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進路를 바꾸셨나?
출애굽기 14:1~14
2003년 9월 14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1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4:2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14: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
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14:5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14:6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14:7 특별 병거 육백 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14: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14: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친 데 미치니라
14:10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설교:
世上萬事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완전한 人本主義 사상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선을 행하려고 맘을 먹어도 안 될 때가 많고 아무리 이루어지기를 소원해도 우리 뜻대로 안되는 것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려 흉년이 닥치게 되었고 엊그제는 태풍 매미가 온 나라를 전쟁 치룬 것 같이 망쳐놓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이 태풍이 한국을 향해 올 것이라고 지난 월요일에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 저 태풍이 우리나라에 피해를 입히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도 이루어지지 않고 매섭게 나라를 할키고 지나갔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더라구요.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 땅에 계속해서 비를 내리게 하실까? 이 땅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우리는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애굽 땅에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80년에 걸쳐 모세를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10가지 재앙을 애굽땅에 내리셔서 도저히 포기할 것 같지 않던 바로를 항복시키신 하나님, 그리고 그땅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을 버리고 돌이켜서 홍해바다가 있는 바알스본 맞은편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으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었던 일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왜? 어떤 目的으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곧바로 가면 적어도 일주일이면 가나안땅으로 갈수 있는 지름길로 가면 좋았었을텐데, 왜,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슨 일을 하실 때 내가 원한바대로 다 되었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사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바대로 안되는 것일까요?
물론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지요.
1)능력이 부족해서일수 있구요
2)능력은 있는데 실수를 해서일수도 있구요.
3)더 나아가서, 노력을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뭔고하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되었다고 다 성공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되었다고 다 축복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원하는 대로 되는 그것이 복이고 성공일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기도하실 때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의 경로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하루라도 빨리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원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 앞바다 바알스본 맞은편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일에는 이유 없는 일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의 진로를 바꾸셨나?
1. 애굽 사람에게 여호와가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1~4절)
당시에 애굽 사람들은 바로 왕을 신으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바로라는 말은 파라오라는 단어로 태양신이라는 뜻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의 왕을 신으로 추앙하며 그 신의 은총 속에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기들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왕의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여호와가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가게 하셨고 애굽 군대는 물속에서 수장되어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무로 바로는 한계가 있는 인간이고 여호와가 능력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과 전능하신 분이 되심을 여러 번 우리에게 느끼도록, 그리고 깨닫도록 하시고 계십니다.
4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가 그(바로)와 그 온 군대(바로 군대)를 통해 영광을 얻어 애굽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려고 이렇게 이스라엘의 길을 홍해 길로 인도하신 것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옛날 바로왕은 사단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붙들어두고 영원히 종살이를 시키려 했던 그 바로는 사단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오늘날도 그 사단의 세력은 우리를 그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아래서 벗어나려는 사람을 그냥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신자들에게 고난과 아픔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나오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방해하려고 합니다.
환난이 생기고 우환이 생기게 하고 친척간의 갈등, 부부사이의 갈등을 일으켜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애굽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게 하고 되돌아가려고 하는 유혹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결국 어떤 이들은 이런 고통과 고난이 두려워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더 쎄냐? 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바로왕이 철권을 휘두르고 신으로 자칭하고 백성들의 섬김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알게 하려고 이스라엘의 길을 그리로 인도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었다고 힘들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감옥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못된 짓을 하다가 독방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할일이 없어 그안에 있는 성경책을 읽다가 예수를 믿었답니다.
그러니 감옥 간 것이 꼭 망한 것 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 뜻대로 안되었다면 그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기회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확인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10~12절)
하나님이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준 것이 아까웠습니다. 결국 뒤쫓아 가기로 하고 군대로 소집하여 추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멀리서 애굽 군대가 추격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난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사람이 있기도 했으나 많은 사람이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왜 이 모양일까요? 얼마 전 애굽 땅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아 알텐데 왜 이 모양일까요? 그들의 신앙이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앙은 반쪽 신앙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장 눈앞의 현실은 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쪽 신앙입니다.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쳤으면 현재 되어지는 상황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쪽만 바라보면 죽었다 싶을 것입니다. 당장 죽음이 눈앞에 닥치는 데 어찌 염려되지 않고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또 다른 한편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잊으면 안됩니다.
또 하나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10가지 재앙을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지 않는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봉착하면 원망 불평으로 한탄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주신 약속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찌 보면 얄 굳은 분 같아 보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의 가나안을 주시기 앞서서 가끔 우리를 건드려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을 확인하십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질병으로, 또는 예기치 못한 고난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우연이라고, 또는 재수 없어서 당한 고난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치 않는 상황에 넣으실 때는 뭔가 뜻하시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면 놀라운 은총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떨어지면 일정한 기간만큼 재수를 또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또 똑같은 시험을 하시곤 합니다. 물질로, 건강으로, 사업으로, 자식으로, 각종의 문제로 우리를 건드려 보십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찌 반응하셨습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과 불평, 두려움과 공포에서 힘들어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똑같은 상황을 당하고 있는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그런 狀況 下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바라보는 믿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 그들을 애굽에서 구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여기서 죽이려고 인도하셨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큰소리치며 두려워 말라고 하고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싸우시는지 가만히 보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40년 광야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위대한 믿음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장안의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움켜잡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실 모습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힘든 때일수록, 고통스러운 상황일수록, 그리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하나님이 내 믿음을 확인하시는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거든 원망 불평 두려움에 싸이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떻게 일하실 것인가를 믿음의 눈으로 지켜보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구원이 온전히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습니다.(13~1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은 그 누구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온 것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세의 지도력으로 나온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여호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임을 그들이 알도록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진로를 홍해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홍해를 가르셨고 애굽 군대가 그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근접치도 못하게 하셨고 오히려 홍해에서 沒死당하게 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요?
이유는 오직 하나, 구원은 여호와에 의해 이루어진 위대한 사건임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를 믿어 구원 얻었으나 실상은 내가 믿어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믿게 하셔서 구원을 거져, 공짜로 부여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에 있어서만큼은 우리의 공로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는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고 은혜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모릅니다. 타종교,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구원이 사람이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며 더 아나서는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혜를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한 도시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들은 675명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자 85% 정도의 사람들이 성경에 나타난 대답을 하지 못했답니다.
1)교회에 등록하고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2)선한 일생을 삶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런가 하면 단지 3)성경을 읽음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있었고 4)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기 혼자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5)더욱이 무엇을 믿든 간에 자기가 믿는 것을 굳게 지킨다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이 없나요?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거듭남 곧 예수의 어린양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못 박아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있으면 된단 말이냐고 오해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구원후의 상급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마치 모친의 태안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나 태어난 후는 배고프면 울어야 먹고 노력해야 되듯이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은 사람은 봉사하고 전도하고 헌신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랍기에 감사함으로 봉사하고 전도하고 헌신하는 것이나 그런 행위에는 반드시 하나님은 상을 약속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을 감사하며 그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나를 통해서 우리 주변에 이루어짐을 기대하며 전도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구로 쓰시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여기로 인도하시고 지금의 삶으로 집어넣으신 뜻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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