는 그가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의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에 있는 내용들 이후에 되어진 일들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에 포함된 일들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자의 창조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1) 사람의 독처(獨處)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의 말씀은 천지 창조 여섯째 날에 하신 말씀으로서, 아직은 여섯째 날이 다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섯째 날이 끝났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창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러니 아직은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주변의 모든 환경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남자를 돕는 배필, 곧 여자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남자 혼자만으로는 누릴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 돕는 배필(配匹)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지 않도록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남자 혼자서는 하나님이 내리신 축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를 도울 수 있는 배필을 만들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를 가리켜 남자의 돕는 배필이라고 해서,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보다 못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돕는 배필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말씀드린 대로 남자 혼자만으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늘에는 많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또한 땅에도 많은 짐승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그 아무도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는 쓰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남자를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3) 동물들을 이끌어 오심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을 첫 사람 아담에게로 이끄셨습니다. 다섯째 날에 창조된 공중의 새들과 여섯째 날에 창조된 모든 육축과 들의 짐승들입니다. 여기에는 다섯째 날에 창조된 물고기들은 빠져있습니다. 물고기들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끄셨습니까? 물론 오늘 본문 19절에 기록된 대로,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각 생물들을 그 특성대로 일컬어, 그 이름들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당시의 아담은 창조된 지 불과 몇 시간도 채 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창조될 때부터 성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게다가 타락하기 이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담은 각종 동물들을 보면서, 그것들의 특성에 따라 그것들에게 이름을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1분에 열 종류의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면, 한 시간이면 600 종류, 다섯 시간이면 약 3,000 종류의 생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이름을 준 자가 이름을 받은 자에 대해서 주권과 소유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신대로, 이제 사람은 모든 생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서 그것들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각종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끄신 숨은 의도는 사실 다른데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끝 부분입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이 말씀을 좀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아담은 각종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것들을 눈여겨보았을 것입니다. 자연히 아담은 모든 동물들이 각기 암수의 쌍으로 되어있음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동물들 가운데서 자기에게 적합한 배필을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도 동물도 똑같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생기가 주어졌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똑같이 생물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동물들 가운에서는 자기에게 적합한 배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은 자기 앞을 지나가는 동물들 가운데서 자기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를 찾아내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아담은 자기만이 독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동물들을 이끄심으로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무엇을 하시려는지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처하고 있는 아담에게 그를 돕는 배필, 곧 그에게 적합한 배필을 지어주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에게 혈육의 가족도 주시고, 믿음의 가족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도우며,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를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 생활을 비롯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독처하려고 들지 말고, 사랑 가운데 서로를 도움으로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과정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생기를 그의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실 때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은 여자의 창조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심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선지자 요나도 깊이 잠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였습니다. 그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웠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깊이 잠들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깊은 잠이었습니까?
바다에서 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그가 탄 배가 거의 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사공들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배 안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담도 그 정도로 깊이 잠들었습니다. 단지 요나와 아담 사이에 한 가지 차이점은 있었습니다. 요나가 빠졌던 잠은 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빠졌던 잠은 초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에덴 동산을 창설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를 뽑아낼 때, 아담이 당해야 할 고통을 덜어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때의 아담은 타락하기 이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은 그 어떠한 고통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담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담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깊이 잠자는 동안에,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무슨 일이든지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깁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갈빗대 하나를 취하심
하나님은 깊이 잠든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셨습니다. 뒤에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갈빗대는 뼈뿐만 아니라, 거기에 붙은 살과 피 등등을 총망라해서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담의 몸에서 그의 손이나 발의 일부를 취하셨으면, 아마도 아담은 신체 장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많은 갈빗대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갈빗대 하나가 빠져나갔더라도, 아담이 신체를 유지하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남자의 갈빗대는 여자의 갈빗대보다 그 수가 하나 더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뒤에 커가면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사고로 갈빗대 하나를 빼어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녀들이 갈빗대를 하나 적게 가진 몸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 하나가 빠져나갔다고 해서, 그의 후손들에게 갈빗대 하나가 적어야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여자가 창조되던 시점에서는 남자의 갈빗대가 여자의 갈빗대보다는 하나가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이 갈빗대의 수는 똑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살로 대신 채우심
하나님은 깊이 잠든 아담의 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옆구리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곳을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은 여셨던 아담의 몸을 다시금 덮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나 흉터가 남아있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의 몸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깨끗했을 것입니다. 그의 몸을 열었던 흔적조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갈빗대는 골막(骨膜)이라는 섬유성 조직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골막은 갈빗대에 영양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갈빗대를 재생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따라서 갈빗대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더라도, 골막만 온전하면 갈빗대는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내셨지만, 그 대신 그 곳을 살로 채우셨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몸 안에는 골막이 온전하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서 아담의 갈빗대는 멋지게 재생되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은 활동하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상처가 있으십니까? 하나님에게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처를 깨끗하게 싸매어,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4)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심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남자의 경우, 하나님은 그를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흙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남자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보통은 남자보다 여자가 자기 자녀에 대해서 더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자식들에게 신경 쓰는 것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남편인 자기에게도 신경을 좀 써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자분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그토록 강한 애착을 보입니까? 자기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와는 아담의 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담은 하와를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는 그의 저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1a, 92, 3c)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여자를 남자의 머릿뼈로 만들지 않으시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짓밟힘을 받지 않도록 여자를 남자의 발뼈로 만들지 않으셨다.”
