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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가 하나되는 비결/엡4:1~6/2005년 7월 31일 설교

성도가 하나 되는 방법

에베소서4:1~6

2005년 7월 31일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설교:

성도가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것 중에 가장 힘든 것이 하나 있다면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에도 해당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인간관계, 이것은 비록 매우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또한 이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복중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해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해 천국으로 여겨야 할 교회 생활을 지옥처럼 느끼며 무척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중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 든다면 하나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하나 되어야 신앙생활이 행복하고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 됨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죄로 말미암아 인간 속에 탐심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하나이기 때문이고 그 주님이 우리에게 하나 되라고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입니다. 삼위이면서도 일체입니다. 하나 되신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나뉘거나 분열되지 않고 온전히 하나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성도들에게 간곡하게 권하는 부탁이며 명령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왜 그토록 하나 됨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결국 마귀의 종이 되어 망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장안중앙교회는 어떠합니까?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는 6장으로 구성 되었습니다. 1~3장은 교리로서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4~6장은 구원받은 자들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생활편에 첫 내용이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가 하나 되는 비법을 교훈하십니다. 


본문1절~3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도가 하나되는 비결은 무엇인가?

1.겸손과 온유가 있어야 합니다.(2절上) 

1)겸손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나를 남보다 낮게 낮추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겸손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런 겸손을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높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도 겸손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여러 곳 살펴보세요. 겸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만 13구절이 겸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고 하셨고

잠언 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했으며

잠언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잠언 16:19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언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2)그 다음 온유를 살펴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질입니다. 이 온유가 갖추어지면 쉽사리 격분하거나 방어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온유는 “적절하게 통제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self control이 되는 마음이 온유입니다. 말이나 소가 엄청난 힘을 소유하였으나 어린아이 한사람에 의해 끌려갑니다. 그 힘이 적절하게 조절될 때 그것을 보고 온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 성깔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혈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누구나 다 자존심이 있고 그 자존심을 건딜면 다 성깔이 나오고 본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고 온유로 자신을 다스려 하나됨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12명의 다양한 기질의 제자들을 겸손과 온유로 섬겼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그들은 예수님이 선택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게중에는 실패한 경험이 있고, 불신앙의 모습도 있고, 허물이 많고, 모난 구석이 있습니다. 또 나약하고, 때론 비겁하고, 욕심 많고, 야심만만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수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가문이나 지식, 재산이나 직업을 보아도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드레는 다른 사람을 잘 인도해주는 인도자가 되었고, 야고보는 12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빌립은 늘 언제나 계산하고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었고, 도마는 의심이 많았으나 정직하였고 순교하였습니다. 세리 출신 마태는 제자들의 철저한 따돌림 속에서도 쓰임 받은 사람이 되어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다혈질적인 기질을 보이며 좌충우돌하는 사람이었으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그들의 성격이 제각기 달랐다는 점입니다. 그 다양한 성격, 피차 조화될 수 없는 인간성들이 어떻게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조화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으로 그들을 겸손히 섬겼고 온유로 끌어안았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 그 하나님이 겸손히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허물과 약함을 온유로 견디어 내십니다. 그럴 때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다양한 기질, 다양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기에 다른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이나 말투는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이는 괄괄한데 실상은 색시같이 마음이 여리고 어떤이는 그야말로 순한 양 같은데 실상은 대범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 서로 다른 환경과 계급의 모든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에게 와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자들처럼 주님은 겸손과 온유로 지금도 여러분을 섬기고 계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고 우리의 앞날이 소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인내와 용납의 사랑이 있어야합니다.(2절하)   

2절하반절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주님의 하나되게 하시는 두 번째 사랑은 “인내와 용납”입니다. 물론 이것은 겸손과 온유의 부산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밀 겸손해야 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거기서 인내가 나오고 거기서 진정한 사랑인 용납, 포용, 관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1)먼저 인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도 안되는 현실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인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말 참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인내 하십니다.

가롯 유다가 당신을 팔 것을 계획하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 군사들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도 참고 견디십니다. 힘이 없어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명하여 당장 극형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참고 인내하십니다. 그 인내는 비록 가롯 유다에게만이 베풀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여러분에게도 주님은 끊임없이 인내하십니다. 예배시간에 그렇게 늦어도 다리를 분질러 놓지 않으십니다. 예수를 몇 년씩 믿었는데도 주일을 지킬 줄 몰라 허구한 날 빼 먹어도 인내하십니다.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 하시는 것입니다. 착각하면 안됩니다. 엄청난 사랑으로 인내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용납도 그렇습니다.

나는 이 용납을 “용서와 이해를 통과한 위대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용납은 용서와 이해라는 것을 거치지 못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1948년 순천10.19사건 때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이 한자리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살해한 그 원수를 사형장에서 구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아들대신 양자로 삼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입양하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는 미친 짓입니다. 그놈의 얼굴을 보는 것만도 소름끼치는 짓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요?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허물과 죄악도, 그리고 우리의 어떤 과거도 용납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도 용납하십니다. 다윗의 우리야 장군 살해 사건도 용납하십니다. 천인공노할 사건인데 주님은 다 용납하십니다. 어떻게요? 그 인내와 사랑의 용납 때문입니다.

그 인내와 용납이 오늘을 사는 여러분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3. 성령의 매는 줄이 있어야 합니다.

이솝 우화 중에 아주 친한 네 마리의 황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함께 갔으며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워 쉬면서 사이좋게 서로 가까이 지내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힘을 합해 대처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배고픈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습니다.


그 사자는 어느 누구라도 일대 일 대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은 한 번에 네 마리는 불가능했기에 꾀를 부렸습니다.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때 그 중에 약간 뒤쳐진 황소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귀엣말로 다른 소들이 너의 흉을 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또 다른 소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접근하여 저들이 너를 흉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네 마리의 황소는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각자는 다른 세 마리가 똑같이 자기를 흉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들 사이에 우정이 깨어지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고 결국 사자는 한 마리씩 네 마리의 황소 전부를 잡아먹었다는 우화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려 할 때 가장 염려하신 것이 제자들이 과연 서로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도 서로 누가 높으냐고 다투고 있는 형편이기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하신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는데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 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런 기도와 바람대로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 아래 하나가 되었습니다. 120명이 합심하여 기도했고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행5:42) 할렐루야!

성령이 그들 속에서 임하여 그들을 한 마음 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게 하여 마음이 갈라지고 나누어지게 합니다.  결국 우리의 아름다운 교회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꼭 사자같이 잔꾀를 부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한 마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 세 사람이라도 한마음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18:20).


교회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가장 먼저 허락해 주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두 공동체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시려고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 구성원과 서로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말이 됩니까?.


생각보세요. 왜 하고 많은 중에 나를 이 교회에 보내셨나?

왜 나를 이곳으로 이사와 장안중앙교회 지체가 되게 하셨나? 이유는 하나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번 여름 전교인 수련회는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단순한 휴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간이고 하나님의 복을 견고케 하기 위한 특별 기간입니다. 단순히 쉬고 놀러가는 것이라면 다른 곳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하나님이 내게 맺어주신 사랑 공동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 공동체, 그 공동체의 지체들과의 하나 되는 훈련 기간입니다. 


시간이 없다구요?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주님의 하나 되라는 명령을 따르신다면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교회 지체들과 하나 되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믿어진다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 되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 소원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까요?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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