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빌2:5~11)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그에게 보내준 사랑의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보내준 선물을 받게 된 바울은 몹시도 기뻤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읽어보면, 기쁨과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빌립보서를 가리켜서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바울은 에바브라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문제점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여기에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둘 다 여성의 이름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서로 다투지 말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들 모두가 품어야 할 같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밝혔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와 같이 그들 모두가 품어야 할 같은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면, 그들은 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연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대지로 나누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설명합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은 그 뒤를 이어서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아울러서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늘 우리 자신을 낮추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도 높여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빌2:6 (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2)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3) 오히려 자기를 비워 (4) 종의 형체를 가지사 (5)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6)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7) 자기를 낮추시고 (8)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8)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아홉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고로 높은 자리에서 최저로 낮은 자리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아홉 단계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여기에 “본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하면서, “모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단어를 서로 비교해보면, 본문의 뜻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본체는 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양은 외적인 것입니다. 본체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모양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본체는 영원불변합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양은 시시때때로 환경에 따라서 바뀝니다.
예컨대 사람을 한 번 예로 들어서 생각해보십시다. 사람은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의 모양과 갓난아이로 태어날 때의 모양이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또 나이가 들면서, 사람의 모양은 자꾸 바뀝니다. 이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본체는 그 모양에 상관이 없이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태아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외적인 모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언제나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이와 같이 변함이 없는 것이 바로 본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변함이 없는 본체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의 모양과는 상관이 없이, 언제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세세토록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은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고자, 사람은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아담은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자신을 스스로 낮추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셋째, “오히려 자기를 비워”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비우셨습니까? 물론 예수님이 그의 신성을 비우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니까,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의 신성을 비우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비우셨습니까?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지금까지 그가 하늘에서 가지셨으며, 또한 앞으로도 영원토록 누리셔야 할 영화로움을 비우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잠시 비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신 것입니다.
넷째, “종의 형체를 가지사”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주인처럼 우리에게서 섬김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종처럼 우리를 섬기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형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 “본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저 겉모양만 종의 모습을 취하신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주인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 남의 마구간을 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두실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주 감람산에서 주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실 때, 갈릴리 바다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배를 빌려서 그 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다른 사람의 나귀를 빌려서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드실 때, 다른 사람의 다락방을 빌리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을 장사지내실 때도, 다른 사람의 무덤을 빌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아니하시고, 종처럼 모든 것을 얻어 쓰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다섯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변함없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들과 같은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처럼 어린 시절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키가 자라고 지혜도 자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처럼 주리실 때도 있으셨고, 목마름을 느끼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피곤하실 때,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슬퍼하시면서 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결코 죄가 없으십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지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에게는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섯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입니다.
언뜻 보면 이는 조금 전에 살펴본 말씀, 곧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는 말씀의 단순한 반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두 말씀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설명한 말씀입니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인간 편에 설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인성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또는 행하신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심지어 이와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우리가 그의 부모를 아는데 어찌 저가 감히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을 하는가? 저가 귀신이 들린 것이 분명하도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심하게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일곱째, “자기를 낮추시고”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을 멸시하는 자들과 대항해서 싸우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더 낮추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주먹으로 예수님을 치기도 했습니다.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욕을 받으셨지만,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엄청난 멸시 속에서도 끝까지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곧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까?
여덟째,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기를 배척하는 자들을 향하여 얼마든지 이렇게 외칠 수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Stop! That's enough! You know who I am?(그만해! 이 정도로 충분해! 너희들은 내가 누구인 줄 알기나 하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한 번 본때를 보이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진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심문을 당하실 때도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도 잠잠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침묵하시며 잠잠하셨습니다.
아홉째,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하게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수를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본시 십자가의 형벌은 바사 시대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시대에 와서, 십자가에 사람을 못 박아 죽이는 일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주인에게 반항하는 노예라든지 또는 사회적으로 큰 죄를 저지른 흉악한 범죄자들에게만 이 십자가의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아홉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치에서 피조물인 사람의 위치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더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으시기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겸손한 마음입니다.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우리 안에 이와 같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낮추면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높아지심입니다.
빌2:9 (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2)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3)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오늘 본문 상반부에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말씀의 주어는 모두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 본문 하반부에서는 주어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지극히 낮추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그의 하실 일을 다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그의 하실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하반부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방법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목적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결과입니다. 말씀을 따라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방법입니다.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단계적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지극히 낮아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예수님을 단계적으로 계속해서 높이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1)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2) 하늘에서 (3)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1:21 (4)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을 네 단계로 높이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둘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킵니다.
셋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셔서 만물을 그 앞에서 복종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들 네 가지 가운데, 마지막 네 번째 단계만 대표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사실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새 이름을 주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또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도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주어진 새 이름은 무엇입니까? 우선 그것이 “예수”라는 이름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나서 했던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와 같이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받으신 이름입니다. 그러기에 그 이름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뒤에 받은 새 이름이 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도 예수님에게만 특별하게 쓰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예컨대 구약 성경의 여호수아나 호세아라는 이름은 예수님과 똑같은 의미의 이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새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새 이름,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은 무엇이겠습니까?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새 이름,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은 바로 “주”라는 이름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주”라고 하는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이보다도 더 뛰어난 이름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이전에도, 제자들로부터 “주”라는 칭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식적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만백성의 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든지 시인하지 않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제는 하나님이 공식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백성의 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에 함께 모여서,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목적입니다.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여기에 “예수의 이름”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새 이름, 곧 “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곧 “주”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입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신 목적은 만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무릎과 모든 입을 총망라하여, 이것들을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에 있는 자들”입니다. 누가 하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까? 천사들과 의인의 영들, 곧 우리보다 먼저 간 성도들의 영입니다. 이들이 지금 하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둘째, “땅에 있는 자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택함을 받은 우리들은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서 기쁨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셋째, “땅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또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심판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예배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신 결과입니다.
빌2:11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려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에게 드리는 모든 경배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언제나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롬9: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예수님은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다른 지체가 높임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가 높임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이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나 단순한 교리적인 교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우리의 삶에 실천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도 낮아집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처럼, 또한 사탄의 시험에 빠진 아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높이려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어버리실 것입니다.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예수님은 그의 삶을 통해서, 이 진리를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서, 언제나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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