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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 (마5:13-16)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 (마5:13-16)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과 6장 7장의 세 장을 가리켜서, 흔히들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 또는 산상보훈(山上寶訓)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님이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으로, 후세에 길이 전하여질 보배로운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풍성한 축복이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른바 “팔 복”(the Beatitudes)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배부를 것입니다. 그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풍성하고도 부요한 축복이 있음을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이와 동시에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이 보여주어야 할 삶의 자세와 특징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들은 애통해야 합니다. 그들은 온유해야 합니다.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그들은 화평하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삶의 자세가 있고, 그들이 보여주어야 할 삶의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이와 같은 자세로 산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제자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팔 복을 이와 같이 끝맺으셨습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러면 이와 같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을 피하지 말고,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서 그들을 변화시키라는 말씀입니다.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요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상의 말씀들을 요약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인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되,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되,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다섯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이 발견되면 회개합시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을 삽시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성경적 세계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가리켜서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이 소금을 필요로 할만큼 부패했으며, 또한 이 세상이 빛을 필요로 할만큼 어둡다고 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세계관이며, 성경적 세계관입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본시 사람은 선만 알고 악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불과 세 장 뒤인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함을 보셨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하고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홍수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이 심히 악했습니다. 그들도 따지고 보면, 다 노아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결국 창세기 19장에서, 롯의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과 불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장차 이와 똑같은 일이 이 세상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또다시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벧후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와 같이 장차 이 세상은 불로써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심판과 멸망의 날을 향하여 점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때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이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은 상태로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산업과 문명이 발달하면,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만큼 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범죄도 훨씬 더 흉악해졌습니다.

또한 여러 국가들이 서로 의논만 하면, 얼마든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UN을 비롯한 많은 국제 기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위협적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진화론자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물질 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개선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은 점점 더 부패하고, 점점 더 어두워져 갑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갑니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갈수록 더욱 악하여집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세계관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세계관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세상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으로,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여기에서 예수님이 지칭하신 “너희”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마5: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나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1) 강조형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었습니다. “너희만이,” 또는 “너희가 바로”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바로 이 세상의 부패를 막으며, “너희”가 바로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아니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역시 세상은 악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쳐야 할 사람들도 바로 우리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희망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였습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은 그들로 인하여 그 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에,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의인 열 사람이 없다면, 이 땅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때문에 하나님은 아직도 이 땅을 불로 심판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지키며, 이 세상을 보존하는 희망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2) 복수형

오늘 본문에 사용된 “너희”는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사실 소금과 빛은 언제나 집합적으로 사용됩니다. 예컨대 음식물에 소금을 칠 때, 소금의 한 입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소금 입자가 함께 섞여서 음식물에 영향을 줍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수한 입자들이 함께 모여서 광선을 형성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 14절 말씀과 같이, 산 위에 있는 동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네는 여러 집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와 같이 빛도 집합적으로 사용되어 어두움을 밝힙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을 가리켜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우리는 그 곳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바로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인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언제나 하나되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슬픈 현상이 무엇입니까? 때로는 교회가 서로 다투면서, 세상 사람들의 지탄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 시대에 희망을 주겠습니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대로, 이 시대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선언형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고 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바로 세상의 소금이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소금으로서 맛을 내느냐? 그렇지 않으면 맛을 내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바로 세상의 빛이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빛으로서 자신의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말 아래 두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합시다. 우리가 서서히 소금이 되어져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천히 빛이 되어져 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었을 때, 우리는 부패한 세상에 속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의 소금으로 살면서,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살면서,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연약합니다.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하게 쓰십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은 금이나 은같이 귀중한 보배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강한 철로 사람을 만드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하찮은 것으로 매우 귀한 존재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울 왕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목동 다윗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그 때 다윗은 칼과 창을 이용해서 골리앗을 넘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기껏 돌 몇 개를 사용해서 그를 넘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귀부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골의 무명 여인을 택하여, 그의 태를 이용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궁궐에서 탄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회적으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택하여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셨고,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땅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웠으며, 온 누리에 복음의 빛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보잘것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이미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귀하게 쓰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 소금의 역할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군인들은 때때로 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급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소금을 salt라고 하고, 급료를 salary라고 합니다. 둘 다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들입니다.

