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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옥한흠목사

[스크랩] 절대적인 은혜-믿음의 의(옥한흠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2:15~16
제목 : 절대적인 은혜 - 믿음의 의
옥한흠 목사

「내가 왜 예수를 믿는가?」하는 문제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이나 영적인 상태를 평가하게 됩니다. 바울은 16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정죄 받지 않더라도,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면제를 받지 못합니다.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고를 받느냐에 따라서 죄인이 되기도 하고 의인이 되어 영생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통탄할 일은 많은 교인들 중에 예수를 믿는 이유가 의롭다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질적인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면 영적으로 고갈을 당하게 되고 감격과 감사가 사라지며 현실적인 욕심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의」에 대하여 교인들의 반응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선행으로 의롭게 된다는 불신자적인 반응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과 선행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합해야 한다는 로마 카톨릭적인 사고입니다.
셋째, 오직 예수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고나서 하나님 앞에 한 선행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로 인정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가 철저하게 포기해야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16절에 나오는「율법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율법의 행위」라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그만큼 인정 받는 선행을 말합니다. 이런 선행을 철저하게 내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를 인간표준에다 놓고 선행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선행이 얼마나 인정 받을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비교해 봐야 합니다.
먼저 욥과 우리를 비교해 봅시다.
그는 이방인 중의 가장 의로운 자입니다. 그의 선행을 하나님까지도 인정하셨으며 마귀가 살펴보아도 헛점이 없는 사람으로 눈이 가는대로 마음이 따라가지 아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과 대면하자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회개했습니다(욥기 42장 5-6절). 욥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나타났다면 우리 역시 죄인입니다.

다음으로 유대인 중의 한 사람을 우리와 비교해 봅시다.
아브라함이나 바울은 너무나 수준이 높으므로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름없는 청년을 생각해 봅시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계명을 지키라고 하자 그는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계명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가 있습니까? 유대인과 비교해도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도 나중에 자기 「의」에 걸려서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므로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에 있으면서 스스로 무엇인가 자랑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다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너무나 모릅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택하든지 아니면 「예수」를 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를 취하는 이상 「율법의 행위」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를 철저하게 구원 조건에서 배제시킨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창세기 6장 5절).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의롭게 되는 것이 전적으로 예수 믿음으로 오는 줄을 알기 때문에 항상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의 옷」을 빌려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옷 입고선 우리를 보고 죄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구원의 기쁨이 샘처럼 솟아야 합니다.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축복을 모르면 마음 속에 구원의 감격이 없고 헌신의 열정이 식어져 버립니다.

출처 : 교회와 목회와 목사
글쓴이 : 맑은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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