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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누가복음 5:1-11(개역개정)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저와 여러분은 늘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도생활입니다.
제가 시화문화교회에 부흥회를 갔을 때 들은 간증입니다. 공장을 하는 시아버지가 고사를 지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고사를 지내는 것이 신앙 양심상 허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집사님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막아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고사를 지내려고 상을 펼쳐놓고 떡을 올려놨는데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불었던지 제사상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사 지내려고 했던 떡을 교회에 가져와서 성도들과 나눠먹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고사상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고사를 지내려고 돼지머리를 삶았는데 이번에는 귀를 태워먹었습니다. 결국 시아버지는 재수 없다고 제사를 드리지 않았답니다. 우리가 불신자들과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싸울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도 주시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할 때는 행동해야 됩니다.
저는 하나님을 좋으신 아버지로 믿습니다. 좋으신 아버지는 우리의 실패나 약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친 상태로 내일을 위해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고 베드로의 배에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을 하셨고,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하자 두 배가 잠길 만큼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으로 주님의 신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만약 그 밤에 베드로가 많은 고기를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고기를 처리하느라고 주님에게 배를 내드릴 수 없었을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밤에 고기잡이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요 5:17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실까요? 오늘 설교는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1. 주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4절).
우리 주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천지창조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 1:3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말씀합니다.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4절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베드로가 순종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실 때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과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믿음을 갖게 만드십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만지면 전기가 통하듯이 성령께서 감동하여 기록한 성경에는 성령의 영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한 도둑의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 도둑이 낮에는 실컷 자고 밤에 일어나 출근하려고 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그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어느 집을 털까?’하고 고민하는데, 기다란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오늘 밤에는 저 집을 털자.’하며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 침대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침대마다 아가씨들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집에는 딸만 있구나.’ 하며 책상 서랍도 열어 보고 이것저것 훔칠 것을 찾았지만 돈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털고 나오는데, “손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바라보니 한 딸이 일어나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도둑은 그 보따리를 들고 나오면서 “도둑질하다가 별 일을 다 경험하는구나.”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도둑은 궁금해서 얼른 보따리를 풀어 보니 성경책이 나왔습니다. 도둑에게 성경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는 재수 없다고 생각하며 성경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습니다.
몇 년 후 어느 날 밤, 그가 물건을 훔치러 나가려고 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비가 오니 오늘 하루만 쉬자.’하며 그는 자리에 다시 누웠습니다. 그러나 낮에 잠을 실컷 잤으니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는데,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에 물건을 훔치러 갔다가 훔칠 것이 없어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손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이거라도 가지고 가세요.”라고 하던 아가씨가 생각났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그 성경을 어디에 두었지?’하며 찾아보니 책상 한 곳에 그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아가씨를 생각하며 책을 폈습니다. 눈에 딱 들어오는 글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 말씀이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그 순간 그는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아니! 이 책이 내가 도둑인 것을 어떻게 알지?’ 그는 새벽에 자기 발로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둑질하는 것을 청산하고 잡화상을 시작했는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보고 목사님께서 다른 교회의 한 노처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처녀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첫 날 밤에 두 사람이 감사 기도를 하고 촛불을 끄려 하는데, 신부가 소리쳤습니다. “잠깐만요!” 신부가 책꽂이를 바라보더니 성경을 뽑아 들고 말했습니다. “이건 몇 년 전에 내가 선교원 기숙사에 있을 때 어떤 도둑에게 준 건데” 그러자 신랑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 도둑이었소.” 두 사람이 부등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성경을 펴니 하필 에베소서 4장 28절이 어찌 눈에 들어옵니까?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도둑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2. 주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주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대리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공생에 기간 동안 가장 힘을 쓰셨던 일이 사람을 준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제자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그 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의 대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본문에는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주님이 어떤 사람을 쓰시는가,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성실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2절).
