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세가지 신앙고백으로 삽시다/창22:7~14/ 2001년 6월 24일

세가지 신앙고백으로 살자

창세기22:7~14

2001년 6월24일 최일환 목사 주일낮 설교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설교:

한국 개신 교회는 하나의 큰복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이 한가지로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건전한 복음주의 교회는 "사도신경"이라는 신앙고백을 한 목소리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계의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며 축복입니다.

왜 그것이 축복일까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고백 받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특별히 믿음의 고백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그 실례를 마태 복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방으로 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이 여러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아무도 대답치 못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제껏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실로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을 받으신 주님은 큰 놀라움을 가지시며 그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 되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수시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핍박을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예수를 깨끗하게 잘 믿어 보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어려운 고통을 치르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국에서 나라를 세우고 화폐를 만드는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돈에 "In God we trust."라고 썼습니다. 조그마한 돈에 까지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 속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돈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달러를 쓸 때마다 한번씩 눈 여겨 그 돈을 들여다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화폐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돈은 없을 것입니다. 결과를 보세요. 그 달러($)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세계 어느 나라도 "달러"는 좋아합니다. 세계화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우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분명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신앙 고백 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적어도 3가지 신앙 고백이 우리 입에서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첫 번째 고백은 "에벤에셀"의 고백입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우리 성도들은 과거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의 과거를 이야기 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에벤에셀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도움의 돌"이란 뜻으로 이스라엘과 불레셋의 전쟁인 미스바 전투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후 세대에 증거하기 위해 세운 기념석(記念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추격해 간 장소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신앙 고백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즉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이길 수 없었다는 고백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기까지 도우신 그 하나님께 온전한 신앙의 고백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믿음을 지켜 온 것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며 여기까지 갖은 질병에서 승리하고 온 것도 에벤에셀의 은혜이며  우리뿐 아니라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나라의 오늘도 에벤에셀의 은혜임을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에벤에셀의 은총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수시로 세워야 합니다. 여기 저기, 이곳 저곳에 세우셔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 최 목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에벤에셀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려주셨고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여러 사람들, 특히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도우심으로 이겨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에벤에셀의 은혜요. 교회의 개척시절 이루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과정을 주님이 순간 순간 붙들어 주시며 세워주시고 힘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에벤에셀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여기 최목사 뿐 아니라 여러분도 과거를 되돌아보면 오직 보이는 것은 주님의 에벤에셀의 은혜인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수없이 죽을 뻔한 위험들이 많았고 고비들이 있었는데 넘겨 왔습니다. 혹시 그것을 내 능력과 힘으로 넘겨 왔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리고 놀라운 손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특별은혜였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이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했던 그 고백도 여기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하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고백을 하려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만 가능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에벤에셀의 은총을 아무나 느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계심을 믿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실업인 스탠리 탬 박사는 1940년 스태니타 재단을 설립하고 전 세계 90여개의 선교기관에 2천5백만 달러를 헌금했으며 3백22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 그가 1976년 그는 척추 암3기의 중병에 걸렸으나 자신이 운영하는 WTGN라디오 방송 청취자들에게 기도를 요청, 암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에게 기자가 찾아가 암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5가지 좌우명을 말하더랍니다.  

1)어떤 역경 중에라도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며

2)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삼가는 것이며

3)엄청난 희생이 따르더라도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며 살자는 것이고

4)절대로 성내지 말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며

5)매일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세 가지 이상 하자는 것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를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과거에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속상해 봐야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되어진 과거를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복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2. 두 번째 고백은 "임마누엘"의 고백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단어는 몇 주전에 살펴본 단어입니다. 그 뜻은 우리가 다 알 듯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 할 것을 구약성경에서 예언할 때 임마누엘이라는 명칭으로 예언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일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그를 믿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함께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고백은 성도의 현재의 모습이며 현재를 사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주님의 함께 함을 믿고 고백하여야 하며 또 주님이 떠나면 우리라는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고백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양과 목자의 비유로, 그리고 포나 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죽은  목숨이고 줄기에서 잘린 가지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해야하고 또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 오셨고 지금도 함께 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1 임마누엘 임마누엘 그이름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네 그 이름은 임마누엘 2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 이름은 그리스도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이름은 그리스도♬

  

3. 마지막으로 "여호와 이레"의 고백입니다.

창세기22:14 "아브라함이 그 땅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이 고백은 아브라함의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3일길을 가는데 산으로 올라가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정말 멋있는 대답을 합니다.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제물이 누굽니까?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린양을 하나님이 준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대답을 하는 아비의 심정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 아브라함이 무심코 한 말인 것 같으나 그 말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이 고백, 이것이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는 고백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정말 아브라함은 아들의 질문에 마땅한 답이 없어 무심코 한 말이겠으나 하나님의 그 입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미래의 고백은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는 확신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고백대로 번제할 어린양을 준비하셨듯이 우리의 장래에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고 도우신다는 고백을 여러분의 입술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미래를 보장하시고 인도하심을 믿으신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염려하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가 염려한다고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병들어 죽을 것 같습니까? 맡기세요. 돈이 없어 부도날 것 같습니까? 맡기세요. 여호와 이레, 자식의 미래가 염려됩니까? 그것도 맡기세요. 여호와 이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고백을 좋아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 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고백은 능력을 가져옵니다.

 

따라합시다. 에벤에셀!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 이 고백이 여러분의 일평생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