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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막2:1~12/2002년 11월 10일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

마가복음 2:1-12

2002년 11월 10일 주일낮 최일환 목사 설교

2:1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容身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2: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僭濫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설교:

얼마 전 우리교회 중고등부 카페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라는 기도문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 기도문을 읽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기도문은 이렇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120년 전에 한국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 누가 오라고 했나요? 누가 歡迎했나요? 그런데 그들은 이 땅에 왔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한 그들이었기에 믿음으로 되어날 앞날을 내다보며 이 땅을 찾았고 참담하고 암울한 이 땅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제가 브라질을 다녀오느라 비행기로 편도 30시간 왕복 60시간을 다녀오며 무척 힘들었는데 그들은 배를 타고 찾아왔고 그것도 한 달 이상을 왔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요? 오직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믿는다. 또는 저 사람 믿음이 좋다"라는 말을 할 때 많은데 사실은 잘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열심을 내는 분을 보고 대체로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믿음과 열심은 관련은 있지만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열심을 낼 수 있고,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약속에 대한 信賴"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것을 신뢰하고 그대로 행하는 그것이 잘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 믿음대로 살았고 그 믿음대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스데반도 그랬고 바울사도와 베드로 사도도, 그리고 우리가 미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살다가 갔습니다. 언더우드의 祈禱를 통해 바로 참 믿음의 모습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니 변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能力, 완전히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이 예수를 믿으므로 시작됩니다.

믿음은 우리를 絶望에서 所望으로, 苦悶에서 讚頌으로, "전날에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하는 찬송이 있듯이 이전에는 거짓말하던 삶이 진실한 삶, 이전에 방탕하던 삶이 절제하는 삶으로, 거룩한 삶으로 믿음이 전부 다 위치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電氣를 사용할 때 100V에서 200V로 바뀌면 완전히 다 바뀌어야 하듯이 다 바뀌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여러 곳에서 보여 줍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本文에는 참으로 훌륭한 믿음이 나옵니다.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한 중풍병자가 누워서 고생을 하는데 친구 네 명이 주님에게로 데리고 와서 고침을 받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1. 모든 문제를 주님에게로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합니다.(3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에게로 왔어요. 데리고 나온 그것을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敎會는 왜 나왔습니까? 무엇 때문에 나오십니까?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기 위해 나와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고 보통사람인 저와 여러분은 "問題"를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나의 문제, 가정의 문제, 내 영혼의 문제, 내 앞날의 문제, 모든 문제를 주님에게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요사이 현대인의 生活에 비유한다면 교회는 마치 쓰레기장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교회는 버릴 것을 버리러 여기 오는 거예요. 못 쓰는 걸 버리러 오는 거예요. 내 모든 罪를, 내 모든 허물을, 내 연약함을, 내 모든 不幸을, 고민을 주님에게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오면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납니다. 인간 냄새도 나고 차라리 세상이 더 깨끗하다 할 정도로 심각한 냄새도 난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니다고 생각지 마세요. 나도 납니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세요. "죄송합니다.", 뭐가요? "냄새 풍겨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버릴 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면 주님은 내 문제를 정결케 합니다. 어떤 문제든지. 어떤 고민이든지 다 정결케 하십니다.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오직 예수♬

 

주님은 내 짐을 져주려고 오셨습니다. 교회는 무거운 짐, 남이 져주지 아니하는 짐을 여기 갖고 와서 주님에게 내려놓고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좋은 거예요. 사랑은 원래 그런 거예요. 그게 참사랑이에요. 부모가 자녀의 무거운 짐을 져 주듯이, 부끄러움을 부모가 져 주듯이 우리의 짐을 하나님이 져주시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도 전에 길러보면 하루에 옷을 다섯 번, 여섯 번 갈아입습니다. 더러우면 집에 오는 거예요. 그저 버리면 집에 오는 거예요. 그러면 엄마는 "야 이놈아" 야단은 치지만 그걸 내어 쫓지 아니하고 싹 벗겨 가지고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켜주는 거예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 거룩하신 내 하나님 아버지도 여러분의 모든 부족함, 잘못됨, 더럽고 추한 죄를,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주님은 져주시는 거예요. 어떤 분은 교회 나올 때 좋은 거, 자랑할 것, 잘난 것, 가지고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 잘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부족한 거예요. 하나님 앞에는 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문제를 가지고 나올수록 더 기도가 잘되고 예배가 더 잘되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잘 믿는 믿음이란

2. 안될 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이 중풍병자를 메고 와서 안 될 때 어떻게 했느냐?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에다가 구멍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어요. 사람들이야 모두 미쳤다고 말했겠죠. 그러나 주님은 이걸 어떻게 보셨느냐? 믿음으로 보신 거예요.

 

잘 믿는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신앙이 좋단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안 될 때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게 신앙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에요. 아래서 안 되면 위에서 찾고, 여기서 안 되면 저기서 찾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지붕이라도 뚫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세요.

