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라
로마서15:1~7
2002년 12월 1일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설교:
모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족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행함의 근본이유는 自己滿足에 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자기 만족을 위해, 잠을 자는 것도 자기 만족을 위해, 그리고 일을 하는 것도 오직 한 가지 자기만족과 자기 기쁨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자기만족과 자기 기쁨을 위한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 단계 더 높여서 자기만족과 자기 기쁨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成熟한 신자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몇 가지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마디로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그렇게 살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1. 누가 이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의 이웃입니까?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質問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유대인의 이웃은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닌 선을 행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교훈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말고 오직 이웃을 기쁘게 하라 하셨는데 누가 이웃인지 알지 못하면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이웃일까요?
1)교회안의 믿음이 弱한 자를 말합니다.
初代敎會는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교회는 바울사도가 가서 전하지 않았는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의 체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다른 서신서와 달리 체계적인 구원의 교리와 그에 따른 생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敎會안에 갖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로마의 우상숭배 의식 문화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偶像祭祀의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 먹을 것이냐, 멎지 말아야 할 것이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로 믿음이 있는 성도들과 믿음이 약한 자들 서로 잘 어울리기 어려운 일이들이 종종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바울사도는 말씀을 통해 그들을 권면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믿음의 초보자들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그 약한 자들을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을 때 자기중심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행동합니다. 그래서 내 맘에 안 들고, 또 내가 보기에 꼴사나운 행동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하게 정죄하고 비판을 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보실까요?
한실배기 어린아이가 똥을 쌌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똥도 못 가린다고 욕을 하고 비판하면 누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 똥을 보고 이웃집 엄마는 냄새난다고 난리치며 욱욱하며 욕지기를 하고 피하지만 그 아이 엄마는 “아이고 예쁜 내 새끼 똥도 잘 싸지” 하며 똥을 갈아 치웁니다. 제 여동생이 시집가기 전에 제조카인 기정이가 동을 쌌을 때 냄새난다고 난리난리 치더니 제가 시집가서 나은 지식의 똥은 전혀 냄새가 안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예쁜지 똥 싸는 것도 예쁘다는 것입니다. 뭔 말인지 이해가 가시기를 祝願합니다.
내가보기에 꼴사납고 맘에 안 들고 이해가 안 되는 사람, 교회 안에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상처를 주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맘에 안들어도 그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擔當하라는 말의 “담당” 단어는 헬라어로 “바스타제인”은 “짐을 진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믿음이 있는 성도, 즉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여러 가지 약점들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약점을 담당하라, 짊어지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일까요?
ㄱ)이해하라는 것이고 ㄴ)입장을 빠꾸어 생각하라는 것이며 ㄷ)더 나아가 나 자신도 과거에 그런 세월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 좋은 사람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성숙한 사람 같은데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어찌해야 할까요?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지라도 실상은 아직 어린아이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른바 <成人 아이>인 경우입니다. 겉으로 보면, 신앙 연조나 맡은 직분이나 겉으로 보면 성인인데 실상 영적 나이를 보면 어린아이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구요? 그런 사람은 모든 행실이 자기중심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최고며 자기에게 유익해야 하며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배려치 못합니다. 남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자기만 위해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길러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어린아이가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 달라집니다. 엄마를 생각하고 형을 생각하고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알게 됩니다.
누가 이웃일까요?
2)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도 내 이웃입니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 성격도 다르고 행동도 달라 내가 보기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교회 안에는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내 이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아시면서 그런 사람을 내게 붙여주셨을까요? 그런 사람을 통해 내 허물을 보여주시고 또 그런 사람을 통해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제발 그런 사람은 우리 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기롯유다가 전혀 불필요할 것 같으나 주님은 그를 제자로 삼아 나름대로 사용하셨습니다. 양들에게 염소가 전혀 불필요한 존재 같지만 그 염소 때문에 양이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와 다르다고 멀리하려 마세요. 나와 같지 않다고 미워하지 마세요. 오히려 사랑하고 섬기세요. 그러면 그를 통해 하나님은 내게 놀라운 선물을 주시며 그것 때문에 우리를 더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누가 내 이웃일까?