물론 우리가 갈빗대의 위치를 가지고 논하자면,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점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갈빗대는 팔 밑에 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또한 갈빗대가 옆구리에 있기 때문에, 여자는 늘 남자 곁에 있어야 한다 등등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의 옆구리가 열렸습니다. 그 결과 그의 신부인 하와가 탄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옆구리가 열리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이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합시다. 아울러 우리도 예수님처럼 교회를 지극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심
조금 전에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스스로 자신이 독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독처하고 있는 아담의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로서 에덴 동산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지 못하던 한 가지 요소, 곧 아담의 독처하는 것이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창1:31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은 아담의 필요를 미리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심으로, 아담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아담의 필요를 다 채워주셨습니다.
아담이 제공한 것이라고는 그의 갈빗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충시켜주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그를 돕는 배필을 선물로 안겨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에게 작은 것을 드리고, 큰 것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의 원리요, 비결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맡깁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기꺼이 드립시다. 하나님은 그것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신 결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창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1)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시는 동안, 아담은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물론 아담은 그 동안에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그 간에 되어진 일들을 밝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은 그를 전혀 생소하게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아담은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 여자를 왜 창조하셨으며 또한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창1:1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은 모두 산문(散文, prose)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3절은 운문(韻文, poetic verse)으로 되어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짤막한 사랑의 시 한 수를 지어바쳤던 것입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연가(戀歌), 곧 사랑의 노래(love song)였습니다. 그만큼 아담의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 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는 순간, 저절로 그의 입에서 사랑의 노래가 한 수의 시가 되어서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살펴봅니다.
(2) 이는
아담의 시에서 제일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이” 또는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입니다. 아담의 시에서 제일 앞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두 번이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세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이를) 여자라 칭하리라.”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가운데서는 자기의 배필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실 때, 아담은 그 즉시 그가 바로 자기가 찾는 배필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이제야 말로 내가 나의 배필을 찾았다. 바로 여기에 내가 찾던 나의 배필이 있도다.”
아담은 그 동안 찾지 못했던 배필을 이제야 비로소 찾게 되었습니다. 하와만이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세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3)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와는 동물 가운데서 취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흙으로 지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담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와를 가리켜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뼈와 아담의 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와는 아담의 돕는 배필로서 적합했습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 다음절인 24절 말씀처럼, 아담과 하와는 연합해서 한 몸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이나 친척을 가리킬 때, 혈연관계(血緣關係) 곧 서로가 같은 핏줄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와에게 한 말에 따라서,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뼈와 살로 그들의 동질성을 강조합니다.
창29:14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骨肉)이로다 하였더라(라반이 야곱에게)
삿9:2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아비벨렉이 세겜 사람들에게)
삼하5:1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에게)
물론 하와는 문자 그대로, 사실 그대로 아담의 뼈요 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 말은 가깝고도 친밀한 가족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아담의 시 상반부는 아담과 하와의 동질성을 밝히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4)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오늘 본문에 사용된 지시대명사는 히브리어로 여성형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갈빗대가 여성형 명사입니다. 따라서 우리말 성경에는 지시대명사를 “이것”이라고 번역함으로서, 마치 지시대명사가 갈빗대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을 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그 뒤에 또 다시 세 번째로 똑같은 여성형 지시대명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여자라 칭하리라.”
만일 오늘 본문에서 여성형 지시대명사가 갈빗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아담은 결국 갈빗대를 가리켜 여자로 부른 셈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지시대명사는 세 번 모두 처음 여자 곧 하와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영어성경 NIV는 이 부분을 이와 같이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NIV는 히브리어 여성형 지시대명사를 갈빗대로 보지 않고, 처음 여자 하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NIV는 히브리어 여성형 지시대명사를 “she”로 번역한 것입니다.
(5) 여자라 칭하리라
얼마 전 아담은 각종 동물들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주권과 소유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아담이 하와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아담이 하와를 다스리고 지배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창2:19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to call, 능동태)
창2:23 ....여자라 칭하리라(to be called, 수동태)
다시 말해서 아담은 지금 하와에게 여자라는 이름을 지어서 부여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와가 남자에게서 취함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라고 불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말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영어의 man과 woman이 서로 비슷한 음을 가지고 있듯이 히브리어의 남자와 여자도 비슷한 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남자를 이쉬(Ish)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를 잇솨(Ishsha)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히브리어로 남자와 여자는 비슷한 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릅니다. 히브리어로 남자는 “강하다”(strong)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부드럽다”(soft)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담은 하와에게서 여성의 부드러움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울러 아담은 자기가 남자이기에 강하다는 사실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담은 강한 남성인 자기가 부드러운 여성인 하와를 보호해주겠다는 마음을 자기의 시에 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시 전반부는 서로 간의 동질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뼈요 같은 살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담의 시 후반부는 서로 간의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담은 남자로서 강하고 하와는 여자로서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자는 강해야 합니다. 여자는 부드러워야 합니다. 남자가 강하지 못하면, 남자답지 못합니다. 여자가 부드럽지 못하면, 여자답지 못합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자는 여자답게 부드럽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아담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도 먼저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범사에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합시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깁시다. 그리함으로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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