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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사도행전 1장 3 - 8절(개역개정)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부터 저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설교를 몇 주 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설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흔들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아주 가벼운 문제로 시험이 들어서 신앙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시험이 될 만한 문제도 아닌데 신앙이 뿌리째 뽑혀나가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작은 문제로 흔들리고 또 신앙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것일까요? 신앙의 기초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심고 며칠 후에 잡아당기면 아무런 무리 없이 쉽게 쏙 뽑을 수 있습니다. 나무를 심은 지 몇 달이 지나서 잡아당기면 좀 힘이 들기는 하지만 뿌리째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은 지 몇 년이 된 나무는 손으로 잡아 당겨서 뽑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 차이는 보이는 부분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 때문입니다.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가 뿌리를 얼마나 깊이 내렸는가의 문제입니다.
건물을 크고 높게 지으려면 반드시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집을 크고 높게 지으려면 신앙의 기초가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이다” 막 4:11을 보니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이해되고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택하신 사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알게 하시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언급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본문에 보니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나타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사역자들의 설교의 중심도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행 8:12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할 때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습니다. 행 19:8과 20:25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말씀을 전했는데 주제는 하나님나라였습니다. 행 28장에서도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셋방살이를 하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르쳤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론 부분에서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였고, 초대교회 사역자들의 메시지의 핵심 역시 하나님의 나라였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세상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세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 피조세계 안에 마귀가 임금으로 다스리는 마귀의 나라가 있습니다. 요 16:11에 보니 마귀를 ‘이 세상 임금’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마귀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을 위임 받은 인간이 죄를 범하여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 안에서 마귀가 다스리는 곳은 마귀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다스리느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한반도에 있지만 휴전선 이북지역은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이고, 휴전선 이남지역은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인 것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 안에 있지만 마귀가 다스리면 마귀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는가 마귀의 나라에 속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사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떠나서 마귀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축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2. 이미 시작 되었으나 아직 완성 되지 않은 나라
마 12:28에 보면 우리 주님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제자들 안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귀가 통치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막 4:30-32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과 같이 작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님들의 수고로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나무처럼 자랐고 계속해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문도는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그렇게 작게 시작 된 하나님의 나라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약 2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릴 만큼 확장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재림 하신 후에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3.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나라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응답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알아맞히고 꿈을 해석해주었습니다. 왕이 광채가 매우 찬란하고 무섭게 생긴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렸으며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 여기서 금머리는 느부갓네살 왕이며 나머지 은과 놋과 철과 흙은 느부갓네살 왕 이후에 나타날 제국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상을 쳐서 부순 돌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단 2:4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견고한 나라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 나라와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4. 현재는 내면적이라 보이지 않지만 장차 분명하게 나타날 나라
눅 17:20,21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내면적인 것입니다. 롬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아멘.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내면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상 초창기의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6.25동란 무렵에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에 붙잡혔습니다. 끌려가서 심한 고문과 조롱을 당하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한 공산당원이 이 목사님을 끌고 가서 또 고문을 하다가 아주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감, 나한테 천국 좀 보여 줄 수 있어?” 하고는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이 목사님은 발길에 채이면서도 “예, 보여드리지요.”하고 말했습니다. “야, 죽어서 가는 천당 말고 지금 당장 보여주란 말야.” 하고는 또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예, 지금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이 목사님의 말에 공산당원은, “어떻게 보여주냐?”고 하며 또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은 “예, 천국 본점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까 보여 드릴 수 없지만 지점이야 내가 보여 드릴 수 있지요. 그 천국 지점이 바로 제 마음입니다. 내 마음에 천국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면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내면적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 1장에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서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에게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현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내면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면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서 점차적으로 현실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커피 향과 같습니다.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면 구석구석 커피 향이 진동을 합니다. 오랜 시간 커피를 끓였기 때문에 구석구석 커피향이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내면적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는 곳에 커피 향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가 나고, 직장에 있으면 직장에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가 나고, 학교에 있으면 학교에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면 마귀의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게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계시록 21,22장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과 하늘은 불타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을 것입니다. 거기는 12개의 진주 문이 있습니다. 한 문은 한 개의 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벽은 온갖 보석으로 가득할 것이며, 길은 유리처럼 맑은 정금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광채 때문에 해와 달과 별의 빛이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는 죄도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습니다. 영원한 행복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은 내면적이지만 장차는 눈에 보이게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5.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투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마귀의 통치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통치가 사라지려면 반드시 영적 전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투에 승리한 곳에 마귀의 통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6.25 전에는 38선 이라고 했고 지금은 휴전선이라고 합니다. 간혹 38선과 휴전선을 혼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38선과 휴전선은 다릅니다. 38선은 신탁통치를 위하여 북위 38도선을 따라 선을 그은 것입니다. 휴전선은 6.25 전쟁 중에 남과 북의 군대가 정복한 만큼 다시 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남쪽 땅이었는데 지금은 북쪽 땅이 된 곳이 있고, 전에는 북쪽 땅이었는데 지금은 남쪽 땅이 된 곳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6.25 전쟁 중에 남과 북의 군대가 정복한 만큼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이런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마귀의 통치가 있는 곳은 마귀의 나라입니다. 나라의 개념은 전투적인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는 성령님을 힘입어서 악한 영들과 싸우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신데 감히 마귀가 어떻게 성령님을 이기겠습니까. 마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힘입어서 마귀를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6. 거룩함으로 누리는 나라
고전 6:9,10을 보면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완전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같은 교회에 나오고 같은 시간에 같은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사람은 천국이 가슴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반면에 같은 교회에 나오고 같은 시간에 같은 예배를 드리지만 전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함의 차이인 것입니다.
