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정을 꾸려 나가려면?
시편128:1~6
2003년 8월 1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128:1 여호와를 敬畏하며 그 도에 행하는 者마다 복이 있도다.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亨通하리로다.
128:3 네 집 內室에 있는 네 아내는 結實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床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福을 얻으리로다.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128:6 네 자식의 子息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平康이 있을지로다.
설교:
유명한 불란서의 農民畵家였던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원래 70달러밖에 되지 않는 물감과 종이를 들여서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느 미국인이 12만 5천 달러에 사갔습니다. 얼마 후에 불란서 사람들이 이 名畵를 다시 본국으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서 15만 달러를 주고 사다가 ‘르부르’ 미술관에 걸어놓았습니다.
밀레의 ‘晩鐘'은 어느 젊은 부부가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다가 멀리 예배당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에, 괭이와 삽을 놓고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이 왜 그렇게 비싼 값에 팔린 것일까요? 이 명화 속에 세 가지 신성함이 있답니다.
그 첫째는, 家庭의 神聖함이요, 둘째는 勞動의 신성함이요, 셋째는 宗敎의 신성함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은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육체가 健康하냐 건강치 못하냐가 최근의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지만 저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정의 건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의 건강은 ‘육체 건강’을 의미하기 보다는 ‘關係의 건강’을 의미합니다. 관계가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人格者가 배출되고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은 어떤 모습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1~2절)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온 가족의 모든 食口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 가운데 행하며 살 때 직장생활도, 사업도, 결실을 맺게 되고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부단히 힘쓰고 노력하는 가정이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되 형통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그 복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내게 복을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온전히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어찌 복이 아니겠습니까?
요셉이 애굽에 끌려갔어도 하는 일마다 亨通한 秘法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말을 깊이 생각하세요. 어떻게 했다는 뜻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했다는 것은 그에게 禮拜하고 그에게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그냥 두실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가정이 되려면 家長이 問題입니다.
집안의 대표자인 家長이 민법상의 家長 노릇만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집안이 복을 누리고 그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내가 신앙의 가장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이를테면 한 가정에 두 가장이 있는 것입니다. 민법상 家長, 신앙상 家長, 이러니 건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에 참으로 가슴 아픈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남편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 앞까지 태워다 주고 그냥 갑니다. 가정의 운전기사 노릇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좀 드리고 가라고 하지 그냥 보내냐고 하면 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데려다 주는 것 만해도 얼마나 고마운데요” 하더라구요.
그러나 그곳은 고맙기는 할지 마르지만 영적으로는 가슴치고 통탄할 노릇입니다. 왜 영적 가장의 복을 누려야 할 자들이 운전기사 노릇을 하느냔 말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高等學生을 모아 놓고 질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집니까? 했더니
첫째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때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이고,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였답니다.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가장이 영적 家長權을 상실하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세상에서도 살아갑니다. 그러니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서므로 그 家庭이 복을 누리고 자손이 복을 누렸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영적 가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므로 그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어떤 복입니까? 오늘 말씀처럼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2. 아내가 아내 역할을 바로 하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3절)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아내가 내실에 있습니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결실한 포도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정은 아내로서, 엄마마로서의 역할이 어떠냐에 따라 그 가정의 건강도가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어느 교회에 이런 장로님 가정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당회에서 목사님과 이웃 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되는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장로님이 연합예배를 드리자고 하신 것 같은데. 연합 예배는 안됩니다. 그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들을 통해서 며느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며느리 생각에는 모처럼 드리는 연합 예배가 그 지역에서 교회간의 협조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인상 면에서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목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시어머니 말씀을 듣지 마십시오. 연합예배는 참으로 좋습니다. 연합예배를 추진하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이 가정에서는 權威 秩序가 무너져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결정을 뒤집어엎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무례한 행동이지만 아내가 남편의 공적인 결정을 뒤집어엎는다는 것도 스스로 가정이라는 아름다운 집을 허물어버리는 일입니다.
가정의 구성원 모두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몇년전 “남편을 헐값에 팝니다”는 미국의 한 신문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즐기는 낚시 도구 사냥 도구, 그리고 사냥개까지 덤으로 얹어 판다는 이 광고를 보고 남편보다 사냥개를 보다 욕심내어 60여 명의 원매자가 나섰다 합니다.
