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사야55:6~9
제목: 주님이 만나주는 사람
일시: 2000년 11월 12일 주일낮예배 설교: 최일환 목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설교:
우리가 복을 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복을 만남을 통해 베푸십니다. 父母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을 받게 하시고 親舊와의 만남을 통해 올바른 인격을 갖추게 하시고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하십니다.
配偶者와의 만남을 통해 행복을 누리게 하시고 子息과의 만남을 통해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모든 것이 만남의 관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의 만남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에게 놀라운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갖가지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려면 주님을 온전히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합니까?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유대백성들을 향해 외친 메시지입니다. 당시 유대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 열강을 의지하면서 우상 숭배와 각종 악을 행하는 죄악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멸망을 선포하고 포로로 잡혀 갈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회복의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용서 하실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만나 주시는가를 교훈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님이 만나 주시는 사람되려면
1. 때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6절)
전도서 3장을 제가 잠시 읽어봅니다.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를 알지 못하여 고생을 더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때를 알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을 때, 은혜를 받을 때, 쓰임을 받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정한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를 놓치면 그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오기 어렵습니다.
아무때나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 같으나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치면 더 이상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실 때 그를 불러야지 그 때를 놓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날만한 때/ 가까이 계실 때/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바로 지금을 말합니다.
언제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언제든지 기도 할 수 있고 언제든지 예배 드릴수 있는 지금을 말합니다.
이때는 언제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내 맘대로 얻어 지는 때가 아닙니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때를 잃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은 기도의 때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때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때를 놓치면 엄청난 후회를 합니다.
베드로가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음으로 주를 배신합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여리고 성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아 새 삶을 누렸습니다.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보고싶어 길가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체적으로 그는 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환경 때문에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를 만날 기회는 우리에게도 수시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생에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어느 때인지 모릅니다. 성령이 역사 하시는 그때, 주님이 내 속에서 강하게 역사 하실 그때, 그때가 어느 때인지 알 수 없기에 주어지는 기회들을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예배도 그렇고 저녁예배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한순간 임하는 주님의 은혜가 내 생애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알고 그때를 기다리시기를 축원합니다.
祈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번 기도할 때마다 만나주시지만 어느 시간 어느 때 우리 소원이 일시에 응답될 수 있습니다. 혹시 그 때를 자꾸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奉仕도 역시 그렇습니다. 몇 년 동안 주를 위해 봉사해도 별다른 은혜를 누리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실망치 마시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하셨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할 사람이 없다고 염려된다고 수고하시는 권사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이 사람도 안 된다 저 사람도 안 된다합니다.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어린양들을 돌보려는 교사가 없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제게 확신을 줍니다.
"내 양을 내가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은혜를 누릴 자가 그 일을 하리라 내가 쓰는 사람이 그 일을 하리라" 확신을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별 염려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여 15년 동안 매년 년말마다 겪어온 경험에 비추면 하나님은 당신이 쓰실 사람을 세우십니다.
일할만한 때 일하시기 바랍니다.
주를 섬길만한 때 섬기시기 바랍니다. 나 없어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기회요, 때입니다. 이것을 놓친다면 그에게 임할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가게될 것입니다.
내가 주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시는 것을 아십니까? 내가 한다고 하니 힘들고 무겁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침례교인으로 지금도 주일학교 교사를 한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주님 주신 은사를 일평생 활용하는 모습이 멋있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을 주님은 만나주십니다.
주님이 만나 주시는 사람되려면
2. 잘못된 것을 버리고 돌아서야 합니다.(7절)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우리 주님은 싫어하시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니고 惡人이고 不義한 者입니다.
그들의 행하는 일, 우상숭배, 거짓말과 속임수, 하나님을 멀리하는 모든 잘못된 생각, 교만한 마음, 탐심이 가득한 마음, 이런 것을 절대로 용납치 않습니다. 아니 속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대로 주님께 나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받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끊을 것을 끊지 않고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행위와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며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십니다.
눅15장의 탕자를 보세요. 왜 그 아버지가 그를 받습니까? 재산을 말아먹은 그 아들, 거지되어 돌아와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는 그 아들을 아무런 책망 없이 그대로 원상 회복을 시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다 버리고 왔습니다. 그러기에 조건 없이, 책임 묻지 않고 받습니다. 이분이 누굽니까? 바로 우리 주님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데 방해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혹,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인데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물질에 대한 탐심, 조상숭배, 용서치 못하는 마음, 미운 마음, 그런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가슴에 안고 주님을 만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기심으로 가득찬 모습을 숨기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참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성도 여러분!
혹시 비즈니스를 하는데 저쪽에서 나에게 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그 만남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저쪽이 나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데 계약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안될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온전한 만남은 잘못된 모든 것을 버릴 때 그때 비로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월요일 새벽기도회에는 안수기도를 합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에게는 이상하리만큼 기도가 안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에게는 온갓 복을 빌어주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뭔가 막혀 있다면 그것을 속히 깨닫고 버릴 것을 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를 축원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만나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만나주는 사람이 되려면
3. 하나님과 내가 생각과 방법이 다름을 알고 나아와야 합니다.(8절~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주님의 뜻으로 간주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我田引水格의 생각이고 판단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 "라는 것을 매일 살피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기대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적 수준이나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A를 구할 때 하나님은 B를 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A가 더 유익하고 좋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B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뜻대로 안되었다고 실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때로 우리보기에 안 좋은 것도 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기에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요셉의 생각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는 것이 소원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방은커녕 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하여 감옥에 갇히게 합니다. 요셉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애굽왕궁에서 40년을 보내다가 자기 동족을 구하려다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 사실이 들통이 나서 모세는 광야로 망명을 갑니다. 그곳에서 40년을 양치기로 지냅니다. 왜 40세 젊고 능력 있을 때 쓰지 않으시고 그리로 도망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생각은 그가 그곳에서 40년을 보내야 하기에 미리 예행연습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하나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에 하나님의 생각을 맞추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사고방식과 고정 관념에 하나님을 가두어 놓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만나주는 사람은 주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앞에 겸손히 나를 낮출 때 주님이 내게 가까이 하십니다.
주님의 이 초청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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