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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110]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 110:1-7(2016110일 주일)

 

설교; 마경훈 목사(비전교회 담임)

 

본 시편은 다윗의 시로서 시편에 수록된 총 7편의 메시야 예언 시 중에 하나입니다. 본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4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라고 선포합니다. 5-7절은 원수들을 향한 메시야의 종말론적 심판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시 110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합니다. 다윗 시대에 라는 단어는 하나님이나 왕에게 사용했으며,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주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14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짐승이 아닌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12:9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승리자이십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원수들은 주님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원수들에게서 얻게 될 완전한 승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정복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승리를 거두었을 경우 패전국 왕의 몸이나 목을 발로 밟고 서서 자신의 승리를 드러내 보여주었는데, 1절이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지휘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규를 손에 잡고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십니다. 5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왕들을 쳐서 깨뜨리십니다. 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뭇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시냇물을 마십니다. 이것은 모든 싸움을 끝낸 후 타는 갈증을 해소하고자 음료를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패잔병과 도주자를 쫓으면서 그들이 한 모금의 물도 마실 겨를이 없을 때 추격자로서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머리를 드신다고 했는데 이는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머리를 떨군다는 것은 자신감을 잃고 낙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머리를 드는 것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힘을 내는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7절의 이 두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최후에 승리하실 분이십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 설교는 3절에 나오는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이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들이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됩시다.

3절에 보면 만왕의 왕이시며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시기 전에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게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교회가 성령을 받고 부흥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1) 날마다 새로운 신앙생활입니다.

이슬이 매일 새벽마다 새롭게 맺히듯이 날마다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날마다 교회에 오지만 교회에 올 때마다 새롭고, 날마다 드리는 예배요. 날마다 부르는 찬송이지만 예배를 드릴 때마다 새롭고, 찬송을 부를 때마다 새롭고, 기도를 할 때마다 새롭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104:30에 보면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의 영과 마음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신앙생활이 식상해지는 것입니다. 감동도 사라집니다. 기쁨도 사라지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하지요.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됩니다.

교회를 다니지만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면 예배가 지루하기만 합니다. 교회는 주님을 사랑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영적인 흥분이 없이 의무감으로 교회에 오게 됩니다.

제 아내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유치부 때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구역예배를 드린 기억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년이 되기까지 성령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했습니다. 어린이 합창단도 지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이 너무 힘들었답니다. 설교시간마다 정신을 차리고 설교를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졸았다고 합니다. 설교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졸았답니다. 그런데 청년회 여름 수련회를 갔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경통독수련회였습니다. 제 아내가 대표기도를 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얼마나 강하게 임하셨는지 다른 청년들이 제 아내를 만지기만 하면 성령을 받는 일이 있어났습니다. 다른 청년들이 제 아내를 잡으면 방언이 터지고 또 터지고 해서 온통 성령 충만 해졌다고 합니다. 제 아내는 성령을 받은 후 신앙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요. 감격이지요. 영이 새로워지니 마음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새로워지니 교회생활도 사회생활도 새로워졌던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니 새벽이슬 같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청년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2) 생명을 주는 신앙생활입니다.

133:3에 보면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헐몬산에서 내리는 이슬로 인하여 이스라엘 전체에 생명이 공급된다는 것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새벽이슬을 생각할 때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곡백화가 무르익고 열매 맺는 것은 바로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맞기 때문입니다. 새벽이슬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처럼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새벽이슬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이제 내 안에 있는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생명을 받고 생명을 나누는 생활입니다.

생명을 나누는 생활은 복음을 전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씨가 발아되고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어린이 전도협회를 통해서 ‘3일 클럽이라는 전도 프로그램을 훈련 받았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3일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일에 열심히 헌신한 여자 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몇 십 년 간 어린이 전도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분에게 어린이 전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열매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낙심이 찾아온 것입니다. 마귀역사였지요. 전도사님은 낙심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이 전도 사역을 정리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서 멋진 청년 한 명이 전도사님을 보더니 달려와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더랍니다. 이 청년이 전도사님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10여 년 전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전도사님이 저에게 글 없는 책으로 복음을 전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고 지금은 신앙생활 잘하고 있으며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그 전도사님은 자기가 전한 복음이 열매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열매를 확인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그 청년을 만난 후 다시 힘을 얻어서 어린이 전도사역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우리가 전한 복음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생명력을 믿읍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시다.

3) 연합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이슬방울 하나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이슬방울들이 모일 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슬이 모여 흘러 샘을 이룰 정도라고 합니다.

앞에서 살펴봤던 헐몬의 이슬에 관한 말씀(133:3)은 교인들의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133편을 보겠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슬 한 방울이 아닙니다. 이슬이 모여서 시온의 산들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연합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교회론이 잘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과 관계를 잘하고 사회봉사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상은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론은 우주적인 교회에 대한 정립이 필요합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섬기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시대도 지역도 교파도 초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우주적인 교회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역교회론이 세워져야 합니다. 간혹 지역교회에는 관심이 없이 우주적인 교회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교회는 내가 속한 교회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교회에 속해있습니까? 비전교회죠. 이게 확실해야 합니다. 우주적인 교회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지역교회에 대한 개념이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사고는 대체적으로 건전하고 삶은 희생적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지역교회에 대한 소속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집이 있지만 내 집이 있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내 맘에 든다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쉬면 안 됩니다. 내 집을 찾아서 들어가야 하고 내 집에서 쉬어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확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주적인 교회를 다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역교회를 다룹니다. 고린도교회, 에베소 교회, 골로세 교회, 빌립보 교회 등은 지역교회입니다. 우주적인 교회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가져야 하지만 내가 소속된 나의 교회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들과 자기 집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 쓰면서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헌신적입니다. 가족 모임에는 잘 나타나지 않으면서 가족 외의 모임에는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도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교회의 예배나 교회 내에서의 섬김보다 외부에서 일들로 바쁩니다. 외부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교회 예배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생활입니다. 우선 내 교회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 교회의 예배를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외부적인 봉사에 힘써야 합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교회 안에서 연합하십시오. 그리고 우주적인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주적인 교회는 지역교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힘찬 신앙생활입니다.