3)그 이웃은 가까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은 우리 옆집, 고아나 과부 어려운 사람들도 이웃이겠으나 그들은 먼 이웃이라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이웃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누굴까요? 여러분의 아내, 남편, 부모, 그리고 형제입니다. 너무도 가까워 내 이웃이라 생각지 못하고 살지만 실상 제일 소외된 자, 제일 멀리 여겨지는 자중에 여러분의 아내, 남편, 부모, 형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의 남편을 내 몸처럼 사랑하시나요? 여러분의 시어머니를, 여러분의 장인장모를 여러분 몸처럼 사랑하시나요? 어렵고 고통당하는 형제 친척의 약점을 여러분이 담당하시고 계시나요?
디모데전서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웃은 사랑한다면서 내형제, 내 가족, 내 부모를 내팽겨쳐 버린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어찌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그리고 저에게 명령하십니다. 네 이웃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가까운 이웃을 보살피라 하십니다.
2. 어떻게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나요?
1)利己主義를 극복해야합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맘을 먹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서원하고 맹세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한가지, 이기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내속에 가득 자리 잡고 있는 이기주의, 나만을 생각하며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이 벗겨지지 않는다면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이기주의, 이기심이 극복될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價値觀이 변화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무엇이 덜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서 나중심의 이기주의를 벗어버리고 이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이웃이 기뻐함이 진정 내 기쁨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진정 내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가치관의 변화를 체험하시려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세월이 흐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도 제자들을 부지런히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염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키 어렵습니다만 염소들은 여름엔 서로서로 엉켜 붙어 잠자거나 쉬기를 즐겨하고 반대로 겨울이면 한 우리 안인데도 각각 떨어져 있는 답니다. 참 이상하지요? 우수한 보온력과 체온을 가진 염소들은 여름엔 차라리 서로서로 떨어져 있어야 시원할 게고 겨울엔 서로서로 엉겨 붙어 있어야 따뜻할텐데... 이유인즉, 염소는 시기와 질투가 많아서 도무지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성격이랍니다. 그래서 옆 친구가 여름에 시원할까봐, 겨울에 따뜻할까봐 그게 싫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랍니다. 자신이 더위에 시달리고 추위에 떨었으면 떨었지, 이웃 염소가 좋아하는 꼴은 보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랍니다. 사람들 중에도 이런 못난 염소가 살고 있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입니까?
2)善을 행하며 德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성도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사랑실천이며 둘째는 복음전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장안의 성도 여러분!
이웃을 기쁘게 하는 방법으로 선을 이루라, 덕을 세우라는 말은 별개의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 전도를 하는 것도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가장 귀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가짜일수 있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선물을 얻게 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게 하고 믿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천국이 있음과 지옥이 존재함을 참으로 믿는다면 어찌 믿지 않는 형제와 이웃을 그냥 두겠습니까? 실존한다는 것을 지식으로는 아는데 믿지는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에 방치하는 것 아닙니까?
3)예수님을 本받아야 합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려면 그 지름길은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렇게 사셨습니다. 온 갓 멸시도, 고난도, 핍박도 우리를 기쁘게 하시기 위해 참으셨습니다. 그 엄청난 수모, 그 엄청난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신 주님! 그 주님의 모습이 우리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욕도 먹게 되고 미움도 받게 되고 이유 없는 비판과 모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면 참고 견딘다면 우리도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3. 이웃을 기쁘게 한 結果는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6절과 7절 말씀처럼 이웃을 기쁘게 하면 우리 주님처럼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임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여러분으로 인해 누가 기뻐하며 살았을까요? 여러분 때문에 행복한자가 많을까요? 고통당하는 자가 많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 이웃을 기쁘게 해야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길이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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