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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의 뜻이라면/약4:13~17 /2005년 2월 6일 설교

주의 뜻이라면

야고보서4:13~17

2005년 2월 6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설교:

우리가 뭔가를 計劃하고 設計한다는 것은 몇가지 전제 조건이 이루어질 것을 가정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1)내가 올해도 죽지 않고 살 것이다.

2)나와 내 가족이 올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 것이다.

3)내게 올해는 놀라운 행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누구도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을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이런 모든 것을 보장해 주실 분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일에 그분의 뜻을 앞세워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許諾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면 아무도 막을 자가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생각 내 계획을 따라 인생을 설계하고 한해를 계획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앞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뜻,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입니다. 

우리는 두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분별하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릅니다.

또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다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고 우리가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생각, 그분의 뜻을 가능한대로 빨리 알아야 하고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신 것이고 또 마가복음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어떻게 해야 속히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까요?

1)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성령으로 기록된 66권의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啓示의 말씀이며 正確無誤한 말씀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가장 정확한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생활 속에서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각과 삶이 성경의 가치관으로 무장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제가 어느 날 사택 천장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밤마다 난리를 쳐서 답답하고 처참해있었습니다. 집사람은 수시로 고양이 소리에 놀라고 천장은 고양이 오줌으로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수리를 하자니 돈이 엄청 들테고 그냥 살자니 밤잠을 설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어찌하리이까? 교회 형편을 아시잖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시간에 성경을 큐티하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 2장4절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묻습니다. 그 한 문장,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문장은 마치 하나님이 내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택이 하루를 살더라도 깨끗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창피해서 손님들을 집으로 모실수가 없나이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몇일 후 고양이들이 영역다툼을 벌이다가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서재에서 설교준비하고 있었는데 집사람이 전화로 “여보 난리 났어”하며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기에 불이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더니 “천장이 무너졌어”고 하기에 달려왔더니 천장이 무너져 내려 방안이 완전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이 應答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여러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제직회에서 결정해서 리모델링을 하여 어제 깨끗하게 완공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응답하심을 체험케 됩니다.   


2) 설교를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說敎者들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시대는 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각종의 기적과 이적, 그리고 직접 음성으로도 말씀하셨으나 오늘날은 성경을 가지고 말씀하시고 설교하는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설교는 목사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성경을 가지고 전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복이 있는 사람은 설교를 잘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제발 단순히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대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장가갈 때 집 사람을 만난 후 이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기도했습니다. 곧바로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들어가서 금식기도를 하는데 금식 마지막 날인 금요일 새벽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가 오직 믿음이라는 설교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라, 믿음의 사람을 귀히 여겨라 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3)기도를 통해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6~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란 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祈禱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기도 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도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對話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가 알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마음을 품게도 하고 우리가 주님의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금방 나타나는 것입니다.


4)누구에게 榮光이 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자기 영광을 들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누구에게 영광이 됩니까? 하나님입니까? 나입니까?

말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영광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게는 영광이 안되고 유익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우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과감하게 하시고 영광이 되지 못하면 과감하게 포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4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할 때 내 생각과 욕심을 접어야만 합니다. 욕심과 탐심은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마가복음4:19을 보면 씨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 밭을 설명하면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1:14~15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나 탐심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무서운 것이므로 이것이 내 속에서 빠져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키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뭘 원하시는지 뻔히 보이는 대도 내 욕심이 가득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만 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의 뜻이 찾아져도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요? “어떻게” 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게 하나님의 뜻이 확인되면 어떻게 그 일을 이루어야 할까요?  


1)동기와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동기요. 과정입니다.

여리고 성 기생 라합이 거짓말을 했는데 하나님은 그 가정을 복주셨습니다. 왜요? 그 거짓말의 동기가 자기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도 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결과는 자동으로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도 그렇습니다.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칭찬 받았습니까? 남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과가 좋아서는 나중입니다. 그 동기와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그 주인의 칭찬을 보세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마음의 동기가 착하고 방법이 충성된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는 자동으로 좋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달란트 받은 자는 동기도 방법도 좋지 못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말은 그가 일하지 않은 변병을 주인에게 책임을 돌리지만 실상은 그 마음이 악하고 그 방법이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결과는 다섯을 남겼든 하나를 남겼든 상관없습니다. 동기와 과정이 바르면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2)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우리는 그 뜻 앞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환경에 붙들려 유혹을 받습니다.

환경은 수시로 변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우리 마음의 상태에 때라 변하는 것이 환경입니다. 그러기에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어린아이는 그림책을 봐야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그림책을 본다면 문제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할렐루야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유혹을 받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 끝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한 두번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야 가나안땅이 있는 것입니다.


3)목숨을 걸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쉽게 우리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끝까지 대들고 끝까지 고난을 가져다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목숨을 건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을 걸어야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멋있는 신앙 고백입니다. 나는 이 구절이 저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바울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바울이 바울된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의 지식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 목숨을 내 걸고 사니 그냥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전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충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4)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반드시 복을 복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계2:10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놀라운 상이 수백 번도 더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천국에서의 약속이 아닙니다. 금생에서도 받습니다.

막10: 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또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해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혹시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셨고 더 나아가 17절에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알면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명백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살 것입니까?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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