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현 목사와의 공동목회 위한 교역자기도회 옥한흠 목사 메시지 "권위주의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예'가 되도록 양떼를 인도하려면" 사랑의교회 후반기 사역을 위한 첫 교역자 기도회가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 그리고 100여 명의 교역자와 각 부서 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화요일(8월 26일) 오전에 열렸다. 기도회는 옥한흠 목사의 지난 25년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느낀 격려와 반성의 메시지에 이어 오정현 목사의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옥 목사는 고린도후서 1장 20절-2장 4절 말씀으로 교역자들에게 하나님의 ‘예’라고 하는 은혜의 세계를 차원 높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인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성도의 믿음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독려해 주는 사역으로 진정한 사랑을 전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도회에서 오정현 목사는 가을학기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첫 시간이 되며, 하나님 앞에 의존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능력의 차원에 진입할 수 있기를, 주님과의 더 나은 관계가 회복되고 경건 생활이 조금도 실패하지 않는 가을학기가 되기를,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 앞에 돌아오는 대각성전도집회가 되기를 기도제목으로 내어놓고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2부에서는 오정현 목사 환영식과 함께 교역자들과의 상견례가 있었다. 상견례는 오정현 목사 부부를 환영하는 축하 꽃다발 증정과 케이크 커팅식의 순서로 시작되었다. 오 목사는 그동안 오난영으로 알려졌던 윤난영 사모가 한국에 와서 자기 성을 되찾았다며 즉석에서 윤 사모와 함께 특송을 부르는 등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되었다. 윤 사모는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이야기하며 "전에는 청자나 백자 정도로 생각하고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 했지만 이제는 질그릇임을 알고 깨어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고 첫인사를 했고, 오정현 목사는 "마음 맞는 사람 셋만 모이면 나라도 세울 수 있다"고 말하며, "유비는 성경도 없었고, 관우는 성령도 없었고, 장비는 교회도 몰랐어도 촉나라를 세웠는데, 성경과 교회, 예수님과 성령님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대를 다시 세우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인사를 했다. 오정현 목사는 오는 8월 31일 주일예배 시간에 전 교회 앞에 취임인사를 한 후 옥한흠 목사와 본격적으로 공동목회에 들어갈 예정이다. -교역자 기도회 옥한흠 목사 메시지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자가 되려면" 지금은 사랑의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노트를 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저는 오정현 목사님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12월까지 사역을 같이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후반기 사역을 시작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음에 잘 담고 새롭게 사역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은혜의 세계는 바로 '예'의 세계 하나님의 종들이 교회에서 일할 때의 자세나 사고 성향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것이 성경적이고, 비판적이기보다는 가능성을 격려해주는 열린 자세가 훨씬 더 은혜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 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입니다. 이 '예'라는 말 속에는 엄청난 차원의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25년 동안 사랑의교회 사역을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이 '예'의 세계를 어느 정도 교인들에게 열어 보였을까, 겨우 커튼만 젖힌 채 좁은 창문으로 들여다보게 만들다가 25년을 끝낸 것인가, 커튼을 확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교인들에게 이 '예'의 은혜를 알게 했는가, 아니면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내밀고 온 사방을 보면서 황홀해 하는 자리에까지 교인을 인도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정도까지 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 있는 '예'의 가능성과 잠재력, 긍정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 위로의 세계, 능력의 세계, 영광의 세계는 너무나 차원이 높기 때문에 아무리 설교를 열심히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지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 것만큼 말하게 되어 있고, 자기가 올라온 자리만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높이 올라 왔더라면 우리 교인들도 그 자리까지 올라왔을 것인데, 제가 좀더 넓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산등성이에 설 수 있었다면 교인들도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더 넓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얼마든지 '예'라고 하는 은혜의 세계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는 가책을 느낍니다. 이런 면에서 여러분은 이제 남은 기간, 또 앞으로 20년, 30년 동안 펼쳐질 새로운 사역을 위해서 '예'가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좀더 넓고 크게 펼쳐보일 수 있는 은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자랄 때부터 부정적인 것을 많이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교회에서 매일 '죄'만 이야기했는데, 이 죄라는 주제를 논하는 자리는 긍정적인 요소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이 너무 강하게 부각되는 곳에는 은혜가 죽어버립니다. 거기에 젖어 나도 모르게 설교할 때도 못하는 것을 더 많이 지적하게 되고, 잘못하는 부분을 더 꼬집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눈을 뜨게 되었고, 부정적인 것을 많이 이야기하는 병이 서서히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복음의 세계는 예전에 범한 죄를 다시 들추어내고 회개하라고 소리치는 그런 소름끼치는 세계가 아닌데, 내가 잘못 배웠다는 것을 발견하고 죄의 문제를 다룰 때도 긍정적인 입장해서 다루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도 심방을 가거나 개인 상담을 하거나 사역훈련을 할 때, 그리고 어떤 문제를 놓고 성도와 함께 씨름하면서 기도할 때,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약한 부분, 잘못된 부분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지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우리가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이라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는 이 은혜를 알려면 우리가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기도하고 말씀도 많이 연구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 위해 눈이 열려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주관하려는 권위주의보다 기쁨을 독려하는 자세로 또 하나는 24절입니다.“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주관한다는 것과 기쁨을 독려해준다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성향을 보면 주관하려는 입장에 많이 섭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지시하고, 마치 영적인 면에서 특별한 권위자가 된 것처럼 행세하려는 면이 참 많습니다. 이것을 일종의 권위주의라고도 하고 지나치면 영적 폭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작든 크든 그 자리에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기뻐할 일이 많은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교역자의 역할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기쁨의 요소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환난중에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게 기쁨의 눈을 열어주는 것, 이것이 교역자가 할 일입니다. 계속 주눅들게 하고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자가 누리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내가 가난해도 기뻐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 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근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근심을 이기는 기쁨의 비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고, 보여주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 우리 지도자의 몫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이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근심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차원높은 기쁨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비밀입니다. 성도들에게 이 비밀을 알려줘야 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비밀을 알려주어야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비밀을 알려줘야 합니다. 이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진정 사랑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내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2:4).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많은 눈물'과 '넘치는 사랑'입니다. 목자의 마음이 양떼에게 다가갈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가를 잘 요약해 준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느냐, 그래서 그 사랑이 눈물로 바뀔 정도로 순수하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양심적으로 물어야 될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25년 동안 사역하면서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5년 동안 사역하면서 참 풍성하고 광활한 은혜의 세계가 있는데 그리로 양떼를 제대로 인도했는가, 성도들을 대할 때 주관하려는 자세로 임하지 않았는가, 믿음을 가진 자의 세계에 있는 그 기쁨의 비밀을 계속 성도들에게 알려주는 사역을 했는가, 성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과 눈물이 있었는가 반성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자는 어떤 자세여야 합니까?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교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정말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비워져야 합니다. 바울처럼 유식한 자에게는 유식한 자처럼, 없는 자에게는 없는 자처럼 보이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이런 자세가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성도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성도들은 내 마음 가까이 와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내 마음에서 멀리 있다면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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