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2년 9월 30일
설교 : 옥 한 흠 목사
본문 : 시편 126:1~6
제목 : 눈물 없이 무엇을 거두리요?
본문에서「우리」라는 주인공들은 눈물로 씨를 뿌렸던 한 때를 돌이켜 보면서 감격에 젖어 꿈꾸는 자와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유대나라가 부패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자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중에는 소수의 경건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서 남은 자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루 하루가 숨막히는 지옥의 연속으로 온 민족이 멸족을 당할 큰 위기를 겪으면서 금식하고 통곡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현실과 타협하여 나라와 민족을 포기하고 편한 길을 찾아 보겠다는 강한 유혹 앞에 나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닥의 불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나면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불신한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바라보고 눈물로 씨를 뿌리는 고통을 참으면서 형극의 길을 걷기로 결단한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70년이 되자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 고레스왕을 통하여 자유를 선언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자들은 포로로 잡혀왔던 경건한 신앙인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은 포로생활 70년을 통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아니하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없다는 영구불변의 진리를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눈물의 수고를 하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세계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진리입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느니라"(고린도후서 9장 6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먼저 우리는 일반사회 역사에서 이 진리가 분명히 증거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온갖 비극과 역경을 씨앗으로 심어서 명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들을 우리는 압니다.
베토벤이 귀가 먹은 다음에 「운명」이라는 감동적인 작품을 남긴 것이나, 밀턴이 43세에 시력을 잃은 후에 쓴 「실락원」은 정말 눈물로 씨를 뿌린 결과의 열매였습니다. 또 미국의 선조들이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을 지금 후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아 기쁨으로 거두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는 힘들이지 않고 많은 열매를 얻으려하고, 수고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의 걱정스러운 병폐가 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여 본을 보여 주지 아니하면 이 병든 사회는 치료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발견하여 순종하는 삶이며,
셋째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줄 알아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는 헌신의 삶입니다.
거룩과 순종과 헌신은 신앙생활의 삼위일체로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아픔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눈물을 약함의 상징으로 보지만 성경에서는 강함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도로 씨를 뿌리는 자」와 같은 말입니다. 기도의 골방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살려다가 실패할 때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강하게 해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생활은 이 눈물의 골방에서 준비되고 정리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신앙생활을「짓는다」고 하지 아니하고「심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집을 지으면 자연은 그 순간부터 허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심는 것」에 대하여서는 도와줍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심기우면 자연은 잎이 나고 줄기가 나게 하며 열매를 맺도록 끝까지 도와줍니다.
신앙생활은 심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고 마지막 열매를 거두는 순간까지 성장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두어야 할 추수는 이 세상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 세상에서 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추수의 알곡을 모으시는 이는 예수님이요, 추수할 일꾼은 천사들이요, 우리는 추수에 동참하여 주님과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끝까지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설교 : 옥 한 흠 목사
본문 : 시편 126:1~6
제목 : 눈물 없이 무엇을 거두리요?
본문에서「우리」라는 주인공들은 눈물로 씨를 뿌렸던 한 때를 돌이켜 보면서 감격에 젖어 꿈꾸는 자와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유대나라가 부패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자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중에는 소수의 경건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서 남은 자들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루 하루가 숨막히는 지옥의 연속으로 온 민족이 멸족을 당할 큰 위기를 겪으면서 금식하고 통곡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현실과 타협하여 나라와 민족을 포기하고 편한 길을 찾아 보겠다는 강한 유혹 앞에 나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닥의 불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나면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불신한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바라보고 눈물로 씨를 뿌리는 고통을 참으면서 형극의 길을 걷기로 결단한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70년이 되자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어 고레스왕을 통하여 자유를 선언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자들은 포로로 잡혀왔던 경건한 신앙인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은 포로생활 70년을 통하여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아니하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없다는 영구불변의 진리를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눈물의 수고를 하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세계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진리입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느니라"(고린도후서 9장 6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먼저 우리는 일반사회 역사에서 이 진리가 분명히 증거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온갖 비극과 역경을 씨앗으로 심어서 명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들을 우리는 압니다.
베토벤이 귀가 먹은 다음에 「운명」이라는 감동적인 작품을 남긴 것이나, 밀턴이 43세에 시력을 잃은 후에 쓴 「실락원」은 정말 눈물로 씨를 뿌린 결과의 열매였습니다. 또 미국의 선조들이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을 지금 후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아 기쁨으로 거두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는 힘들이지 않고 많은 열매를 얻으려하고, 수고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의 걱정스러운 병폐가 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눈물로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여 본을 보여 주지 아니하면 이 병든 사회는 치료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님,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서 발견하여 순종하는 삶이며,
셋째는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줄 알아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는 헌신의 삶입니다.
거룩과 순종과 헌신은 신앙생활의 삼위일체로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아픔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대부분 우리는 눈물을 약함의 상징으로 보지만 성경에서는 강함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도로 씨를 뿌리는 자」와 같은 말입니다. 기도의 골방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살려다가 실패할 때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강하게 해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생활은 이 눈물의 골방에서 준비되고 정리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신앙생활을「짓는다」고 하지 아니하고「심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이 집을 지으면 자연은 그 순간부터 허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심는 것」에 대하여서는 도와줍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심기우면 자연은 잎이 나고 줄기가 나게 하며 열매를 맺도록 끝까지 도와줍니다.
신앙생활은 심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고 마지막 열매를 거두는 순간까지 성장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두어야 할 추수는 이 세상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 세상에서 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추수의 알곡을 모으시는 이는 예수님이요, 추수할 일꾼은 천사들이요, 우리는 추수에 동참하여 주님과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끝까지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출처 : 교회와 목회와 목사
글쓴이 : 맑은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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