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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과 ‘안식’창세기 2:1-3


일곱안식

창세기 2:1-3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삶의 사이클을 주셨습니다.

창조와 함께 주어진 기본 사이클

매일을 낮과 밤으로 이어집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건강한 몸을 유지합니다. 사람에게 주신 중요한 생활리듬입니다. 아울러 더 중요한 삶의 사이클을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은 일곱, 칠 일입니다. 한 주간이 칠 일입니다.

인류에게 일주일 사이클이 생긴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됩니다. 엿새 동안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칠 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안식은 하나님께서 쉬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적절한 생활 사이클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므로 이 사이클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리듬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일주일 사이클에 적응하고 그것에 고정되었습니다.

엿새 사역 하루 안식이라는 사이클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너무 일하거나 너무 쉬므로 생기는 인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쉬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교만이고 욕심입니다. 쉼을 넘어선 인간의 놀이 문화가 영성을 파괴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소리들을 들어보십시오.

서구 교회가 이런 사이클을 파괴하면서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파괴되고 인간 내면의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이클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이클이 깨지면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쉼과 일의 사이클을 잘 맞춰야 합니다. 영과 육의 사이클을 균형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바빠도 영적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의 주기를 지키십시오. 예배 후 일주일이 가장 건강한 사이클입니다. 일주일 후에는 다시 예배해야 합니다. 이 정도는 유지해야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엿새 동안 열심히 일했어도 일곱째 날의 안식이 없으면 그 엿새의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이고 욕심입니다.

이 주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일곱의 성경적 의미

일곱이라는 숫자가 갖는 성경적 의미는 완전함입니다.

7년째는 안식년입니다. 77회가 지나면 희년이 됩니다. 일곱 바퀴를 돌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은 용서의 횟수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용서에 대한 상징성을 지닙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이레도 있습니다. 세이레 동안 슬퍼하고 금식하였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 일곱 나팔 등이 있습니다.

칠에서 하나 모라자면 육이고 그것이 땅의 수로 인식되고 그 육이 세 개가 합쳐지니 최악의 숫자 조합이 되어 사탄의 숫자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창조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칠 일째 안식하시므로 사람에게 완벽한 사이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에 신체가 반응합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식에 대한 기대 때문이고 이것을 인생 전체로 확대 적용하면 우리가 사는 날이 엿새로서 의미라면 그 사역이 끝나면 안식에 들어간다는 희망과 기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영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육적으로도 유익한 것임을 임상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몸이 건강할 수 있는 길은 육에 대한 생각에서 영적인 사고로, 육적인 일에서 영적인 일로 전환하는 변화가 필요한 것임을 경험했습니다.

육이 원하는 것만 하면 영적으로 빈곤해집니다.

완성된 안식일

창조원리와 구약에서 한주간은 안식을 통해 마무리됩니다. 일곱째날 모든 것을 마무리하셨고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시간입니다. 육적으로는 안식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적 충전이고 영적 활력을 되찾는 것입니다. 식은 열정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일주일 사이클에서 안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율법에 담으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율법과 구약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그러하듯 안식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명에 담으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계명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창조와 관련됩니다(20:9-11).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의 십계명은 강조점이 다릅니다(5:13-15).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애굽땅 종 되었던 상태에서 구속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관련해서만 구약의 두 십계명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사역의 완성 또 이스라엘에 대한 구속 사역의 완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이 안식일을 확실하게 완성하셨습니다(12:8).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의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안식일에 얽매여 살며 종교적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데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온갖 안식일 규정이 사람들을 속박한 것입니다. 이들을 풀어주신 것이 주님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해석해 주셨을 뿐 아니라 율법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이 구약의 안식일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안식일은 완성되었습니다.

창조하신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고 인생에게 새창조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고후 5:17).

더 나아가 구속의 완성이 바로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것처럼 우리를 죄와 사망의 속박으로부터 풀어주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완성된 것이 부활사건입니다. 그 부활사건이 안식 후 첫날 이루어집니다. 안식 후 첫 날이란 바로 지금의 주일입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 안식일 다음 날이 바로 주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셨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즉 구속과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완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부터 안식 후 첫날 모여 예배하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성수주일이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이 말은 위험한 용어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날이 거룩합니다. 성수 월요일이고 성수 토요일입니다. 성수 휴일이고 성수 휴가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월요일 출근하면서 주님이 나를 보내신 자리에 가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감당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곱의 주기, 그 주기의 핵심인 안식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라이프 사이클을 지키면 몸도 영도 건강해 집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예배의 날로 함께 모여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나의 삶이 말씀과 멀어지지 않도록 영적 공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 전체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일주일 매우 바쁘게 사셨어도 일주일에 하루 푹 주무시고 쉬면 몸이 회복되도록 우리의 몸을 지으셨습니다. 그 리듬만 지켜도 건강해 질 것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예배에 마음을 쏟고 우리의 영성이 건강하도록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영적 리듬입니다.

이 인터벌이 더 벌어지면 우리의 영적 상태는 휘청거릴 것입니다. 영적 갈증, 영적 빈곤이 삶 전체의 균형을 잃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하면서 영적 안식과 에너지 공급이 이루어지고 몸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확실해 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로 시작되는 일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은 주말이지만 주일, 일요일은 주초입니다. 예배로 시작하여 성공적인 한 주간을 가꾸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한 주간을 마무리하면서 쉬며 예배했다면 신약은 구원의 감격으로 예배하면서 한 주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건강한 리듬으로서의 칠일이 우리의 인생을 가치있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