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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이 방법일까? /롬3:23~27/2005년 9월 4일 설교

왜 이 방법일까?

로마서3:23~27


2005년 9월 4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설교:

사람처럼 무서운 것이 없고 사람처럼 악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작은 돈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입니다. 미국에 뉴올리안스 도시가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강도, 약탈, 강간 등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미국이 그 모양이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못된 인간들을 대하면 짐승만도 못하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완전 타락하여 짐승만도 못한 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표현이 23절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쉽게 우리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을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참으로 거룩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代贖, 즉 대신 죄 값을 치르시는 위대한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 方法이 바로 十字架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하여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하시면서 그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대속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맺었던 언약대로 모든 인간은 다 죽었어야 했습니다. 로마서 3장과 히브리서 9장의 말씀처럼 그 죄의 값은 사망이고 그 해결책은 피 흘림으로 되기에 내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 내 죽음을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죄 값을 치른 것입니다. 죄 값을 지불했기에 이제 의롭다함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값없이 되었으나 주님이 대신 치르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 은혜가 임한 것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것까지도 아셔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꼭 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길이 없었을까요?

그냥 하늘에 나타나셔서 회개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면 되었을 텐데 왜 굳이 그 방법을 쓰셨을까요?  이 방법일까? 여기에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잘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최초 언약은 아담과 에덴동산에서 행하신 언약입니다.

창세기2장16절로 17절을 보세요.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인간이 그 엄청난 복의 약속을 깨트렸습니다. 결국 인간은 모두 것을 잃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영광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담의 범죄는 아담 한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범죄이고 그러기에 아담에게 약속한 정령 죽으리라 하신 약속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 약속이고 그러기에 정령 죽으리라는 심판의 선고는 내게도 적용되는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피를 흘려 죽어야만 됐는데 그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심으로 해결하신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정령 죽으리라 해 놓고 그 약속을 안지키신다면 하나님은 불의의 하나님이시고 신실치 못하신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내가 피를 흘려 값을 치러야 하는데 생명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엄청난 복을 누리는 것이고 이 위대한 사실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도 구약 신약으로 기록되어 구약의 약속을 신약에서 이루시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약의 약속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고초를 겪으셨고 약속대로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그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오늘도 철저하게 그 언약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기를 때도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부모가 되어 보세요. 자녀들은 약속만 받으면 물러갑니다. 우리 막내가 제게 뭘 사달라고 요청하면 제가 즉시 사줄 때도 있으나 부러 내일 사주겠다고 약속을 정하고 내일 정확하게 사줍니다. 그러면 그 아이 뇌리 속에 “우리 아버지는 약속을 잘 지키시는 아버지야!. 우리 아버지는 신실하신 분이다” 라는 이미지가 새겨집니다.

  

당신이 맺으신 언약을 스스로 지키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2.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실 때 행함을 제시하고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온전히 율법을 준수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없이 지키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도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해서 기록했더라도 글자 수가 맞지 않으면 폐기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 해도 인간은 심령이 타락하였기에 지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거짓증거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러분중에 이 계명을 다 지키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 어느 구절 하나라도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 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함이 아닌 다른 길을 제시하시고 그것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대속을 통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만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을 로마서는 처음부터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조차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식을 어떻게 하시나요?

여러분의 자식이 자식의 노릇을 하기에 자식입니까? 아니면 내가 낳았기 때문에 자식입니까?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너 다음에 그 짓하면 죽여 버려!,” “또 다시 해봐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는다,” 또는 “반은 죽여 놓을 거여!” 하면서 살벌한 협박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자식들이 달라집니까? 아무도 그 말대로 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식을 내버리지 않습니다. 왜요? 부모 자식은 행위로 되어진 관계가 아니고 생명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행함으로 자식으로 인정받을 자가 없습니다.

심지어 믿어 구원받았다고 할 때도 그 믿는 것이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로 된 것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심지어 “내가 믿어 구원받았다” 내가 “믿었다”는 것이 내 행위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믿게 만드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선물을 주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롭다, 죄 없다고 하신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행함이 아닌 믿음입니다.

 

3. 하나님과 믿는 자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25절 하반절과 26절을 보세요.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 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하신 일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입니다.

義가 무엇입니까? 죄 없이 깨끗하고 바름이 義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바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당신이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시는 일에 의를 들어내시려 합니다. 하나님이 불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당신이 당신의 법을 지키시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에베소서2:8~9절을 보세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나비와 나방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나비는 낮에 햇빛 아래서 활동합니다. 그러기에 꽃과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삽니다. 하지만 나방은 주로 밤에 활동하기에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뜨거운 등불에 현혹되어서 자신의 몸을 뜨거운 불에 던져 타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었던 인류는 불나방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죄의 거짓에 현혹된 삶의 결과가 죽음인지도 알지 못하고 착각 가운데 살았습니다.

죄로 인해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방과 같이 사탄의 거짓에 현혹되어 죽음으로 날아갔던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여정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 죽음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현실을 깨닫게 하시고 영생의 길을 조명해 주신 절대가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능히 구원에 이르게 되어 영생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일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죽음으로 치르신 이 값에 대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오직 이방법이 은혜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구원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모두가 이 구원의 감격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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