남성 여러분 조심하세요. 어느 날 신문에 팔아버린다고 광고를 낼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웃어넘기면 그만이겠지만, 남편의 지체나 권위가 매매 대상으로까지 타락하고 그나마도 사냥개 한 마리 값만도 못하게 시세나 가치가 하락돼 있다는 현실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이 되어 亂離를 쳐도 성경은 너무나도 확고하게 못을 밖고 있습니다.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자의 머리는 男子요, 그러기에 어떤 가정이든 이 질서와 순서를 깨면 그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家庭도, 敎會도, 國家도, 어느 共同體든지 권위와 질서가 세워지면 든든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너지면 그 조직의 장래는 어둡게 됩니다.
로마가 世界를 지배할 당시, 세계의 어머니를 대표할 수 있는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참회록을 후세에 남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입니다.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클라우디오> 황제를 암살시키고 그녀의 아들인 <네로>를 조속히 왕위에 즉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자식인 <네로>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이 그의 내적 갈등과 정신적 고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극도의 방탕과 방종의 생활 속에 빠져있을 때 어거스틴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생활 했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방탕의 자식 어거스틴을 성(ST) 어거스틴이 되게 한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사도 바울 이후 基督敎 교리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정리한 최대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으며 위대한 어머니의 배후에는 반드시 위대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건강한 가정이 되려면 아내다운 아내,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3. 자녀가 함께 식탁을 나누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食卓을 함께 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왕이 신하와 함께 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입니다. 왜요? 교재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같이 함으로 마음이 나누어지며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현대의 비극은 가족 構成員이 너무들 바빠서 식사를 같이 할 시간이 없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은 꼴두 새벽에 일어나 나가고 다들 제각각 식사하고 나갑니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대화가 단절됩니다.
결국 심각한 갈등과 아픔이 생기고 문제가 심각해 진 상태에 가서 손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 했습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로 이스라엘에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여기서 나는 기름은 식용 이외에도 약용, 등불용으로 다양하게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서도 기름을 바랐다는 것은 올리브기름을 의미합니다. 여행 다닐 때도, 어디서든지 유용하게 쓰이는 기름처럼 자녀들이 그렇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제일 염려 하고 신경 쓰는 부분은 아마도 자녀 교육일 것입니다. 그런 그 자녀를 누가 책임 질 것입니까?
이 악한 시대에 누가 지킬 것이며 누가 이끌 것입니까? 오직 가정과 교회인줄 믿으셔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자녀를 만들어 냅니다.
同居문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메스컴을 통해 들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성공회 교회에 동성애자가 신부로 세워졌답니다. 수많은 대학생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함께 동거하며 성을 즐기다가 어느 날 맘에 안 들면 미련없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純潔이라는 단어, 責任이라는 단어는 별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며느리가 되고 우리 사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同姓愛도 우리 곁에 바짝 와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하고 성행위를 하고 여자와 여자가 성행위를 하는 것을 동성애라고 합니다.
어느 날 여러분 자녀가 어느 놈과 동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쩔 것입니까? 어느 날 여러분의 아들이 왠 남자 놈을 데리고 와서 둘이 결혼하겠다고 또는 나는 그 애를 사랑한다고 한다면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여러 명 병원에 실려 갈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자식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어쩔 것입니까? 이미 가정은 더 이상의 그들의 保護裝置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입니까?
聖經이 해결 방법을 하나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께 식탁을 둘러앉는 것입니다. 단순히 먹는 시간이 아닌 대화의 장, 교재의 시간을 식탁을 통해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고 치료의 길이 열리며 건강한 가정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식구란 말이 바로 상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는 말입니다. 하루 세끼 다 그렇게 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끼만이라도 아니면 일주에 3끼만이라도 그런 식탁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일 미련한 사람이 남편에게 밥 차려 주고 “먹고 가~” 그리고 들어가 자빠져 자는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밥을 차리고 사랑으로 대화하면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식사 시간은 밥만 먹는 시간이 아닌 사랑을 나누고 먹는 시간입니다.
더 미련한 사람은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쳐 먹고 출근하는 남편도 미련한 사람이지요. 밥이라도 얻어먹고 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어도 가족은 한 식탁을 함께 둘러앉으시고 함께 식사하는 밥상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聖經은 어떤 복을 주신다고 약속합니까?
1)시온에서 복을 주십니다. / 교회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2)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봅니다. / 평안의 복을 주십니다.
3)손자를 보는 長壽의 복을 누립니다.
교회를 통해 복을 주시며 太平聖代를 누리게 하시며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혹시 아직은 성경이 말하는 온 가족이 구원받은 가정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가정의 신앙 가장권을 언제까지 가지고 계실 생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정이 健康하려면, 복되고 亨通하려면 온 가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면서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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