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일꾼! (고전4:1-5)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설립은 사도행전 18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그 곳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행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18: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사역으로 인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아볼로가 그곳으로 와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행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마치 우리 나라에서 인천이 경기도에 속한 도시이듯이, 그 당시 고린도는 아가야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능력 있게 사역을 했습니다. 자연히 그곳 교인들 가운데 아볼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바울을 추종하던 사람들과 아볼로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고린도 교회 안에는 그 외에도 다른 파벌들이 생겼습니다. 급기야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다투며 서로 간에 분쟁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고전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1: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물론 고린도 교회에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회 안에 여러 파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이 원하는 바였습니다.
예컨대 적과 전투를 할 때를 생각해봅시다. 총은 적군을 향하여 쏘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군끼리 총질을 한다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바로 적군일 것입니다. 영적 전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분쟁하면, 가장 좋아할 당사자는 바로 교회의 대적 사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첫머리부터 이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어떠한 자세로 섬겨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교회를 섬기는 자의 신분입니다(1절). 둘째, 교회를 섬기는 자의 요건입니다(2절). 셋째, 교회를 섬기는 자의 평가입니다(3~5절).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되,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세로 바르게 섬깁시다. 그리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예수님에게서 칭찬을 들으며 큰상을 받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교회를 섬기는 자의 신분입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1)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의 “사람”은 불특정인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우리”는 오늘 본문 바로 앞인 고전3:22에 나오는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는 자신들의 신분을 두 가지로 밝혔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바르게 이해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를 섬기는 자들도 자신들의 신분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자세로 교회를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대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의 두 가지 신분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일꾼(Slaves of Christ)
우리말 성경은 여기에서 “일꾼”이라는 말로 다소 점잖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은 “노예”(slave)입니다. 노예는 매우 낮고 천한 신분입니다. 이는 높임을 받거나 자랑할 수 있는 신분이 결코 아닙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의 특별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로 “후페레테스”라는 단어입니다. 본시 이 “후페레테스”는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킵니다.
옛날의 노예선은 노를 젓는 곳이 이단 또는 삼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본시 “후페레테스”는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노예가 자기를 내세울 것이 무엇이며, 자기를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롯해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노예일 뿐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들의 삶과 섬김의 목적은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높이며,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곳 사람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노예들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높여서 바울파를 만들고, 아볼로를 높여서 아볼로파를 만들고, 게바를 높여서 게바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 곧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높이지 맙시다. 또한 우리 자신이 높임을 받으려고 들지도 맙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심정으로 교회를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Stewards of God's Mysteries)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를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을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가 자기들에게 전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비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역자들을 지나치게 높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바울파가 생기고, 아볼로파가 생기고, 게바파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들이 높아져야 할 이유가 전연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맡은 자”로 번역된 단어가 원래 뜻하는 바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를 영어로는 스튜어드(steward)라고 합니다. 그 여성형 명사가 바로 스튜어디스(stewardess)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있습니다. 스튜어디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손님들을 위해 시중을 듭니다.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책이나 담요도 갖다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튜어디스가 자기를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가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비행기 회사의 것입니다. 스튜어디스는 그저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그대로 전할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자라고 해서, 그들이 높아질 이유는 전연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예컨대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노예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배 안에서 노예가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노예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높일 이유가 전연 없습니다. 노를 젓는 일은 노예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예가 노 젓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그 일을 태만히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가차없는 채찍질이 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노예는 어쩔 수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열심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울이 부득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를 젓지 않는 노예에게 채찍질이 가해지듯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서 교회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맡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섬길 따름입니다. 만일 우리가 섬기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교회를 섬길지라도, 우리 자신을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우리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됩시다. 어떠한 일로 섬기든지 간에, 우리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맙시다.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교회를 섬기는 자의 요건입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 곧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입니까?
