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서라
왕상 19:11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났고, 그 만남으로 인생의 놀라운 변화를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만남 이후 일개 늙은 양치기가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 만남 이후 교회의 박해자가 위대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변화를 겪은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수시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되었고, 이 영적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다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1917년에 신학계가 손꼽는 명저 가운데 하나인 [거룩](Das Heilige)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오토는 이 책에서 우리의 영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누미노제’(numinose)입니다.
이 누미노제라는 말은 오토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신적인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 ‘누멘’(numen)이라는 말을 기초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 신비적 체험’을 누미노제라고 부른 것입니다.
오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이 누미노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절대 거룩 앞에서 압도적인 권위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 하나님에 대해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외경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토는 이 누미노제가 서로 다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매혹입니다. 두려움이란 절대 거룩 앞에서 초라하고 연약한 자가 느끼는 전율적인 무서움을 말합니다. 그리고 매혹이란 그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관심과 배려를 느끼는 행복한 이끌림을 말합니다.
오토가 말하는 누미노제는 대표적으로 사 6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게 드리워졌습니다. 천사들이 왕래하며 찬양합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이사야가 너무 두려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 때 천사가 제단의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 순간 이사야는 자기의 악이 제하여 졌고 죄가 사해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주님의 질문이 들려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이사야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바로 이것이 누미노제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절대 거룩 앞에 섰습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내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 누미노제를 체험한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누미노제는 이사야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 체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은 이런 누미노제를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강도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강열한 누미노제를 체험한 사람도 있지만 보다 약한 누미노제를 체험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때는 강열한 누미노제를 체험하지만 또 어떤 때는 미미한 누미노제를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이런 누미노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이 누미노제의 영적 체험이 여러분에게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갈멜산 위에서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 도합 850:1의 영적 전쟁을 멋지게 치러냈습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상을 척결했고 우상을 섬기던 자들을 처단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위에서 기도로 3년이 넘도록 이어져오던 긴 가뭄도 끝이 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기를 죽이겠다는 악녀 이세벨의 전갈을 듣는 순간 영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갑자기 밀려든 두려움에 도망을 칩니다. 저 유다 남쪽 브엘세바로 그리고 거기서 하룻길을 더 가서 로뎀나무 밑으로 도망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어루만지셔서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셨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호렙산 한 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서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 때 엘리야는 다시 한 번 누미노제를 뜨겁게 체험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자로 회복됩니다. 다시 일어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능력있는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서라!”고 명하십니다. 저들에게 누미노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저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할까요?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선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영어로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worth’ 와 ‘ship’이 합성된 말입니다. 그 뜻은 가치를 돌려드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말은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드린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주일 오전 예배를 ‘대예배’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오랜 세월 주일오전 예배를 11시에 드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오전 11시 예배를 대예배라고 불러왔습니다.
왜 대예배라고 불렀을까요? 과거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일 때 11시 예배를 대예배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농사철에 11시는 너무도 중요한 시간입니다. 특히 논농사를 지을 때 11시에서 2시까지는 논에 물을 대야하고 벼를 돌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논농사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결단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의 예배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신앙고백적 의미가 담긴 말이 ‘대예배’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야 말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섬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해서 예배 순서 하나하나를 함께 진행해 갑니다. 이 과정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절차입니다. 찬양을 드릴 때 그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를 드릴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유명한 제과점이 있었습니다. 항상 기다려야 빵을 살 정도로 손님이 많습니다. 이 제과점의 이미지는 ‘늘 새로움이 느껴지는 맛’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늘 맛이 새로울까? 사람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데 재로도 늘 같습니다. 만드는 방법도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맛이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주인의 말이 이렇습니다. “저는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빵을 만듭니다. 매일 더 맛있게 빵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무엇보다 매일 더 많은 정성을 쏟으려고 노력합니다. 재료와 방법은 늘 같지만 마음과 정성은 매일 새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예배 순서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주일 새로운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의 예배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이런 예배 안에서 우리는 풍성한 누미노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자로 하나님 앞에 서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다음으로 기도자로 서야 합니다. 기도는 우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생애 마지막 지점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지다. 그건 사실이다.” 루터는 평생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가 자기 생애를 돌아보면서 결론적으로 남긴 말이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거지였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점에서 궁핍하고 무능합니다. 마치 갓 난 어린 아이가 엄마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모두는 거지입니다. 거지가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걸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필요를 구걸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 특히 간구의 기도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가운데 '케이트 스미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God Bless America'라는 노래로 유명한 분입니다. 신앙으로 산 가수로 미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가수로도 유명합니다.
이분이 믿음을 갖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친구와 같이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배가 썰물에 밀려 나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날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 보았지만 썰물이 너무 세차게 밀려 나가기 때문에 이 강한 조수를 거슬려 해변으로 도저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 쳤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케이트 스미스'는 두려워 떠는 가운데 '두 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성경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스미스는 친구들에게 '얘들아, 무서워할 것 없어. 성경에 두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고 하셨어. 우리 여기 세 사람이 있지 않니? 우리 셋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우리 함께 기도하자'
그래서 세 친구는 머리를 배 밑창에 조아리고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죽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우리를 살려 주세요.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 세 친구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보니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배로 인해서 조난당했던 이 세 친구가 안전하게 해변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 케이트 스미스는 한 평생 주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았고 놀라운 응답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이런 태도와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누미노제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풍성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헌신자로 하나님 앞에 서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또 하나 헌신자의 자세로 서야 합니다.
헌신자는 우선 그 마음에 열정이 가득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가득합니다.
요사이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만 처음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는 정말 형편이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축구팀에게 정말 큰 패배를 안겼던 헝가리 팀에 푸스카스라는 스타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메시나 호날두 정도의 선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선수가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할 수 있게 됐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축구를 하지 않을 때는 축구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는 축구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열정입니다. 이런 열정이 헌신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자는 다음으로 구체적으로 자신을 헌신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구체적으로 사역에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미국을 변화시켰던 위대한 부흥사 무디에 관한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무디가 어렸을 때 한 부흥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영국에서 강사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때 무디의 마음이 열렸고 감동을 받았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씀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를 통해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은 돈이 많다든가, 재주가 많다든가, 지식이 많다든가, 능력이 많다든가가 아니라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무디는 천둥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 생애을 온전히 바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날 이후 무디는 하나님 앞에서 늘 무엇을 할까를 묻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바칠까를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무디를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변변치 못했던 무디, 누구도 위대한 사역자감으로 여기지 않았던 무디를 사용하셨습니다. 미국이 경제공항으로 큰 시련을 겪을 때 무려 100만 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미국에 놀라운 영적 각성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큰 어려움 가운데 있던 미국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큰 위로를 전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본인에게 누미노제를 체험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는 2015년 표어를 “하나님 앞에 서자”로 정했습니다. 2015년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누미노제의 체험을 뜨겁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자로 서고, 기도자로 서고, 그리고 헌신자로 서 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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