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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타락한 성문화의 유혹/창39:7~10/2003년 8월 31일 설교

타락한 성문화의 유혹

창세기39:7~10

2003년 8월 31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설교

39: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39: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得罪하리이까?.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설교: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는 대부분 “불륜”을 주제로 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얼마전 <현대 비디오>라는 회사가 집계한 시청률 인기순위를 보면 MBC의 “고백”과 “인어아가씨”, 그리고 최근 종영한 KBS의 “거침없는 사랑”이 1,2,3위를 달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공통점에 그런 드라마가 이상하리만큼 불륜과 성적 부도덕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역사 드라마’는 간혹 보지만 저녁 드라마, 아침드라마를 안 보려고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습니다. 왠고하니 대체적으로 드라마 주제가 이혼, 불륜, 그리고 삼각관계, 등 불건전한 사랑을 주제로 방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메스컴이 만들어 내는 “불륜의 문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려지고 있고, 그래서 시청자들이 나도 한번 저런 사랑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실제 생활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져 가정 파탄을 유도하고 있고 이혼과 결별을 쉽게 결단하게 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그렇게 하는 것이 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본인들도, 그리고 자녀들도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미국도 그런 드라마가 날마다 방영되었고 결국 70년대 후반대와 80년도 초반에 세 쌍의 부부 중 두 쌍이 이혼하는 비율로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엄청나게 파생되었답니다.

그래서 이른바 “신가족운동(New Family Movement)”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새롭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도 조만간 “신가족운동”을 벌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가족의 해체와 불리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그것도 모자라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라면서 공공연히 동성애를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갖고 이제는 그들도 정상적 부부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시대, 여성이 남성이 되려고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을 공공연히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리수 같은 사람은 법적으로 여자로 인정되어 주민등록증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스리는 타락한 성 문화는 우리 곁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 타락한 성문화를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까요?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선 몇가지 살펴보면

A.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타락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 한 후부터 육체적 본능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한 결혼의 법칙을 버리고 일부다처를 갖기도 했고 온간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신매매, 원조교재 같은 추악한 모습까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B. 그 배후에는 사단의 간교한 전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를 어찌하든지 깨트리고 변질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 특별히 “性”을 이용해서 가정도, 교회도 박살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적 부도덕은 한방에 신앙도, 가정도, 직장도, 명예도 날릴 수 있게 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단의 간교한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어떻게 성도를 성적으로 타락하도록 유혹하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은밀하게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주인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도 타락과 부도덕은 방법이 똑같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부인은 부귀, 권세, 영화를 누리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왕을 경호하는 경호대장으로 당대에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런 자의 아내로서 뭐가 부족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저런 것을 다 소유했으면서도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의 종인 요셉, 그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던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그 요셉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요셉이 이때 나이가 약 27세정도 전후입니다. 얼마나 血氣方壯할 나이입니까? 그러니 날마다 요구하며 다가오는 그 유혹, 요셉도 참으로 힘든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요셉만 보면 주인으로서의 체면도 잊어버리고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유혹을 합니다. 나중에는 동침을 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의 유혹은 처음에는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 노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동성애도 처음에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더니 이제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엇그제 신문에는 외국 가수들이 노래하다가 둘이 키스하는 장면이 실렸습니다. AIDS가 동성애자들에게서 생기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부끄러움도 안 탑니다. 그러기에 동성애자들이 공공연히 커밍아웃이라는 것을 합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이 커밍아웃이랍니다.

불륜의 유혹도 처음에는 은밀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공개적으로 들어내 놓고 합니다.

2. 날마다 유혹합니다.

유혹이 어쩌다 한번이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는 날마다 이루어졌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날마다 요셉에게 요청을 합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여러분의 가정을 깨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해서 유혹을 합니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동원합니다.

오늘날은 인터넷으로 유혹하고 직장에서 유혹하고 길거리에서 유혹합니다. 온 세상이 음란으로 가득하여 수없이 유혹을 당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내 남편은 괜찮겠지, 내 아내는 괜찮겠지 방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0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습니다. 옆의 배우자를 보세요. 믿을 만 합니까? 그러나 사단의 유혹은 끈질깁니다.

이제는 드라마를 보지 마세요.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더 긴장하여야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건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단입니다.


얼마 전에 간통죄를 폐지시키자는 주장을 하다가 여론에 밀려 쑥 들어갔습니다. 그런 법을 왜 없애자는 것입니까? 그 법 때문에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다 그 짓을 하는 인간들이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도 폐지되면 이제 뚝 터진 강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3. 앞날이 보장 될 것처럼 유혹합니다.

사단은 유혹할 때 은밀히 하면서 비밀을 보장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또한 그 요구를 들어주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거짓 약속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아미도 보디발 부인은 요셉에게 이런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네가 내 말을 들어주면 너를 노예에서 풀어 자유인이 되도록 하겠다.”

