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시는 하나님
열왕기상17:8∼16
2002년 10월20일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설교
17: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17:10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17: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7: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7: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7:15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설교:
1989년 말에 우리 교회 건축이 다 끝나갈 무렵 입당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교회 연로하신 이희우 집사님이 새벽예배 후 저를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은 일 년 365일 새벽기도를 좀처럼 빠지지 않던 분입니다. 그분이 제게 봉투를 하나 내밉니다. 이게 뭐냐고 하니 부끄러워하며 작은 것인데 성찬상 하나 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며 내밀었습니다. 그분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 신문 박스 등 재활용을 모아 파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일을 하면서 교회가 완공될 때 내가 뭔가를 해야 하겠다며 돈을 모은 것입니다. 그때 돈 20만 원가량이었습니다. 저는 그 성찬상을 사러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을 다니며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 후 입당예배를 드리고 상가에 있던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준공검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하였다고 주민들이 진정을 하여 고발을 당했고 결국 벌금을 내고 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후 90년 1월 중순 어느 날 준공검사가 떨어져 준공필증을 찾으러 가려던 그 날 그 집사님이 뇌출혈로 쓸어져 召天하셨습니다. 새벽기도에도 나오셨던 집사님이 그날도 상자를 모으러 나가시다가 쓰러지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교회 역사에 길이 남으실 분이십니다. 상가3층에서 개척하던 5년 중 4년을 열심히 섬기며 헌신하시던 그분의 기도와 헌신이 오늘 우리 교회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마다 그런 헌신자들의 헌신으로 세워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며 12여 년 전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는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성도가 헌신하면 모자라는 것을 채우시는 분임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하려 할 때, 그리고 교회가 뭔가를 하려 할 때 모자라는 것은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어떤 여건 가운데서도 모자라는 빈 지갑이 채워지고 양식 통도 채워진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빈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바라보고 의지하느냐가 열쇠이지 그냥 두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와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의 집을 보세요. 엘리야도, 그를 만난 이방 여인도 모두 먹는 문제에 대한 궁핍으로 사생결단을 해야 하는 지경에 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떡으로 배불림을 얻었고 그를 만난 사르밧 과부의 집 역시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끊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빈곳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하나님은 이 본문 말씀을 통해 뭔 말씀을 하려고 하실까요?
1. 말씀을 섬기면 그릇이 채워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왕상17:8)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60년대 미국에서 유학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어느 신문에 특이한 광고가 났습니다. "세일, Brand new Catirak for fifty doller" 즉 새 캐딜락 자동차를 50$ 에 판매한다는 광고가 신문에 났습니다. 그 60년대에 그 차가 5,000 불이 넘었습니다. 보통 차가 1,000불 정도였으니까 그 차가 상당히 비싼 차였습니다. 그러기에 모두 생각하기를 "이거 광고 잘못 난 것이다. 5,000 불인데 0자를 두 개 잘못 빼놓고 났으니 다음날에는 분명히 정정해서 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보아도 50$이고 그 다음날 보아도 50$이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바보 같은 신문사라고 욕을 했답니다. 이런 놈들이 신문사를 운영한다니…….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이제는 광고로 난 것이 아니라 기사로 그이야기가 났습니다. "캐딜락이 50$에 팔렸습니다.". 깜짝 놀라 기사를 읽어보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이 죽으면서 유언을 했습니다. 그 사장은 遺言書에서 회사는 누구에게, 집은 누구에게, 다 정해 놓았는데 자기가 최근에 산 비싼 고급 승용차인 캐딜락은 팔아서 자기 girl friend (애인)에게 주라고 유서를 남긴 것입니다. 이것을 그 부인이 읽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자기 몰래 걸 프렌드 있는 것도 못 견딜 일인데 오천 불짜리를 팔아서 그 여자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여자의 마음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유서대로 안 하면 법에 저촉되니 어쩔 수 없이 유서대로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서에 그 차를 팔아서 주라 했으니 5,000$ 주기는 아까우니까 깎아서 그 여자도 화가 나도록 50불에 팔아서 준 것입니다. 그때 그 기사를 액면 그대로 믿었더라면 캐딜락 한번 타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광고를 믿지 않았고 결국 바보 같은 사람이 그것을 믿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세요.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를 찾아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가져 오라" 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기에 전한 것입니다. 왕상17:8~9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섬기게 되자 하나님이 그릇을 채워 주신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나 이방여자인 사르밧 과부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섬길 때 놀라운 복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와 생각과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말씀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9절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방 땅 사르밧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종이 이방 여인에게 공궤를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말씀을 순종하고 갔습니다. 또 사르밧 과부도 엘리야를 통해 주어진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합니다. 결국 그들은 말씀을 섬김으로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명하는 대로 말씀을 섬겨나가면 하나님은 놀랍게 여러분을 채워 나가실 것입니다.
히브리서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세 무궁토록 살아있습니다. 그 말씀은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것은 다 변해도 말씀은 언제나 살아있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말씀을 섬기는 것은 잘되는 길이요 진리로 사는 길이요 행복하게 사는 길인 것입니다.
