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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은 내편이십니다. /시118:5~9/ 2001년 6월 10일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

시편118:5~9

2001년 6월10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설교: 최일환 목사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118: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설교: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병신이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하여 쳐들어왔습니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다리가 병신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뭡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길 것이고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도 생길 것이기에 좋은 일 생겼다고 너무 좋아 할 것이 아니며 나쁜 일이 생겼다고 너무 슬퍼 할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많이 생깁니다. 단순히 죄의 대가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닌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까요?

 

늘 평안하고 늘 형통하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고난과 역경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인생살이는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항해에는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풍 뒤에는 비바람과 폭풍이 따라 올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답니다. 우리 생각에 폭풍, 파도, 태풍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그런 것도 꼭 필요한 것이랍니다. 폭풍과 태풍이 항해하는 배와 해변의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다 생물과 식물에는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바다를 정화시켜주고, 해저 깊은 곳에까지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시편의 기자 다윗을 보세요. 그는 말로 표현키 어려운 고난을 겪은 왕입니다. 이유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선왕인 사울 왕, 그리고 신하, 심지어는 아들에게도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는 것을 봅니다.

시편42편에는 그의 심정을 담은 시가 하나 소개됩니다.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특히 3절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는 구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여 있을까를 살펴볼 수 있게 합니다.

 

"사람들이 하루종일 나를 비웃습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하나님! 너를 그렇게 도와주던 그 하나님! 너를 안도우시고 어디계시냐" 하는 조롱의 소리를 들을 때 그 아픔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는 자기 영혼을 향해 책망을 합니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핍박과 고난 때문에 어렵습니까? 혹시 육신이 연약하여 고통속에 계십니까? 또는 남모르는 외로움 속에서 힘이 드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분이시라면 오늘 봉독한 말씀이 하나님의 응답의 메시지로 들리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시편기자의 시를 통해 고통스럽고 어려울 때 3가지의 자세를 갖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합니다.(5절)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특별 열쇠입니다. 영국 부리스톨에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자기 전 생애를 바쳤던 한 경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그 이름은 죠지밀러 입니다. 그는 일생동안 2천명의 고아들을 길러 냈으며 700만달러 이상을 모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그가 필요한 돈이나 물건을 달라고 요청해 본 적이 없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께 간구 했습니다. 세워진 수많은 건물들, 보급 받은 식량직원들의 봉급을 위해서 단 한번도 모금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아원에 식량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고아원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뮬러는 침착하게 말했답니다.

  "그렇습니까? 항상 하던대로 식기를 테이불 위에  놓아두십시오"

그러나 점심시간 20분전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5분 후에 사원이 달려와 묻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가 대답합니다. "괜찮아요, 식량을 만드는 하나님께 기도 드려 놨으니까요,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겠지요"

조금 후에 직원이 또 달려와서 또 보고하기를 "목사님 식사시간5분전입니다." 그때 마차 몇 대가 식량을 산더미처럼 빵을 싣고 들어왔습니다. 무디 목사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15분간을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같이 일을 할 수가 없군요."

 

영국 명언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결코 굶어 죽게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이 없습니까? 사방이 막혔습니까? 위로 난 길을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만드신 길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때로는 사람이 기도할 마음만 먹어도 응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 집사인 학원 원장이 재작년까지 계속되는 빚 가운데서 막막한 가운데 있었답니다.  1억,2억씩 늘어가는 빚 속에서 파산, 자살, 절망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장 내일 갚아야할 2천만원의 어음이 날아왔습니다. 도저히 갚을 길 없어 괴로워하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데 평소 기도해 주시는 권사님 내외를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이 권면하기를 "한번 40일 새벽 작정기도를 해보시지요?" 하길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러지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방에 들어가니 부인이 하는 말이 남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해보니 "너 돈이 필요하다면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을 써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친한 친구가 아닌데 너무도 신기한 응답이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구나 하며 40일 작정기도를  하였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작정만 해도 응답하신다는 간증을 그가 하면서 교회에서 이 체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믿음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체험을 주시는지 모른다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곳에서 기도하라, 부르짖으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안하거나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열쇠임을 잊지 머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내편임을 믿고 의지하라고 하십니다(6~7절)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報應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다윗은 자신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웬고하니 하나님이 내편이시고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고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정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으로 보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여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를 삼으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항의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사라를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편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시원찮아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한번도 책망치 않고 아비멜렉만 책망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기도로 살게 됩니다.  

솔직히 누가 잘못 했나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공평치 않으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아버지" 이실 때입니다.  

 

판사는 공평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공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에 대해 갈등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일방으로 사랑하십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못났어도 못난 자식에게 사랑이 갑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무능해도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한편에 치우치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이며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편이십니다. 그러기에 항상 우리를 돕는 자 중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무엇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우리편이 되시는 아버지가 우리를 돕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병들어 죽을까 두렵습니까? 망할까 두렵습니까? 우리편이신 아버지를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함이 최선책임을 믿으라고 하십니다(8~9절)

118: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에 봉착하면 이리 뛰어보고 저리 뛰어보고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다 해보다가 안되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심지어 사람이 사람 자신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그러기에 위험이 닥칠 때 하나님께 피하고 고난이 찾아 왔을 때 기도하여 부르짖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의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대통령을 만나서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당장 대통령 궁으로 달려갔습니다. 경비원에게 전후사정을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만나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애걸을 해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 뜨린채 돌아섰습니다.  "아! 이젠 어떻게 하지..."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 "아저씨!"하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아저씬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세요?" 그 사람은 그 꼬마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소년에게 자신의 문제를  남김없이 털어놨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소년은 "음... 그럼 절 따라오세요." 하고는 앞장서서 백악관으로 들어섭니다. 그 사람은 소년의 뒤에서 자신을 전혀 막지 않는 문지기를 의아하게 여기며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소년이 말합니다. "아빠, 이 아저씨가 아빠를 만나고 싶대."  알고 보니 그 소년은 대통령의 아들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분을 만나려면 그의 아들 예수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사람을 믿지 마세요. 사람은 다 변합니다. 부모를 의지합니까? 세월 지나면 힘도 없으시고 다 떠나십니다. 자식을 의지합니까? 결국은 실망합니다. 그러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에게 든든한 빽이 있습니까? 권력을 갖은자가 있습니까? 돈 많은 형제가 있습니까? 그들을 의지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고 소망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문제를 해결토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보세요. 결국은 하나님이 원수들을 꺾어 주십니다. 사울도 꺾으십니다. 아들 압살놈도 꺾으십니다.  기도하시되 의심치말고 기도하세요. 믿음의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동반합니다.

 

어떤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인근 교회에서는 특히 주일 저녁 예배에 큰 지장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어떻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교인들이 한참 기도하는 중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온 집이 다 타 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하여 재산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법원에 재판을 걸었습니다. 반면에 교인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변호사를 대고 맞소송을 걸었습니다. 얼마 동안의 심의 끝에 재판관은 아주 도전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소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판결은 무죄로 판결하면서 그러면서 술집 주인에게는 그 좋은 믿음으로 술집 간판 내리고 교회를 다니라 권고했고 또 교회에게는 그 형편없는 믿음으로 어떻게 교회를 하느냐며 교회 간판을 내리고 술집이나 하라고 권고했답니다. 혹 우리의 믿음은 어떤 모습인지요?

 

말씀을 맺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 주시나 때론 내편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있지는 않는지요? 그때는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도록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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