청년의 특징은 강건함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은 힘찬 신앙생활을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이 있고 청년 같은 신앙이 있고 아비 같은 신앙이 있습니다. 요일 2:14입니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청년 신앙의 특징은 강함입니다. 청년 신앙은 말씀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청년 신앙을 가진 사람은 힘찬 생활을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서울에서 살았지만 토끼장이나 닭장을 만들어놓고 토기도 키웠고 닭도 키웠습니다. 병아리 몇 마리를 사가지고 라면 박스에서 키우다가 좀 크면 닭장에 넣어서 키웠습니다. 병아리를 사다가 박스 속에 넣어두면 오래갈 놈과 금방 죽을 놈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래 갈 놈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힘차게 뛰어다닙니다. 금방 죽을 병아리는 힘이 없습니다. 앉아서 졸기나 합니다. 그런 놈은 여지없이 며칠 못가서 죽고 맙니다. 신앙생활은 병든 닭처럼 하면 안 됩니다. 활기찬 병아리처럼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교회에 오는 발걸음에 힘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활기가 넘칩니다.

2.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을 일으킵시다.

우리는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게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28:19-20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들에게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게 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3절에서는 성령충만을 3가지로 표현했습니다.

1)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3절에 보니 주의 권능의 날에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게 나아온다고 했는데 주의 권능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날입니다.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개인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에게 주의 권능의 날이 임한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교회에 주의 권능의 날이 임한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을 세우는 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를 세우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4:6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바벨론에서 포로 귀환을 한 스룹바벨은 성전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여러 방해들이 있어서 중단 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성전 재건이 가능한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을 주님에게로 나아오게 하는 것 역시 우리의 힘이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13:14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신앙생활은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신앙생활은 믿음을 갖고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믿음을 갖게 됩니다. 고전 12:3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살 수 있는 힘도 성령님께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3) 즐거이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이 헌신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을 일으켜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즐거운 헌신을 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행의 요인을 환경이나 타인에게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만 사실은 나 자신이 성령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행복합니다.

11:1-3을 보겠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실하게 되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결실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강림하시는 성령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고 모략과 재능의 영이시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즐거움이 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신앙생활이 즐거워지고 사역이 행복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를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상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제 아내가 돈 없는 전도사인 저를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 초기에 아내가 직장생활을 해서 생활비와 자기 학비 그리고 제 학비까지 벌었습니다. 큰 아이 모세를 임신한 후에도 직장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제가 받는 교회 사례비로는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임신중독에 걸려서 몸이 많이 부었습니다. 부은 몸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살이 푹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부종이라고 하잖아요. 제 아들 모세가 태어날 때는 양수는 터졌는데 아이는 나오질 않아서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하필이면 그날이 수요일인데 제가 섬기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지방에 내려가셔서 제가 수요 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가기 전에 아내가 모세를 낳고 수술실에서 나왔는데 의식은 없는 상태였는데 눈물만 흐르고 있더군요. 병원에서 교회까지 전철과 버스로 1시간 40분 거리였는데 제가 교회에 다녀왔을 때에도 아내는 의식이 없었고 역시 눈에서 눈물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그 후에 교회를 개척했고 개척교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 40일 금식을 할 때가 교회를 개척하고 1년이 채 안 됐을 때였을 겁니다.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목회자사모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도들이 몇 명 없으니까 교회 잡다한 일들은 제 아내가 도맡아서 했지요. 저는 금식하러 기도원에 갔습니다. 우리교회가 3층이었는데 4층에서 수도가 파열되어서 베란다로 물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 물이 예배당 바닥에 가득하게 되었고,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로 예배당 바닥에 약 3cm 두께로 살얼음이 얼었습니다. 그 추위에 그걸 혼자 치우면서 혼자 엉엉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 아내의 나이가 28살이었습니다.

지금은 주일 식사를 구역별로 돌아가면서 하잖아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제 아내가 다 했지요. 교회에 식당이 없으니까 베란다에 주방시설을 만들었습니다. 겨우 한 사람이 설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수제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더운데 왜 수제비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제 아내가 베란다에서 수제비를 하면서 땀을 비 오듯이 쏟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해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까마귀들의 공급으로 모든 것이 채워졌지만 날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로 인한 어려움 등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 아내가 어느 날 제게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정말 힘든 일이 많아서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때마다 어려움을 견디고 즐겁게 교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때문이었답니다. 자기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제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이 고난을 극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이 기쁨을 준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랑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즐거이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도록 합시다.

우리는 주의 권능의 날이 우리 개인과 공동체 가운데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거룩한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즐거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서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게 될 것입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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