말씀을 섬기지 않으면 회복의 길이 없습니다. 말2: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면 말씀을 잘 지키고 섬기면 잠3:4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말씀을 섬기면 모든 것이 채워진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양식의 그릇도, 마음의 그릇도, 신앙의 그릇도, 이 모든 것이 다 채워짐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죽을 각오로 말씀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도 죽을 각오로 말했고 사르밧 과부도 죽을 각오로 그 말씀을 섬겼습니다. 결국 둘 다 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섬기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가능합니다. 적당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면 그릇이 채워집니다. (왕상17:15)
사르밧 과부는 극빈자였습니다. 자기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배불리려 하는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런 과부에게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으니 이 얼마나 받아드리기 어려운 명령입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과부에게 이르되 "두려워말고 가서 내 말대로 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17:15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에게 떡을 가져다 드린다는 것은 자신과 아들이 죽는 것을 의미하므로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박살내고 엘리야를 섬깁니다. 아마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하고 섬겼을 것입니다. 결국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마음으로 떡을 만들어 가져다 드립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이방 여인은 엘리야를 평범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이 결단은 너무도 놀라운 결단입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닥치면 오직 자기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타이타닉"이란 영화가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이 뭐입니까?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르밧 여인처럼 극한 상황 속에서 처했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런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자는 결코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일은 다른 말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섬김은 아랫사람이나 하는 짓이고 그래서 섬김을 멸시하고 섬김을 비하시키는 세상이지만 그러나 우리 주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섬김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서울 큰 교회 목사님이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는 당신은 강단에서 선포하기만 하면 그 일을 이루는 동역 자들이 수천 명씩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해외에서 집회를 할 때는 비행기 두세 대 가량 약1000여명의 성도들이 자원하여 동행한답니다. 동행하여 전도팀, 기도팀, 후원 팀으로 동행한답니다. 그들 중에는 직장에 휴가를 내서, 심지어는 사직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들이 왜 그런 일에 자원하여 나설까요? 하나님나라 확장사역에 힘쓰는 목사님을 돕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인 일에 당신들이 쓰임 받는다는 사실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갈라디아6:6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최목사가 하는 일에 구경꾼이 아니라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3가지 "꾼"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사건건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고
둘째는 어찌되나 구경하는 구경꾼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이것은 내일이라고 생각하고 팔 걷고 나서는 일꾼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방해꾼을 물리치시고 구경꾼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일꾼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런 일꾼을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필요를 채우셔서 보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 하고많은 사람 중에 엘리야를 사르밧 그 과부에게 보내셨을까요? 그가 그릇의 채움을 받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난해도 하나님이 세운 종들과 함께 나누며 섬기시면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영적인 것을 함께 나눌 때 그 나눔의 섬김이 빈 그릇을 채운다고 교훈 하십니다.
제가 브라질에서 우리교회 지교회 준공예배 설교요청과 그 교회 옆에 세워진 신학교의 개강예배 설교를 要請받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교회 재정도 어렵고 한데 누가 나를 보낼까요? 사실 어떤 권사님이 지난번 100만원을 선교사역에 보태 쓰라고 하셔서 그곳에 갈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갑자기 필리핀의 김종필 선교사 교회 설립9주년 기념예배와 매일 기도회 인도를 요청 받고 부득이 가게 되었는데 선교사 사모님이 목회 하시는 상황에서 차량이 고장 나 고치지를 못하고 있기에 400$를 주고 왔더니 항공료, 교통비, 사역비, 차량수리비 딱 100만원이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지요, 하나님이 그 권사님을 통해 정확하게 채우시며 일하신 것입니다. 또 중국의 신학교를 두 번 강의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교회 일반 헌금에서 경비를 주신 것이 아니라 어느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 집사님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재정을 교회 헌금에 익명으로 넣었다가 선교비로 지출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여러 사역은 제 혼자 한 사역이 아니라 그 후원하신 분들의 사역인 것이고 하나님은 그분들에게 채우심을 허락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필리핀을 가면 브라질 지교회는 어쩌고요." 그때 하나님이 분명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누군가가 너의 사역을 도울 것이다". 할렐루야 !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몇 명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항공권을 예약은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응답이 없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채움을 받을 자가 일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3. 복에 대한 사모함이 있으면 그릇이 채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왕상17:14)
먹을 것이 모자라는 사르밧 과부에게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말한 엘리야는 이런 축복을 선포합니다. 왕상17:14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선포는 축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믿은 그 과부는 15절/"저가 가서 그 말대로 하였더니"하면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선포를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순종은 복을 사모하는데서 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을 사모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의 약속들을 환영하고 기대하고 믿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을 천대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메시지 중에서 축복을 받자하고 축복이라면 잘못된 신앙인 것처럼 생각하고 축복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복을 달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일까요. 당신에게 생명이 있는 것, 당신에게 가정이 있고 자식이 있고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는 것, 그 어느 하나 그냥 주어진 것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누리고 살면서 축복과는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다고 대드는 당신의 삶의 주관자는 누구란 말입니까? 나는 축복을 안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교만이고 오만입니다. 그것을 속히 버려야 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비를 주실 수도 있고 멈추게도 하시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부어주시는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고 복 받는 길이 있으면 그 길로 가야합니다. 복을 구하며 복을 가까이 모시려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야곱이 그렇듯이 우리도 열심히 복을 사모하며 복 받을 짓을 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명령을 이행했습니다. 순종으로 이행한 것입니다. 또 엘리사 선생에게 찾아온 선지생도의 아내도 하나님의 종이 시킨 대로 그릇을 빌려 오데 믿음의 분량만큼 빌려와 가득 차게 하는 체험을 합니다. 모두가 사모하는 심령에 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맛 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도, 여러분의 사업체에도, 그리고 여러분 가정에도 이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내 부족함을 채우시는 은혜를 얼마나 누려보셨습니까? 혹시 나는 왜 채우시지 않는가? 왜 나는 늘 부족하여 허덕이는가? 고민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무엇을 섬겼는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을 기대하며 그리고 믿음으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개인 개인에게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가르치라 하시기에 예고된 설교를 바꾸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채움을 받을까요? 누가 풍족함을 체험할까요? 죽을 각오로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을 희생의 결단으로 섬기고, 축복의 약속을 믿음으로 섬기면 그 사람이 누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야 해결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삶이라는 형편의 그릇을 보지 말고 말씀과 사람과 축복을 섬김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자손 대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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