베드로의 장점은 성실함인 것 같습니다. 2절을 보면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힌 것이 없는데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수 없는 밤이었다고 생각하고 술판을 벌이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물을 내버려두고 잠이나 자지 않았습니다. 내일 또 고기 잡으러 가야 하니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성실한 사람을 쓰십니다.
잠 28:10에 보니 성실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잠 28:18에서는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구원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을 주십니까? 성실한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실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생활도 성실하게 해야 하고 사회생활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나 안 보나 언제나 성실해야 합니다.
서구 문명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를 꼽으라면 미켈란젤로일 것입니다. 그는 30대 초반일 때, 로마 교황인 쥴리우스 2세로부터 12사도들의 그림을 그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일단 일을 받아들이자,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림을 그린 4년 동안 항상 누워서 시스틴 성당의 천장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는 꼬박 4년을 보내고 나서, 늙고 지쳤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37세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친구들은 이미 늙어버린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린 시스틴 성당의 수채화는 너무나 정교하여 실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그림은 그림을 주문한 교황을 기쁘게 하였고, 바티칸으로부터 그는 다른 작품을 의뢰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유럽화풍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의 예술적인 재능 때문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자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가 시스틴 성당의 벽화를 그릴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어두운 시스틴 성당 구석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을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때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성실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실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2) 주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4,5절).
R.A.토레이 박사는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는데 그 권능을 받는 데는 오직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절대 순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4,5절을 보면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는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시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은 ‘아침’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는 날이 밝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는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아침은 고기 잡을 때가 아닙니다.
둘째, 장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깊은 곳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물로 잡으려면 얕은 곳에서 잡아야합니다. 장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셋째, 베드로의 피곤도 문제였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지치고 피곤했습니다.
넷째, 직업도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출신이요, 시몬은 한평생 고기를 잡은 어부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니 베드로가 고기잡이를 15년을 했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든지 15년 정도하면 전문가입니다.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을 했다면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공부 하고 경험해도 따라 갈수 없는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 핑계를 댈 수도 있었고,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것입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지만물의 주관자 이십니다.
신앙생활은 절대순종생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적인 순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이제 갓 운전면허를 딴 아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도 면허증을 땄으니 차 좀 빌려주세요?” 아들의 말에 목사님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그래, 한 가지 약속을 하자! 네가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고, 매일 조금씩 성경공부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깎는다면 네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얼마쯤 지나자 아들이 다시 아버지께 와서 차를 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학교 성적도 오르고 매일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왜 머리는 아직도 깎지 않았니?” 그러자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동안 성경공부를 좀 했는데요. 삼손과 모세, 그리고 예수님까지도 머리를 기르고 다니셨더라고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충고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그분들은 어디든지 두 발로 걸어 다니셨단다. 너도 두 발로 걸어 다녀라!” 우리는 이 아들처럼 선택적인 순종을 하는데 주님은 절대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말씀하시고, 설교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3) 주님은 예배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8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주님에게서 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8절에 보니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위대하심을 안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을 아는 사람은 자발적인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예배생활이 달라집니다. 예배가 중요해집니다. 예배에 큰 가치를 두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예배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영국의 황금시대를 연 수상으로 지금까지 존경을 받는 정치인은 그랜드 스톤입니다. 그는 수상을 네 번이나 했고 그가 나라를 다스릴 때 그 나라가 얼마나 편안했는지 모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복을 받으면 나라도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랜드 스톤은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내 아버지 하나님 교회의 예배석이 더 귀하고 빛난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세상에 믿음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장점은 예배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임재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감동하십니다.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예배 중에 자기 백성들을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자를 쓰시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몇 년 한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자기 방에서 장난감 벽돌을 가지고 이것을 높이 쌓으면서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벽돌을 쌓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너 뭘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뒤돌아보면서 “쉿! 아빠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대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데 얼마나 한이 맺혀 아이가 교회를 짓고 있을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대견하여 한 마디 더 물었습니다. “애야,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참! 교회에서는 조용해야지요. 사람들이 다 잠들었으니까요. 떠들면 깨잖아요.” 참 슬픈 예화죠.