물론 건강도 필요합니다. 물질도 필요합니다. 시간도 필요합니다. 말도 어눌한 것보다는 말을 잘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절대적인 요건은 오직 한 가지 충성입니다.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봅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였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충성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사역을 했습니까?
행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이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자기가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언제 어디서나 힘써 전하며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전하며 가르쳤던 유익한 것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킵니까?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말한 바 유익한 것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힘써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배운 학문이나 세상 지식을 전하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려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거리낌이 없이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수하고도 바르게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미 바울 당시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그대로 전하며 가르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기에서 바울이 밝히고 있듯이,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유치한 자랑거리나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들을 집어넣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의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들에게서 인기도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 말씀의 사역자로서 충성스럽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실한 마음가짐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충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기나 명성, 자기 만족, 또는 물질적 유익 등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것은 자신의 사역을 혼잡케 만드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순전한 마음으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교회를 섬기는 자의 평가입니다.
고전4:3 (1)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2)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3)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방금 읽은 본문에는 “판단”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시 이 단어는 우리말의 비판이라는 말과 같이 좋지 못한 뉘앙스를 주는 단어는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우리말의 평가라는 단어와 같이 중립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종류의 평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들의 평가입니다. 둘째, 자기 자신의 평가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이 가운데서 남들의 평가나 자기 자신의 평가는 절대적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 절대적입니다.
(1) 남들의 평가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서, 바울파는 바울을 몹시도 칭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파나 게바파는 거의 맹목적으로 바울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이렇게 밝힌 적이 있습니다.
고후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6: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negative)
고후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positive)
고후6: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바울에 대한 평가)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곤고한 삶을 살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는 negative한 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꾼이었기에, 그가 얻게 되는 유익도 많았습니다. 이는 positive한 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흥미롭게도 자기가 사람들에게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반대로 욕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전자는 바울파에 속했을 것이고, 후자는 아볼로파나 게바파에 속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름을 악평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그의 이름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속이는 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그가 참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바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문자 그대로 극에서 극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오늘 본문 3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부정적인 평가에도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아무래도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영적으로 성숙해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자기 자신의 평가
오늘 본문 3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의 영적 성숙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바울에게 이러한 태도가 없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쩌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아예 무시해버리는 고집불통의 사람, 오만불손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평가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4절 상반부에서 한 가지 실례를 들었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과거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야말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상 하나님과 원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 지금까지 복음의 전파자로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온갖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조금도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넘어질까 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칭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칭찬해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칭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남들이 우리를 칭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칭찬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평가
오늘 본문 4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충성을 평가하십니까? 남들이 우리의 충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충성을 평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을 평가하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남들의 평가나, 자기 자신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평가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 5절 상반부에서 또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That's none of our business! That's God's business! 우리를 평가하고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남들을 평가하거나, 우리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함부로 남들을 평가하려고 들지 맙시다. 또한 우리 스스로 잘했다고 으스대지도 말고, 그 반대로 좀 힘들다고 쉽게 낙심하지도 맙시다. 우리를 평가하실 이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하면서, 각자가 맡은 일에 변함없이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셈을 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에 숨은 뜻, 곧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5절 중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뜻을 다른 사람들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평가는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뜻을 다 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평가는 언제나 의롭고 정확합니다.
장차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숨은 동기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를 따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떠한 동기로 섬겼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우리를 평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섬기고 있습니까?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자신의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더러운 이를 얻기 위해서입니까? 만일 우리가 이러한 동기로 섬겼다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섬김은 순수한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시고, 우리에게 큰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5절 하반부에서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하나님의 칭찬과 하나님이 주실 상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누가 큰 칭찬을 받고, 누가 큰상을 받을 것인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때의 칭찬과 상은 우리가 얼마나 순수한 동기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에 충성했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겸손하게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합시다.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는 자세로 섬깁시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기면서, 남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도 그 어떤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이 또한 매우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 때, 우리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의 섬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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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자들에게 보이신 예수님! (요20:19-23) (0) | 2015.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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