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교회력으로 이번 3월 5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四旬節, Lent)이란 글자 그대로 40일간의 절기를 말합니다. 재의 수요일에서부터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절기를 말합니다. 금년에는 부활절이 4월 20일이기 때문에 사순절이 재의 수요일인 3월 5일부터 시작이 됩니다.
기독교는 오랜 세월 이 사순절을 지켜왔습니다. 이 사순절을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영적 훈련을 쌓는 시기로 삼아왔습니다. 특히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을 닮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 사순절을 맞아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지켜온 사순절의 영적 훈련을 따라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금년 사순절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을 주제로 삼고 영적 훈련을 수행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 42:1-4 말씀 중 ‘상한 갈대’라는 말씀을 묵상하던 가운데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이 볼 때 인간은 피조물 중에 정말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비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존재가 생각을 하게 될 때 피조물 중에 가장 능력있는 존재로서 위대함을 가지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생각과 연관되어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며 살아갈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생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와서 살게 된 중학생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같았으면 방과 후에 운동도 하고 악기 연주도 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텐데 한국에서는 방과 후에 더 바쁩니다. 학원 다녀야 하고 모의고사 준비해야 하고... 이 아이가 아빠에게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아빠! 도무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이 아이 뿐이겠습니까? 요즘 현대인들 대부분이 사는 것이 바빠서 생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흑인 원주민에게 먼지가 나니까 마당에 물을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비가 오고 있는데도 그 사람은 계속 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더랍니다.
이 사람 뿐이겠습니까? 사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줄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며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생각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는 것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생각하지 않고 예수 믿는 세월이 길어졌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생각하되 ‘예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생각하면서 살아가되 예수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동일시 현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지배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사는 며느리는 늘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시어머니가 되면 절대로 우리 시어머니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미워하던 그런 시어머니가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늘 예수를 생각하며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를 닮아가게 됩니다. 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늘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살면 자신의 마음도 예수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면 외모조차도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을 생각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예수가 내 생각을 지배하도록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돈이 내 생각을 지배하지 않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그 누군가가 내 생각을 지배하지 않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그 무엇이 내 생각을 지배하지 않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만이 내 생각을 지배하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순절 기간에 보다 예수를 닮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다. 예수를 생각하되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원문을 보면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카타노에인’이란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주목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며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마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던 중에 제자들에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들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을 구경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공중을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생각하면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새들이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놓지도 않지만 먹이시고 기르시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서 들에 핀 백합화를 보면 하나님께서 수고도 않고 길쌈도 안하지만 입히시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군가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가 주는 소중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려고 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1. 사도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사도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사도시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보내셔야만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도가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느냐는 점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여러 곳에서 직접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히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마 9:13을 보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눅 19:10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인간들로 하여금 죄 문제를 해결해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케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대학 시절 교양강좌로 철학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강의하시는 교수님께서 니체를 얘기하시다가 갑자기 열을 내시면서 기독교 비판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면 교도소로 가면 될 것 아닌가? 예수는 죄인들의 구주이지 결코 온 인류의 구세주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볼 때 니체의 지적이 올지.”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죄가 교도소에 들어갈 죄를 말씀하신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인간이 법적으로 정해 놓은 죄에서 죄수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그 죄는 무엇일까요?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는 물론이고, 의인인척하며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 그리고 저와 여러분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 죄는 무엇일까요?
누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로 인간의 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 품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챙겨 가지고 아버지를 등지고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세상 재미에 빠져 허랑 방탕하게 살다가 가지고 간 돈 다 잃게 됐습니다. 게다가 흉년까지 들어서 돼지 치는 일을 하며 돼지나 먹는 주엄 열매로 근근이 주린 배를 채우며 비참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때 이 탕자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다는 사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자기 뜻대로 살았다는 사실, 자기에게 임한 이 모든 저주는 바로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눅 15:19절에 보면 탕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이 탕자는 비로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탕자가 깨달은 죄가 무엇입니까? 분명히 탕자는 세상 법을 어긴 것이 없습니다. 남을 폭행했다든지, 남의 것을 도둑질했다든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든지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탕자가 지은 죄는 세상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지은 죄가 아닙니다. 탕자가 지은 죄는 바로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지은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국가와 민족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지은 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하여 지은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았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순절 기간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탕자가 깨닫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고백하며 회개하는 시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시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특히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게 하는 중보자입니다. 히 5:4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일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대대로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대제사장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대제사장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왜 특별한 대제사장이신가 하는 점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짐승을 잡아 그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죄토록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들마다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제사 드린 사람이 속죄 받은 뒤에 다시 죄를 지으면 또 다른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드린 속죄의 제사는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반복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드리신 속죄의 제사는 달랐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7: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9:11-12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제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리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래서 이 속죄 제사는 완전한 속죄의 제사가 되는 것이고 또 다시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는 속죄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을 드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에 대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완전한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이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다는 점입니다. 진심으로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가 다 속죄되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순절을 시작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때와 달리 생각할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렵더라도 억지로라도 생각할 시간의 짬을 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하되 예수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 때문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 그리고 지금도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화해를 이루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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