예배시간은 대통령을 만나는 시간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예배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4) 주님은 자신이 죄인인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8절).
8절에 보니 베드로가 주님 앞에 엎드려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죄인인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멸망당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와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주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아드릴까요?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하려면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죠.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사람은 주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를 의지하기 때문에 주님이 내미는 구원의 손을 잡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할 때 시작 되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가 온통 공황으로 허덕이던 1857년 9월에 제레미야 램피어라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이 사람도 경제적으로는 망했지만,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들에게 열두시부터 한시까지 교회에서 열리는 기도모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전단지를 나눠주었습니다. 우리가 이왕에 이렇게 망했으니 잠시 하나님의 집에 들러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자 노숙자들은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냐고 생각하며 기도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주에는 여섯 명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 주에는 20명, 그 다음 주에는 40명으로 참석자 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여섯 명으로 시작된 9월의 기도모임이 11월에 가서는 무려 1만 명의 상인들이 모이는 대규모 기도모임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은행 공황이 찾아와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며, 우리에게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찬양 인도도, 설교자도 없고 10분이든, 20분이든 자유롭게 모여서 기도하는 이 모임은 급기야 뉴욕 타임스의 사설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전역에 이 소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미국에 동일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흥의 여파로 1858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한 주에만 5만 명의 새신자들이 교회에 등록하는 기록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2년 동안에 무려 백만 명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고, 미국은 은행 공황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부흥은 믿음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 되었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불이 붙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기도부흥이 곧 경제부흥’이라는사실입니다.

5) 주님은 결단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11절).
신앙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김유신 장군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습니다만 그는 삼국을 통일한 장군으로 유명합니다. 김유신 장군의 일화를 보면 그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좋아하는 술집 기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할 내가 여자의 품에서 썩고 있구나. 내 젊음, 내 삶의 모든 힘이 여기에서 썩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여자를 떠납니다. 그런데 하루는 말을 타고 졸다 보니 자기 말이 습관을 따라 그 기생의 집 앞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생이 뛰어나와 “서방님!”하며 김유신 장군을 환영합니다. 그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러다가는 나의 결심이 도루묵이 되겠구나.’ 그는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치고 그곳을 떠납니다. 그렇게 비장한 결단력이 있었으니 그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1절에 보니 베드로는 주님을 경험한 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주님에 대한 확신이 오자 고민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결단력 있게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뜻이 알아지면 결단력 있게 반응해야 합니다. 결단력 있게 반응한다고 해서 모두가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신자들에게 큰일을 명하시기도 하지만 큰일을 명하시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위하여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감동을 주시며 그 감동에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비전과 감동에 따라 결단하고 순종하면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일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세상, 하나님의 뜻과 육신, 하나님의 뜻과 내 뜻, 하나님의 뜻과 인정, 하나님의 뜻과 돈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하나님의 뜻과 그것 사이에서 갈등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단호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하나님의 뜻과 그것 사이에서 갈등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선악과입니다.
인간은 정말 잔인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로마시대에 행해졌던 검투입니다. 그런데 이 검투가 사라지게 된 것이 한 검투사의 결단력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결단력을 사용하셔서 잔인한 검투가 로마에서 사라지도록 일하셨습니다.
로마의 검투사인 델리마쿠스는 자신의 칼에 맞아 죽어 가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던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앙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검투를 끝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검투장에 들어가도 검투를 하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만약 검투사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거나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 그건 바로 죽음입니다. 그는 결단하고 검투장에 들어가서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무도한 검투를 끝낼지어다.” 그러자 상대방이 비웃으며 그를 칼로 찌릅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외칩니다.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무도한 검투를 끝낼지어다.” 검투사들은 그의 진지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한 사람, 두 사람 검투를 그만두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로마에서 검투 경기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결단력 있게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로마의 악한 전통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결단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쓰임 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계속 됩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의 손에 붙잡힘 받아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사람을 쓰십니다. 주님은 성실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그리고 예배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죄인인줄 아는 사람, 그리고 결단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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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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