추운겨울에 가슴에 난로를 품고 있으면 따뜻하지만 가슴에 얼음을 품고 있으면 추워서 덜덜덜덜 떨게 되어있습니다. 거룩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만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7. 우리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나라
집을 세우려면 가족들의 헌신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인 우리들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살후 1:5에 보면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행 14:22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편하기만 원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도 받고 수고도 하고 환난도 감당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자녀로 부르기도 하셨지만 또 하나님의 나라의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고전 3:9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는 왕 혼자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왕과 백성들이 협력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셔서 우리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골 1:29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자기도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준비하는데 군대생활을 할 때 했던 목봉체조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번에 건강검진을 할 때 제 키가 168cm이 나왔습니다. 전 보다 1cm가 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생활 할 때 속했던 부대는 평균키가 178cm이었습니다. 평균이 제 키보다 10cm가 컸습니다. 제가 키가 작으니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키가 작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목봉체조였습니다. 목봉이 다른 사람들의 어께에 닿는데 제 위에서는 공중에 떠있었습니다. 10명이 목봉을 잡았다면 저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저는 편한데 다른 사람들은 제몫까지 드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수고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주어진 곳에서 충성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 목봉을 들 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수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수고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8. 사람 차별이 없는 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민족과 비교하면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선민의식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눅 13:28-30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교만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겸손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이라고 쉽게 들어가고 이방인이라고 어렵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은혜를 받아드리고 믿음으로 반응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종교인들은 교만함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천국에서 큰 자들이고 세리와 창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 21:31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세리와 창녀의 직업이 추천할만한 직업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세리나 창녀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드리고 주님의 공로를 의지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출신이 어떻든 상관없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차별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회당에는 특별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좌석을 ‘췌찬’이라고 하는데 특별석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떤 공연장에 가면 VIP 좌석이 따로 있습니다. 그 좌석에는 아무나 앉을 수 없고 특별한 사람들만 앉습니다. 회당에서 안내하던 사람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금반지를 끼고, 부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특별석(췌찬)으로 자리를 안내했습니다. 반대로 회당에 들어올 때 남루한 옷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서서 예배를 드리든지, 바닥에 앉아서 드리든지 상관치 않았습니다. 이런 차별은 하나님의 나라 밖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인사동에 승동교회가 있습니다. 승동교회의 초대 목사님 중에 왕손이 있었습니다. 이 왕손은 마부의 말을 타고 유람을 다니는 게 취미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부가 중화동에 있는 경동제일교회에서 지금의 전도사처럼 교회를 섬기는 영수라는 직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엄 영수라는 분이셨는데 하도 기도를 많이 하셔서 이마에 혹처럼 굳은 삶이 박히신 분이셨습니다. 기도를 할 때 하도 마루바닥에 이마를 부딪히면서 기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엄 영수가 왕손을 말에 태우고 유람을 하는 왕손에게 전도를 합니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지요?” 왕손이 자기 마부에게 핀잔을 줍니다. “예수를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엄 영수가 왕손에게 대답합니다. “나으리, 예수 믿는 도리를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합죠”
왕손의 집이 인사동 승동교회와 같은 담벼락을 하고 있었답니다. 왕손이 유람을 다니는 동안 그 부인과 딸들이 인사동교회의 교인이 되었답니다. 결국 왕손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승동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왕손도 참여했습니다. 왕손이 부흥회에 참여하여 보니 예배당 앞쪽에 자기 마부 엄 영수가 와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자기 마부에게 “형님”하고 불렀습니다. 엄 영수가 돌아다보니 자기 왕손 나으리였습니다. 기겁하여 “제게 형님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왕손의 대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다 같은 형제인데,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습니까?”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도 사람 차별이 심한 법인데 당시 양반과 상놈이 분명히 구별되는 반상문화 속에서 보통 양반이 아닌 왕손이 상놈인 마부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건 정말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승동교회에는 당시 가장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많이 모였었습니다. 승동교회의 최초의 장로도 백정이었습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사람이 교회의 리더쉽이 된다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당시 교회의 문화였습니다. 사람을 깔보고, 차별하고, 업신여기는 당시 반상문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주 탁월하고 우월한 문화였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문화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차별이 없습니다.
목화이야기로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고려는 솜이 없어서 겨울이면 백성들이 추위에 떨었습니다. 옷도 얇고 이불도 얇아서 춥게 떨며 살았습니다. 당시 중국 원나라는 외국에 목화씨가 밀반출되지 않도록 국경의 검문검색을 심하게 했습니다.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몰래 짚신에 숨겨서 들여오다가 발각돼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선생은 붓 뚜껑 속에 목화 씨앗 3개를 숨겨서 검문검색을 통과해서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내려가 장인과 함께 씨앗을 정성껏 심었습니다. 3개 중 하나는 죽은 씨앗이라 싹이 나질 않았고, 1개는 얼마 후 죽었습니다. 나머지 1개가 열매를 맺고 종자를 퍼뜨리기 시작해서 10년도 못되어 온 나라 안에 목화 꽃이 만발하게 되었고 겨울이면 헐벗고 추위에 떨던 백성들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어서 온 나라에 목화가 가득하게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시고 계십니다.
저는 18살에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제 안에 하나님의 나라의 싸앗이 심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저희 가족들이 복음을 받아드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을 통해서 이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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