요셉도 솔깃했을지 모릅니다. “한번 들어주고 애굽을 벗어나 고향땅 가나안 땅으로 가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그는 속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간교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감옥을 갔으나 그 길은 결국 애굽의 왕을 만나는 길이 되고 결국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만약 가정을 한다면 요셉이 그 보디발 부인의 요청을 들어주어 그와 동침했다면 아마도 그 부인은 요셉이 후한이 될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이런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요셉이 대처한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1.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성적 유혹은 사단의 간교한 유혹입니다. 그러기에 타협하거나 양보하거나 눈감아주면 더욱더 달려듭니다. 아예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모독하는 것을 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요셉의 입장에서는 상대는 주인이고 자기는 종입니다. 신분상 거절키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는 상대를 설득합니다. 그것이 죄이며 그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인정을 살피고 주저하 면 안 됩니다.   


2.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그 유혹을 뿌리치고 죄를 범치 않았던 이유는 그곳이 사람에게도 죄지만 하나님께 짓을 범하는 무서운 짓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절)

성적 타락과 부도덕이 단순히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지으신 거룩한 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전입니다.(고전3:16) 이 몸을 가지고 죄를 범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멸하십니다.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그러기에 순결을 깨트리고 가정을 무너트리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고통이 뒤따르는 음란을 왜 행합니까?

순간적인 판단과 절제치 못하는 정욕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무장해야 하고 빈틈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밧세바 사건도 순간적인 유혹을 통제하지 못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어야 하고 성령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경제를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대통령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적 부도덕이 휘말려 임기내내 고통을 겪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온전한 가정이 별로 없이 이혼과 재혼으로 얼룩진 사회이지만 지도자들만큼은 도덕적 순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 결함이 있는 자는 아예 정치에 나설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왜요? 자기들은 별짓 다하면서도 지도자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 부패되고 타락했어도 지도층 20%는 생명처럼 도덕적 순결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3. 듣지도 말고 함께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요셉은 그 유혹을 받은 후부터는 그 여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함께 있지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왜요?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단은 빈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하고 듣다보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공격 대상은 목회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해 하셔야 할 일은 목회자들도 목회 상에서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심방할 때 절대로 제 혼자가지 않습니다. 간혹, 구역을 인도할 때 구역식구들이 모여 있을 때쯤 해서 가느라고 부러 5분정도 늦게 가기도 합니다.

남에게 오해를 사게 해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여행도 혼자 가지 않습니다. 해외여행도 반드시 사모를 동반하십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공처가, 경처가라 소리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빈틈이 보이면 교인들 중 약간 이상한 분들이 그 빈틈으로 끼어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이상한 소문이 나면 “아닌 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면서 오해가 증폭되고 별 소리가 다 납니다. 결국 교회는 심각한 구설수에 시달리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생활 중에 이런 저런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현재의 배우자와 이모저모로 비교되기도 하고 그러다 흔들리고 넘어갑니다.

한번 두 번 함께하다보면 정들고 그러다보면 넘지 말아야 할 38선을 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습니다. 한번의 전과는 두 번, 세 번을 너무 쉽게 무너트리게 됩니다.


사단은 매우 간사합니다. 딱 한번만 하며 유혹하다가 두 번쯤이야 하고 그러다가 세 번째는 감각이 무뎌지게 만들고 이제는 완전히 욕망의 포로가 되게 만들어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그러기에 요셉처럼 승리하려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불이익이 주어져도 죄를 지울 수 없다는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 길이 어찌 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망하는 미련한 길 같으나 결국은 승리하는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의 감옥행을 보세요.

여자가 욕망을 채우려다가 거절당하자 한을 품게 되고 결국 억울한 누명을 입고 감옥에 갑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집주인 보디발 장군은 그 상황 속에서 요셉을 죽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이지 않고 감옥에 수감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요셉을 신뢰 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기 부인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부인 체면을 세우기 위해 죽이지 않고 왕궁 감옥에 수감한 것입니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39:3)

그 결과 그는 그 감옥에서 정치인들과 교제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 그곳에서 만났던 정치인 때문에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요셉의 그 감옥행은 하나님이 높이시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정절을 지키려다가 고난을 당하여 망한 것 같으나 그 길은 결코 망하는 길이 아니라 사는 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지금도 여러분을 노리고 있습니다. 타락한 성문화는 우리 곁에서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불륜의 성관계, 동성애, 음란, 탐욕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어찌 할 것입니까? “나는 괜찮아”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다 그런데 어쩔 수 없지” 할 것입니까?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타락한 성문화를 우리와 우리의 가정을 넘보고 있습니다. 어찌할 것입니까? 누가 지킬 것입니까?  


통성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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