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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이 말하는 휴식과 휴가/마11:28~30/2003년 8월10일설교

성경이 말하는 휴식과 휴가

마태복음11:28~30

2003년 8월 10일 주일 낮예배 설교 최일환 목사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설교:

휴가철이라 너도나도 바다로 산으로 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피서라고 하여 바다를 찾는 이가 제일 많고 溪谷으로 山으로 떠나기도 합니다. 아예 어떤 분은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기도 합니다.

“休暇”란 vacation 또는 holiday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休息”을 의미하합니다. 요즘 휴가는 “휴식이 아닌 苦生”이라고 합니다. 交通停滯에, 바가지 물가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휴식을 얻지 못하는 휴가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갑니다. 분명 그곳에서는 휴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인도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無人島가 꽤 되는데 그곳으로 배를 타고 가서 텐트를 치고 며칠 머물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휴대폰 전화도 통하지 않고 배를 전세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事故나 颱風 등의 위급한 상황 앞에서는 대책이 없어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가족밖에 없으니 조용하기 그지없어 좋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성도는 휴가를 어떻게 즐겨야 할까요? 또 성경이 말하는 휴가, 휴식은 어떻게 즐겨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안식을 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1)하나님이 安息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창조하신 후 제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날 쉬셨을까요? 6일 동안 일하시느라고 피곤하셔서 쉬셨을까요? 하나님이 쉬셨다면 아무것도 안하시고 가만히 계신 것일까요? 분명 우리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피곤치 아니하신 분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에서는 그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왜 7일째 쉬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십니다. 인간은 제6일째 창조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쉬었습니다. 즉 인간이 먼저 쉬고 일하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墮落하게 되자 욕심이 생겨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계명으로 정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그 안식일을 범하면 죽여 버리라고 까지 하시면서 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創造 原理를 따라 잘 쉬는 것이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늘 여러분에게 확인하여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 쉬는 존재가 아니고 쉬기 위해 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한번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일하기 위해 쉬는가? 쉬기 위해 일하는가? 질문에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일하기 위해 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일이 더 많아 지면 안 쉬고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파멸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버십니까? 돈 벌기위해 쉽니까? 잘 쉬기 위해 돈법니까? 해답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6일 일하고 7일째 쉬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쉼을 통해 행복을 누리라고 그날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죽으라고 일만하다보니 몸이 병이 드는 것입니다. 어느 공장의 경영자가 한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工場이 24시간 풀(full) 가동 된답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거나 기계가 멈추면 수천 만원의 손해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계도 일정한 때 쉬게 해야 한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답니다. 하물며 우리 육체는 어떻겠습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잉태한즉 쉴 줄 모르는 죄를 범하게 되고 쉬지 않으므로 사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원리를 이탈하게 되므로 인간에게 갖가지 질병이 찾아오고 육체가 고장이 나는 곳입니다. 결국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지만 실상 불행을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쉴 줄 아는 것은 복을 누리는 비결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休暇, 休息, 安息,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쉼이라는 단어만을 생각할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쉼은 “다른 종류의 일”을 意味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쉼을 얻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멍에가 무엇입니까? 그것도 “일”입니다. 일은 일이되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러기에 휴가란 일상적으로 하던 일에서 벗어나 “새 일을 自願하여 즐거워하며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休暇를 얻으면 무엇을 하나요? 실컷 잠자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몇 시간입니다. 뭔가를 해야 휴가지 아무것도 안하면 그것은 차라리 일하는 것이 낫습니다. 여행을 한다든지, 취미생활을 한다든지, 뭔가를 하여야 참다운 휴가입니다.

낚시하는 분들, 고생깨나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돈버는 행위가 아닌 돈들이면서 하는 행위이며 자원하여 하는 것이며 즐거워서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휴식입니다. 축구를 즐기는 분들, 돈벌기 위해 하는 프로 축구 선수는 勞動이고 일입니다. 그러나 쉬는 날 정말 힘들고 고생하며 심지어 다치고 깨지면서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휴식입니다. 쉼이란 단순히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 일상적이 아닌 것을 하는 것도 쉼입니다. 