여러분들의 삶도 事業이나 家庭이나 무슨 일이 안될 때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 위로 인도하실 것이다, 더 좋은 길을 주시기 위하여 이런 시련이 있을 것이다 하며 해석을 믿음으로 하고 발걸음을 위로 옮겨서 지붕을 뚫을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받으시고 축복해주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좌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3. 주변에 믿는 사람을 많이 두는 것을 잘 믿는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親舊를 사귀어도 믿는 친구를 사귀는 것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결혼을 해도 믿는 집에 결혼하는 것을 잘 믿는다고 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예쁜 사람 만나면 믿음은 안 물어보는 거예요. 부모님 신앙생활은 안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 믿음은 잘 믿는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은 환경과 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상 혼자 잘 믿을 수는 없습니다. 혼자 클 수는 없어요. 주변이 있어야 합니다. 나무도 주변이 같이 커야 잘 크고 과일나무도 같이 커야 잘 크듯이 혼자서 잘 믿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혼자 잘 믿는 것보다는 자기 믿음이 적어도 부모님 신앙이 좋은 것이 더 좋아요.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중풍병자처럼 넘어질 수 있어요. 목사도 넘어질 수 있어요. 아브라함도 약해지고 넘어질 수 있어요. 성경에 안 넘어 지는 분이 없어요. 그때에 옆에 있는 분이 붙잡아주고 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믿는 사람을 많이 두면 안 될 것 같은데도 잘하고, 자기는 믿음이 있어도 주변에 믿는 사람을 안 두면 넘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잖아요. 그래서 신앙은 친구도 중요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밑에 사람도 믿는 사람을 고루고루 두는 것이 중요해요. 하루 일과 마치면 "회장님, 이럴 때 한잔하는 겁니다." 그런 거 보다는 "회장님, 이것이 하나님 은혜 아닙니까?" 이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돼요. 혼자 믿으면 믿음 지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4. 남을 생각하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친구들은 자기는 안 아프지만 아픈 사람을 들어다가 옮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걸 보시고 귀하게 보셨어요. 믿음이 좋을수록 자기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지만 남을 위해서 犧牲하고 좋은 일 하고, 남을 잘되게 하고, 살려주고 도와주고 일으켜줍니다. 이것이 믿음이 좋은 거예요. 자기 일에만 모두 열심을 내는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남의 영혼을 위해 불쌍히 여기고 남을 도와주는 것, 이게 잘 믿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모양이 다 달라요. 여기는 이런 모양으로 아름답고, 저기는 저런 모양으로 아름다운 거예요.

힘드십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간 브라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교회와 지교회인 브니엘 교회에서 150여명 이상이 모여 入堂禮拜를 드렸습니다. 많은 한인 목사님들과 브라질 목사님들, 그리고 성도들과 하객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 오신 분들은 우리 장안중앙교회가 대단히 큰 교회인줄 압니다. 우리교회가 미약한 교회로 비록 적은 헌신을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 헌신을 기초로 4배 이상의 재정으로 큰일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제게 고맙다고, 큰일을 하였다고 칭찬을 하였으나 저는 솔직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영광은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하고 헌신한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데 제가 받으니 얼마나 죄송한지요?

 

저는 그곳에서 정말 충격 아닌 衝激을 받았습니다. 우리 브니엘 교회 담임자인 엘리야 목사가 흑인같이 까만 피부를 갖고 있는 목사인데 그 사모님이 한국 여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김연희 사모로 경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 YM 선교훈련을 받다가 그곳에서 브라질 형제를 만났고 그곳에서 믿음으로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결혼하여 브라질에 들어가 많은 고생을 하셨답니다. 영어를 통해 대화를 하지만 브라질 말이 포루투칼어 이기에 대화가 안 될 때도 있고, 하나님이 이런 저런 훈련을 다 시키셨답니다. 그러던 중 한국 선교사의 눈에 띄어 브니엘 교회로 오게 되었고 결국 우리 교회의 도움으로 교회를 준공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원래 우리교회가 해외 지교회 헌금을 할 때는 일순위는 인도, 그 다음 필리핀, 그리고 더 헌금이 나오면 태국에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국의 선교사님이 사정이 생겨 그곳에 지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브라질에 장 선교사님이 브라질에 교회 한곳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기도 끝에 브라질로 결정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엘리야 사모님의 눈물의 기도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이든지 길을 여시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예수로 인해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여인, 황무지와 같은 외로운 곳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사역을 하단 여인, 하나님은 그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교회의 손길을 통해 기도의 應答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잘 믿는 사람일까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가되 남들이 미쳐 생각지 못한 믿음의 방법으로 나가는 지이며 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자기 혼자도 잘 믿어야 하겠으나 남과 함께 잘 믿어야 합니다. 남에 대해 관심이 없고 오히려 남과 함께 어울리기 힘들어하고 남의 문제를 위해 고난을 나눌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자기 보기에 잘믿는 사람이라도 주님은 그를 온전한 믿음이라고 인정치 않는 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榮華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언제나 나는 관계없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나는 잘한 것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잘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삶과 생애를 보면서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고 내 人格과 내 모든 마음의 中心에 자리잡으면서 항상 그분이 생각나고 항상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그분을 믿으면서 어려움도 이겨내고 시험도 이겨내고, 되는 중에 더 잘되어서 이 세상 끝날 까지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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