또한 영어에서는 “worth one's sal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를 직역하면, “자기의 소금 값을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급료 값을 할만큼 유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급료 값을 하지 못하고 무능할 때는 “not worth one's salt”라고 표현합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때로는 소금이 급료를 지불하는 일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소금이 그만큼 귀중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소금이 사용된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소금은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레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겔43:24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소제물이나 번제물에는 소금을 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소금을 쳐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민18:19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대하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여기에 소금 언약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오늘날에는 계약이 체결되면, 법률사무소에 가서 공증을 받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언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증인들 앞에서 소금을 먹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변치 아니하는 것처럼,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킨다는 뜻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관습에서 소금 언약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 때의 소금은 불변성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소금은 윗사람에 대한 충성이나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나 친교를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스4:14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막9:50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아울러 소금의 특색은 짠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은 주로 조미료로 사용됩니다. 소금은 싱거운 음식물에 섞여서, 그 음식물에 맛을 더해줍니다. 이와 관련해서 때로는 소금이 “맛”이나 “멋”을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욥6: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골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이외에도 소금은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소금은 해독제로 사용될 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소금은 소독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식염수가 의학적으로 인체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왕하2: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겔16: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이와 같이 소금은 물을 고치는 일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그의 몸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자기의 손톱으로 자기의 몸을 할퀴어서 생긴 생채기를 소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소금이 좋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좋지 않은 용도로 사용될 때도 있었습니다. 가령 소금이 밭에 뿌려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밭에 있는 식물들은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소금이 “심판”이나 “멸망”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삿9: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소금의 용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소금은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실 때, 과연 제자들은 소금의 어떠한 용도를 그들의 머리에 떠올렸겠습니까?

아마도 제자들마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소금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기들도 소금처럼,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소금은 언약을 맺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소금은 조미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의학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병든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소금은 심판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죄와 세상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다양한 소금의 용도 가운데서, 언제나 공통적인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소금이 언제나 다른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금의 역할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영향”(influence)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금으로서 이 세상에서 해야 역할입니다.


(2) 빛의 역할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소금이나 빛이나 그 역할은 똑같이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의 역할이 간접적인 것이라면, 빛의 역할은 보다 직접적입니다. 또한 소금의 역할이 소극적인 것이라면, 빛의 역할은 보다 적극적입니다.

예컨대 소금은 은밀하게 역사합니다. 소금은 안으로 스며듭니다. 그러기에 소금이 녹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빛은 밝히 역사합니다. 빛은 밖으로 발산됩니다. 그러기에 빛이 비치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환하게 보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은 산 위에 동네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예루살렘도, 베들레헴도, 나사렛도 전부 산 위에 있는 동네들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지지 못합니다. 낮에는 햇빛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밤에는 집집마다 켜놓은 등불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낮이나 밤이나 숨겨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빛을 밝히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어야 합니까?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1)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2)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에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한 결과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그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볼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서, 이미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빛으로서 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가 세상에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는 어두운 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요일1:5 ....하나님은 빛이시라....)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빛 가운데로 행합시다. 아울러 빛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합시다. 그리해서 이 어두운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마5:13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는 지금처럼 소금을 정제하는 기술이 발달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해 근처에서 생산되는 소금에는 때때로 석고와 같은 이물질이 섞이기도 했습니다. 석고는 흰 색깔이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소금과 잘 분간이 가지를 않아 쉽게 소금에 섞였습니다.

그러나 석고는 짠맛을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위를 거스르는 역겨운 맛을 냅니다. 따라서 소금에 석고가 많이 섞여 있으면, 소금은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내다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내다버린 소금이 밭에 떨어지면, 그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쓸모 없는 소금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바닥에 내다버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오가며 그것을 밟습니다. 그 결과 소금은 잘게 부수어져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물론 소금이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해서, 소금이 다른 물질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소금은 여전히 소금으로 남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가 얻은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구원 자체가 상실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은 너무나도 안타깝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는 그가 구원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바울은 자기가 쓸모 없는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했습니다. 세상에 물들거나 죄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합시다. 그리해서 이 악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소금과 마찬가지로 빛도 쓸모 없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이란 한 말, 두 말 하듯이 곡식을 될 때 사용하는 그릇입니다. 예컨대 등불을 켜서 그것을 상자로 덮어버리면, 그 등불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물론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었다고 해서, 등불의 성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등불은 여전히 등불입니다. 그러나 등불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켠 사람도, 또한 다른 사람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는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빛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의 등불을 말 아래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 때문에,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우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속으로 감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 아래 둔 등불이 되지 맙시다. 등경 위에 둔 등불이 됩시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됩시다. 그리해서 이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환하게 비추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우리의 목적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볼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은, 또한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부패한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를 못합니까? 왜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를 못합니까?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우리 자신의 안일, 우리 자신의 명예, 우리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와 같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일은 참으로 감사하고 축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궁극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며, 어두운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다시 한 주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맙시다. 우리의 착한 행실과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킵시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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