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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 탄식, 영광

고난, 탄식, 영광

로마서 8장 18 - 25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으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고 계십니다.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세상에서 꼭 치러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를 때에 누릴 수 있는 축복에 대해 말씀하고자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은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고난의 특징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그리스도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한 고난과 함께  현재의 고난이라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동안 끊임없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담당하시게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 때문에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시고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받은 자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우리도 똑같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될 것이니라.‚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고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자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성도의 고난을 바로 자기 자신의 고난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성경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향해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고 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현재의 고난입니다. 현재라는 뜻은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시간, 그 이전은 과거, 그 이후는 미래이며 또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시재(時在)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씀에 나와있는 현재라는 말은 주님이 부활하신 그때부터 시작하여 재림하시기까지 그 가운데 끼인 소위 말세라고 부르는 시대를 전부 포괄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 동안 받을 수 있는 고난이 현재의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일생 동안 고난 당할 각오를 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받은 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고난이며 주님을 따라가려면 절대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을 기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   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첫 열매를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첫 열매의 의미는 영적(靈的)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 즉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내시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주신 첫 열매들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열매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입니다. 또한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탄식의 용어를 찾아보면 사람이 걱정이나 근심, 슬픔이나 한 등으로 말미암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탄식은 산모가 새 생명을 품에 안을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이 그 마음에는 희망과 기쁨이 솟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탄식의 의미입니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몸처럼 변화 될 날을 기다리는 탄식입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   니.‚
우리의 몸, 육체는 죄와 사망으로 인해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에서 썩을 몸을 입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죽을 몸이 새 몸을 입고 영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탄식은 일종의 기다림의 탄식이며, 사모하는 탄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며 간절히 사모하는 탄식이야말로 속에서부터 터지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피조물이란 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든 물건으로 삼라만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에 있는 영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있는 피조물은 비이성적인 자연 만물, 즉 하늘이 해와 달,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 땅에 피는 아름다운 화초, 나무 그리고 바다에 있는 고기 등 모든 자연 만물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통해 아는 바와 같이 자연 만물이 창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피조물은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어 존재의 의미를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자연 만물은 부패하며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탄식하는 가장 큰 이유가 19절에 나와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나는 날을 피조물이 기다리며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나타날 날을 고대할까요? 이것은 말씀과 같이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우리는 영원히 죽지도 썩지도 않을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되는 그 날을 사모하며 탄식하며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탄식은 범사에 감사하는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는 영광이 있습니다. 이 영광은 우리가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며 기다리는 소망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새것으로 새 몸으로 바꾸어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영원히 살게 될 새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을 몸의 구속이라 부르고 신학적으로는 영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고 새로운 땅과 하늘을 만드셔서 영원토록 예수님을 모시고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영광 중에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이 영광이 현실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우리가 속으로 탄식하고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만 아는 고난과 탄식, 영광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고난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를 하면서 이기는 방법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과 영광을 비교할 때 우리는 그 영광에 고난이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살아갈 때 고난과 영광을 비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과 영광은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것으로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비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는 모두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죄로 인해 썩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님이 오실 때 새 몸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날마다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면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하는 어려움이라면 가벼운 것이요 비교가 안 되는 것임을 발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강해 - 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목사 저)에서 요약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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