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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못 본척하시는 은혜/롬3:9~27/2003년 9월 7일 설교

못 본 척하시는 은혜

로마서 3:9~27

2003년 9월 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 예배 설교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설교:

지난주간 우리는 뉴스를 들으면서 참으로 찹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고 법을 만들고 법을 잘 지키도록 정부를 감사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서로 욕설을 퍼 붓고 머리를 끄잡아 당기고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카메라 기자가 자신들의 욕설하는 장면을 그대로 찍고 있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육두문자를 쓰면서 싸우는 모습은 우리나라 장래가 캄캄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왜 이 모양입니까? 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런 것, 몰랐냐?” “인간은 다 원래 그런거야.”하십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그분들이나 우리 들이나 다 같습니다. 

이 세상에 罪 없는 자 없습니다. 교도소 안에 있는 자는 들킨 죄인, 교도소 밖에 사는 우리는 안 들킨 죄인에 不過 합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인 것에 異義를 提起 할 자 없습니다. 그런데 죄인이면서도 죄인이라 이야기 하면 좋아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저도 病院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제 친구 목사님중에 정말 병원가기를 두려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주사 맞는 것을 아주 두려워합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몸이 안 좋다하여 병원에 가서 진찰을 좀 받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병원은 안 간답니다. 왜 안가는냐 했더니 괜히 이상한 소리할까봐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곳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을 병이면 그럴 수 있으나 만약 심각한 병이면 早期診斷이 필요한데 겁나서 안가면 죽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초기에 발견하면 癌도 치료될 가능성이 80~90%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마 내가, 괜찮겠지 하면서 미루다가 일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의사들이 제일 골치 아픈 환자는 자기 병을 자기가 알고 자기가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 병은 내가 아는데 위장이 좀 시원찮습니다. 그러니 소화 기능을 회복시키는 약을 처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다는 거예요. 자기 생각과 다르게 진찰하면 돌팔이라고 단정하고 그 병원에 안 간답니다. 그러니 심각하지요. 그래서인지 그런 사람일수록 일찍 죽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을병이 들어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으면 4단계 증세가 나타난답니다.

1)否認 단계입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병을 확인합니다.

2)憤怒 단계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왜 하나님은 나쁜 놈들은 안 데려가고 나 같은 사람을 데려 가나? 하며 분노합니다. 

3)妥協의 단계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합니다. 고쳐주시면~~하겠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15년을 연장 받았습니다.

4)絶望의 단계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이 단계가 없거나 극히 짧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사역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무서운 죽음은 왜 인간에게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들어오기 전 까지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하나님처럼 영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옴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斷切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맺은 언약을 아십니까? 창2:16~17절을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정령 죽으리라” 이것이 인간의 범죄의 결과였습니다. 죽는 다는 것은 생명이 떠난 것을 의미하기도 하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 인관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어떤 죄인이며 그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 죄를 범한 인간은 어떤 모습입니까?

인간의 죄는 그 열매를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에는 참으로 무서운 죄와 그 열매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꽃은 가까이 볼수록 아름답지만 인간과 그림은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가까이 하고 한거풀 벗겨보면 다 냄새나고 추한 것이 보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0절부터 18절을 보세요. 다같이 읽읍시다.

“3:10 記錄한 바 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無益하게 되고 善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毒蛇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詛呪와 惡毒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破滅과 苦生이 그 길에 있어 3:17 平康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義人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바르게 사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고, 죄를 해결하려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 치우쳤고 무익하고 선을 행하는 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는 죽이는 일을 수없이 자행하고 사람을 속이고 저주와 惡毒이 가득하며 사람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破滅과 苦生이 그의 평생에 따라다니며 평강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라고 한 말이 바른 말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나 속에서는 온 것 죄악과 독이 가득한 죄 덩어리 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인간에게 각치는 것은 사명과 심판 밖에 더 이상 다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實體임을 인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고 쓸만한 인간인 것 같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바리새들을 향해 하셨던 책망이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인 것입니다.


화있을진저 하시며 외쳤던 말씀을 보세요.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속 다르고 겉 다른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2.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한마디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법을 만들고 수많은 죄인들을 잡아 가두고 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마라 하셨으나 인간이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고 그 율법으로 해결도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법을 만드는 것이냐? 왜 해보나 마나인 율법을 주셨냐 하면 인간이 죄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것입니다. 간혹 뉴스나 언론 매체를 보면 적용 법률이 없어서 처벌을 못한다고 하는 소식을 들어 보셨습니까?

세상의 변화를 法律이 신속하게 대응을 못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휴게 텔이라는 것이 새로 생겨서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경찰들이 그 휴게 텔이라는 것에 들어 닥쳤는데 그들을 잡아들일 법적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잡아들일 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난감한 것은 경찰입니다. 나쁜 짓을 한 것은 분명 알겠는데 법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 무죄인 것입니다.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대로 지켜야만 죄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그 율법을 지켜 구원 받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기에 우리 스스로가 죄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으나 죄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정령 죽으리라 하신 대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死亡이라는 법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가 있어 그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대신 속죄하셨다고 하여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속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공로로 죄 값을 치룬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기록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여기에는 누구든지 차별이 없습니다.

世上은 철저하게 사람을 差別합니다. 피부색깔을 가지고 차별하고 財物과 권력을 가진 것을 가지고 차별하고 얼마나 배웠느냐, 배운 것을 가지고 차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차별치 않으십니다. 특별히 구원을 베푸는데 있어서 어느 누구도 차별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얼마 전 어르신들을 모시고 강원도 새말에 숯불 가마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우리 같은 노인네를 보살펴 주셔서 이런 곳까지 데리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더라고요. 그 말 들으며 한편으로는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서글프더라고요. 노인이 뭔 죄가 있나요? 왜 세상이 차별을 하느냐 말입니다. 자식들도 노인은 아예 젖혀 놓고 휴가를 갑니다.

그야말로 늙은 것도 서러운데 사람 나이로 差別하니 세상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絶對로 차별치 않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오히려 어르신들을 더 귀히 여기시고 공경하라고 명령하시고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까지 하십니다. 

그래서 23절 24절이 말하는 것이 바로 그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그 대속을 하시기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어 마땅할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고 의롭다, 죄 없다, 올바르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것!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 속담에 "강을 건너면 하나님은 잊혀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위험 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나 그의 도움을 받아 위험을 극복하고 나면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일이 유감스럽게도 많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이 베푸신 그 엄청난 은혜를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여 있음을 믿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하다고요? 예수 믿는 사람은 죄가 없어서 성도인줄 아시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고 살뿐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깨닫고 살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라도 하나님의 은혜 없으면 살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중에 은혜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두 가지입니다.

1)길이 참으시는 은혜입니다. 

25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은혜 베푸실 때 길이 참으십니다. 때로는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길이 참고 기다리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때를 가리지 않고 베푸시는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잘나서 누리는 줄로 알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길이 참으십니다.


철모르는 우리, 분별력 없는 우리, 그리고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우리를 향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우상 앞에 어리석은 짓을 수십 년 동안 행한 우리, 그런 우리를 향해 길이 참으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철모르는 지식을 향해 그냥 참으셨듯이…….


2)看過 하시는 은혜입니다.

간과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못 본척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우리 죄를 말입니다. 수업이 많은 죄를 지었고 수없이 많은 악행을 했으나 그 대속으로 모든 것을 못 본 척하시며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은혜입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셨으면서도 안 보신 척, 하시면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 은혜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은혜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늘 주의 은혜를 잊지 말고 그 은혜를 찬양 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인 것입니다.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처럼 수없이 많은 찬송가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은혜 아니면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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