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盜聽(도청)당하고 있습니다.
시139:1~4
주일낮예배 최일환목사 설교 20050821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설교:
미국 대통령이 재임중 하야를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2년 공화당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반이 워터게이트 건물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닉슨은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수뢰·탈세 등이 드러났으며 결국 1974년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임기 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사건을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사건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반대로 의회 민주주의의 전통을 지킨 사건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국정원 도청 사건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도청을 불법으로 규정해 놓고도 국가기관이 기업과 개인에 대해 광범위한 도청이 이루어졌다는 사건이 엄청난 충격이고, 또 도청을 통해 녹취된 내용은 더욱 국민들을 경악케 하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 돈을 주고 결국 정권과 기업이 결탁하려 했던 내용이 밝혀졌습니다.
저는 이 도청 사건이 어떻게 불이 번질지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그 내용이 공개되다 보면 이것이 한국 정치를 크게 흔들어 놓는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국정원에서 극비로 이루어진 도청이지만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겉모습과 속이 얼마나 다른가? 정치세계와 기업세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청의 불법여부를 따지거나 정치세계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모든 죄악을 은밀하게 하여 절대 들어나지 않으리라는 생각 속에 완전범죄를 꿈꾸고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죄악이 드러남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행위와 범죄가 온 세상에 들어나 공개될 것이란 사실을 알면 절대 그런 짓을 안 할 터인데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盜聽과 監聽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청을 도둑질을 해서 엿듣는 것이고 감청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기위해, 공공기관에서 행하는 것을 감청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고 우리를 監視하고 행위를 살피는 것은 盜聽이란 말을 쓸 수 없습니다. 차라리 監察하신다. 監聽하신다는 말을 써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쓴 글을 보니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사람은 24시간 도청당하고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는 도청이 아니라 감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시편 139편 1절-4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고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洞燭(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듣고 살피시는 것은 도청이 아닌 감찰, 감청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우리를 감청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시하거나 외면해 버립니다.
“아무도 모를 거야, 다들 그러는데 뭐!” 하면서 온갖 비리와 부정과 불법과 반칙과 비윤리적인 삶을 은밀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8장17절을 보세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은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바른 생각과 말 그리고 정직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24시간 감청하시고, 녹화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의 全知全能(전지전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성경은 그다지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존재하셨는지, 어떤 형태로 존재하시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은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셨다.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무소부재하시다. 아니 계신 곳이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신다...
성경은 70여 곳에서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17:1에서는 하나님이 당신 스스로가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브람의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이사야 9:6 에서는 예수님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런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否認한다면 그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한 분이 아니라면 우주와 인간 세계는 우연의 작품이고 우연의 연속이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주와 생명이 창조되었고 지금도 그 하나님의 전지전능으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신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全知全能의 단어의 의미를 아십니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고 하나도 못하는 것이 없어야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우립니다.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어떤 관계인가를 제대로 알면 그런 성도는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와 평안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감찰하시는데,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데 뭐가 두렵단 말입니까? 할렐루야!
우리 군에 가 있는 큰아이가 어렸을 때 밤에 집에서 놀고 있다가 천둥 번개가 “꽈광” 하고 쳤습니다. 아이가 기겁을 하고 놀랍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번개가 변압기를 쳤나봅니다. 그러자 아이가 아빠~~ 소리 지릅니다. 왜! 나 여기 있다 대답했더니 제 서재로 옵니다. 그리고는 아빠 옆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왜요? 아빠만 옆에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뭘 두려워하며 뭘 염려하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늘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여성 신학자들이 주기도문을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하늘에 계신 당신이여”하고 바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남성의 호칭인 아버지라 하면 안 된답니다. 그래서 당신이라고 번역했답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분들입니다.
왜 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나요? 왜 예수님이 아버지라 부르셨고 그렇게 가르쳤나요?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그분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감청하고 계심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의 言行心思까지 다 녹화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사람들의 전화 통화 내용을 도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무엇을 감찰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 우리의 말, 심지어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감찰하십니다. 나의 생각까지도 통촉하시고 나의 길, 나의 눕는 것 그리고 모든 행위와 혀의 말까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4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洞燭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어떻게 그렇게 아실까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다 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간혹 실록 다큐멘터리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과거 6.25전쟁 때, 해방 때, 그리고 이승만 정부와 4.19, 6.16 군사 쿠데타 때 장면들을 편집하여 방영하는 것을 보면 저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제가 대학다닐때 청년들은 전부 장발을 했습니다. 저도 머리카락을 얼마나 길렀던지 귀가 덥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다들 그랬습니다. 그게 멋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모습의 사진을 지금 보면 참으로 창피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모든 일생도 하나님 나라에 저렇게 Film처럼 녹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의심하거나 협박용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 뉴스를 들어보니 서울 강남의 어느 동네에는 cctv가 골목골목 설치된 후 범죄율이 급격히 줄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왜요, 다 찍히니까 전과자들이 감히 근접을 못하는 것입니다. 범죄사건만 생기면 오해 받을 것이고 불려 다닐 것이기에 ...
그러나 한편 사람들은 살기 좋은 동네 되었다고 좋아하지만 한편 사람들은 늘 감시당하는 것 같다고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 내가 잘못된 짓을 하거나 뭔가 구린 것이 있으면 문제가 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정정 당당하지 않겠습니까?
인천공항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세관 검사를 할 때 일일이 다 할 수 없답니다. 세관원들이 귀국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치를 살핀답니다. cctv가 면밀히 살핀답니다. 그러면 물건 속에 이상한 것이 들어 있는 사람은 수상한 행동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지없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 표정이 왠지 불안한 사람을 조사해 보면 거의 십중팔구는 이상한 물건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속이고 cctv는 속일 수 있으나 아무도 속일 수 없는 감청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동보다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읽으십니다. 그러니 그분은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1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생각까지 다 아시고 갚으십니다.
3. 하나님의 監聽이 복의 機會임을 알아야 합니다.
盜聽은 罪惡이고 두려운 것입니다. 저도 J국과 일주일에 3번정도 통화를 하는데 전화를 할 때마다 걱정되고 염려 되는 것이 그곳 경찰이 우리 통화를 도청하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행위와 언행을 감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우리 성도는 言行과 心思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眞實되기만 하면 오히려 監聽이 우리에게는 복의 기회가 되는 것임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악을 행하면 그대로 심판으로 갚으시고 선을 행하면 그것을 상으로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흘리신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의 모든 기록이 전부 삭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때는 악에 대한 기록이 없기에 상 받는 심판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절대 못 속입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이 문등병을 고침 받고 돌아갈 때 선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냅니다. 게하시가 눈에 불이 납니다. 아니 그것 좀 받아두지 왜 안 받느냐 말이야!, 결국 뒤따라가서 거짓말을 해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고도 아무것도 안한 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알게 하시고 게하시가 한 짓을 적발해 냅니다. 하나님의 종을 속이려는 행위, 그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죄악에 보응하십니다. 나아만의 문등병이 게하시에게 임하게 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은밀하게 하는 마리아의 옥합 헌신, 아무도 모르게 한 수고를 다 아시고 갚으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감청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 그 분 앞에 설 그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생명책이 있고 또 다른 책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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