3)이 쉼을 어떻게 활용합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의 과제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주일이 더 피곤하고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기에 주일은 중노동 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사실 목회자들은 주일이 녹초가 되는 날입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일에 교회 와서 녹초가 될지라도 그럴지라도 “안식”입니다. 자원해서 하는 것이고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주의 일은 노동이 아닌 주님을 섬기는 또 다른 안식이요, 쉼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메워주신 멍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이 메워주신 멍에를 메기는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29절입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뭘 배우라는 것입니까? 다름 아닌 멍에를 메신 주님의 자세입니다. “나는 마음이 溫柔하고 謙遜하니”입니다. 마음의 자세가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무거운 십자가도 쉽고 가벼운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길가다가 60은 넘은 듯한 할머니가 손자뻘 되는 아이를 업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하나도 힘들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그 손자가 짐이거나 남의 자식이라면 아마도 그렇게 엎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지워주신 멍에는 어떤 것입니까?

위대하신 주님이 맡기신 使命, 職分, 그것이 멍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요? 그 멍에를 지는 “마음 자세”가 즐겁지도 않고 “나만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되고 더나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득하기에 그토록 힘들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멍에를 주신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어찌 그분이 보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어찌 알아주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헌신과 충성이 전부 상과 연결되는 것이고 우리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처럼 무거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무엇으로요? 마음을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고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은 휴가를 어떻게 즐겨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안식은 일주일에 한번의 안식이 있습니다. 주5일 근무제를 기독교 시각에서 어떻게 볼 것이냐가 매우 민감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단합니다.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것입니다. 주 5일 근무제가 긍정적인 요소도 많으나 부정적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1)교회가 쇠퇴해 질 것은 불 보듯 뻔하고 2)享樂 산업은 현재보다 3배가 늘어 날것이고 따라서 3)사치성 소비가 늘어나고 4)이에 따른 경제적 소득을 위한 부부 맞벌이는 더 늘어나게 되고 또한 경제적 문제로 많은 가정이 경제적 파탄을 맞게 되고 , 그리고 5)나아가서는 불건전한 휴가 문화가 불륜을 조장하여 가정 파탄을 조장할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언제부터 쇠퇴해졌는가? 서구의 가정이 이혼과 파탄이 언제부터 급증했는가? 주 5일 근무제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를 넘어서다 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를 짓게 되고 결국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시대가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어도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달라지지 않았고 더 나아가 환경이 말씀을 앞서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휴식의 복을 죄의 도구로 사용치 않아야 합니다.

 

2. 예수님 안에서 누려야 합니다.

참된 휴가는 예수 안에서 누려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1)율법의 행위로 의로움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행함으로서 구원 얻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말을 따라 전승, 전통, 형식까지 지키는 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는 이 율법주의적 계율의 중하에 시달리며, 그 강요에 허덕이는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초청의 말씀을 발하신 것이다.

2)자신 일과 인생의 질고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며.

3)인생의 근심, 걱정(염려), 고통, 불행 등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주님께로 나아오는 데서 휴식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들로, 바다로 나가라” 하지 않고 왜 주께로 오라 하실까요?


예수님만이 진정한 휴식과 안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휴식과 안식은 일시적이고 잠시 잠간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고통을 가져다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주께로 오면 쉼을 얻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휴가를 즐기시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부족했던 기도를 채우시고 영적 생활로 채우시는 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이 주신 멍에를 메고 누려야 합니다.

참된 休息과 安息은 모든 멍에를 벗어버리는데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이 지워주시는 멍에를 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쉼을 얻게 된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멍에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명입니다. 직분과 사명, 이것을 위해 주님은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證據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휴가 때도 사명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맡은 직분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사명과 직분은 나를 얽어매는 개 목줄 같으나 실상은 그 사명 줄이 없으면 우리는 즉각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멍에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시기를 축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주님에게서 휴식을 배워야 합니다.

도대체 쉬는 것과 배우는 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참된 휴식을 얻기 위하서는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휴식을 줍니다. 

왜냐하면 배움은 새로운 사실과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으로써 새로운 사실이 다가오고,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그래서 배움은 사람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고 신선하게 만들고 재미있게 만들고 열정적으로 만듭니다. 바로 여기에 휴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했듯이 우리도 멍에를 지고 하나님께 나아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의 마지막은 천국의 안식입니다.

계시록14:13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참 안식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안식을 이 땅에서도 맛을 봐야 합니다. 일에 종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의 복”을 잘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일에 노예가 되지 말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휴가”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휴가를 예수 안에서 계획하시고 예수 안에서 참된 휴식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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