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잠언1:20~33
제목: 지혜가 비웃습니다
2001년 3월 18일 주일 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1:21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 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災殃)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晏然)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설교:
집안에서 자녀들과 부모들이 TV체널 선택권(選擇權)을 가지고 많이 싸웁니다. 왜 싸우는 것일까요? 좋아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대개의 어른들은 뉴스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은 뉴스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예인들의 노래나 코메디를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단계 뛰어 넘어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수준으로 올라와야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치있게 여기는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 올라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그것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유일의 방법인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곧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 예수님이 구약에서는 여러 형태로 표현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정확한 표현이 智慧입니다.
지혜란 원문상으로 "호크마"란 말로 "호크아"란 단어에서 출발한 단어입니다. 즉 판단력, 통찰력으로 쓰이는 이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에서 발생하며 신앙적,실천적 특성이 담겨진 "거룩한 洞察力"을 가리킵니다.
그러기에 이 지혜는 지혜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더불어 지혜가 가득 담긴 성경의 말씀을 의인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본문을 통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분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살피며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몇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1. 지혜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20~21)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왜 지혜가 예수님일까요?
잠언 8장을 보면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8: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또 8장22이하를 보면 지혜는 곧 예수님으로 창세 전부터 계신 분으로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러기에 지혜는 곧 창조주요, 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지혜이신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찾고 계시고 부르고 계십니다.
1)어디서 부르시는가?
세상 사람이 거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부르십니다.
오늘 본문 1절 2절을 보세요. 길거리, 광장, 훤화하는 길머리, 성문어귀, 성중에서 외치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수없이 많은 장소에서 주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곳이 어디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라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와서 주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은 어떤 형태든 그 부르심이 있었기에 오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그렇다면 왜 부르고 계십니까?
주님께로 와야만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주님만이 해결책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부르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인생을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3)어떻게 부르십니까?
전도자를 통해서, 선교사를 통해서, 방송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 개인 개인을 통해서 부르고 계십니다.
교세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심심해서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미 부르심에 응한 우리는 다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를 세워가야 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그분을 가까이 함이 우리가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더욱이 23절을 보시면 聖靈을 부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께로 올바로 와서 주님을 만나도록 그래서 지혜를 소유하도록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게 부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깨닫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영을 받은 자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교훈은
2.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부르심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4~25)
"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 하였은즉"
왜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을 거절하였을까요? 여기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1)바른 소리를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란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회개하란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더 나아가 심판이란 소리는 더욱이 싫어합니다. 그러니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내게 주어지는 충고를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능력입니다.
2)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삽니다. 그러기에 울타리 밖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세계를 모르니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애절한 초청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현실세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 영적 세계가 존재입니다. 내세가 존재하고 하나님 나라가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그 세계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3)무가치한 것으로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 속에서만 가치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의 세계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무시하면 큰일입니다. 우리 현실을 보세요. 눈에 보이는 것이 많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까? 엄밀히 보면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100분지 1도 안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고 무가치하게 여깁니까? 큰일날 소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 가치를 올바로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교훈은
3.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하면 災殃의 심판이 임합니다.(26~27)
왜 재앙이 임할까요?
책망을 받지 않아서, 지식을 미워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여서, 그래서 결국은 올바른 길을 가지 않기에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 왜 두려움이 임하나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할 때 두려움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죄인인 인간은 숨게되고 결국 심령 속에 참 평안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재앙과 두려움은 어떤 모습으로 임한다고 하십니까?
광풍같이 임하고 폭풍같이 임하여 모든 것을 무너트리고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태풍을 겪어 보셨나요? 폭풍을 당해 보셨나요? 세상에서 그처럼 무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재앙의 폭풍이 불까요?
질병, 부도, 실직, 관계단절....
그런데 그런 것이 평안 속에서는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도구입니다.
물, 불, 바람, 이것들은 평안 속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인데 심판 속에서는 무서운 심판의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무서운 재앙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 앞으로 속히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지혜의 말씀의 세계로 어서 속히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이 살길입니다. 그 길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의 외침을 들으시고 잘못 가던 길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끊어야 할 것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욕심도 버리고 헛된 생각도 버리셔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돌이키는 때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24~26, 28절)갈 때까지 가보다가 안되면 돌아 온다구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환경이 되면 돌아오실 것입니까? 그때 가서는 늦습니다. 그때 가서는 지혜를 찾아도 소용없습니다.
왜요? 24~26절을 보세요.
"1: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비웃으시겠답니다. 쎔통이다고 고소해 하시겠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28절도 보세요.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답치도 않고 만나지도 못할 것이랍니다.
왜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왜 찾고 부르는데 대답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고 비웃으시겠다는 것일까요?
이유는 하납니다. 회개의 때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노아 방주처럼 문 닫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가 우리를 부릅니다. 곧 예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시고 그에게로 들어가면 그 지혜는 우리를 평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외치는 음성을 거절하면 재앙이 임하며 두려움이 임합니다. 그때 지혜가 우리 꼴을 보고 비웃게 됩니다.
어느 편에 속하여 살고 있습니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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