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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서/하나님께 대한 삶 (롬 6:12-23)

제 13 강

하나님께 대한 삶


 

본문/ 6:12-23



I. 본문의 내용(Text)

#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살핀 내용과 연결되어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지난주에 살핀 내용이 죄에 대한 죽음의 문제요, 오늘 다루게 될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삶의 문제이다.

1. 그러므로(6:12) - 직설법과 명령법
바울이 기독교 복음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논리 전개 방법이다. 여기서 직설법은 문법 상 나타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명령법은 어떻게 행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이다. 직설법이 먼저 오고 명령법이 나중에 온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셨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이 먼저 선포된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명령으로 사랑하라는 지시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방종교는 이것이 반대가 된다. 먼저 명령법이 나온다. ‘너희가 이렇게 행하라’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에 따라 직설법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 주시리라”

여기에 “그러므로”의 자리가 있다. 복음에 직설법과 명령법을 연결시키는 연결 고리로 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사용된다. 그러나 율법 종교나 이방종교에서는 먼저 명령법이 나오고 이어 직설법이 나오기 때문에 “그러면”이라는 접속사가 사용된다. 그래서 “그러므로”의 종교와 “그러면”의 종교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2. 행동 지침(6:12-14)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제시되고 있다.

        1)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더러운 정욕에 굴복하지 말라
        2)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 맡기지 말라
        3)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자답게 하나님께 드리라
        4) 너희 지체를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라

결국 우리의 책임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의 권세에 저항하고 우리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3. 하나님께 대한 삶(6:15-23)
        1) 종으로서의 삶(16)
        우리는 자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면 독립을 얻거나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죄의 통치를 받게 되어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종이 되든지 죄의 종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결국 속박과 자유 사이의 선택이 아니고 누구의 지배를 받을 것이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회심의 의미(17-8)
        바울은 회심을 이 종의 논리로 설명한다. 먼저 죄의 종이었다.(17상) 그런데 복음을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17하) 그래서 죄에게서 해방되었다.(18상) 그 결과 의의 종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회심이란 새로운 주인을 만난 사건이다. 죄를 주인으로 섬기다가 이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된 것을 말한다.

        3) 종노릇의 심화(19)
        본래 죄에 종노릇할 때 이것이 진전되어 불법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되고 또한 이것이 진전되면 거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악화요, 다른 하나는 성화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이런 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4) 참 자유의 삶(20-22)
        각각의 종노릇은 또한 일종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는 참된 자유이지만 다른 하나는 거짓 자유이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에서 자유는 방종을 말한다. 이것을 나중에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에서 해방은 참 자유를 말한다. 이것은 거룩을 이루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마지막 결과(23)
        죄는 자기의 종들에게 충성스런 섬김의 대가로 삯을 지불하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사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에게 상급으로 영생을 주신다.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II. 본문의 메시지(Pre-text)

1. 죄를 이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몸은 여전히 지상에 속하여 있는 죽을 몸이다. 따라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들의 공격에 노출되어있으며 언제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계속적으로 죄에게 굴복 당하여 살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제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서 죄로부터 보호받고 유지되도록 되어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죄의 세력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죄를 이길 능력을 공급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삶의 가장 확실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우리를 하나님께 종으로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자칫 방종에 이르기 쉽다. 은혜의 통치는 전적인 순종이 전제되어있다. 마치 국가가 정한 법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때만 우리는 은혜의 통치 안에서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종으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이것은 철저한 순종을 뜻한다.

3. 영생을 바라보아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여기서 삯은 헬라어로 옵소니아라는 말인데 이것은 군사 용어로 마땅히 받을 보수를 말한다. 용병들은 땀 흘려 전쟁에 참가하여 대가를 받는다. 이것은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다. 죄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수고의 결과로 사망을 마땅히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했다. 여기서 은사는 카리스마로 자격이 없지만 때때로 군에서 황제의 선물로 하사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영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 전제가 있다. 우리는 원래 죄의 종이었기 때문에 이 영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종을 벗어나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사망을 면하게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물로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자격이 없지만 다만 소망 중에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결국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그분의 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참여하여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안에서 죄를 이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하며, 철저한 순종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려야 하며, 소망 중에 영생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III. 우리의 응답(Con-text)


1.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사는가?
나는 과연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인가? 죄의 종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 내 삶 속에서 거룩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들은 삶 속에서 거룩을 이루어 간다. 여기서 거룩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을 말한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거룩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3. 영생을 소망하고 살아가는가?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영생이다. 이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 이 땅에서 소유한 모든 것은 사망과 더불어 끝나기 때문이다. 영생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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