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하는 능력
수 24:14-18
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마무리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몰려듭니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해넘이’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마무리에 대한 관심이 시작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의 속담입니다. 일단 시작을 하면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시작을 독려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시작의 중요성을 공감하곤 합니다.
그런데 중국고사에는 “행백리자 반구십(行百里者 半九十)”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백리를 가는 것은 구십리를 가야 비로소 절반이다’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진(秦)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었습니다. 무왕이 위(魏)와 조(趙)를 정복하자 자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한 신하가 왕에게 시경에 나오는 이 말로 진언을 했습니다.
이 신하는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마치 다 온 것처럼 마음을 놓고 있는 왕에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진언한 것입니다. 아직 반도 못 온 것처럼 생각하면서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진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합니다. 아니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시작을 잘 해도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 믿음을 잘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평생 예수를 잘 믿었어도 마지막에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그 모든 수고가 헛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맙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9:2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신앙생활의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마무리를 잘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마무리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생 신앙생활하다가도 마지막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마무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해산할 능력이 부족하여 해산에 실패한 임산부처럼 마무리할 능력이 없어서 마무리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마무리하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분별하는 능력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됐고, 땅을 분배 받아 그 땅에서 정착하며 살게 됐습니다. 저들은 낯선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오랜 세월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농사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는 농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신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저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과 저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하던 종교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화려하고 대단했습니다. 특히 일부 우상 신전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음란행위들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앞에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들의 종교문화에 동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들이 참신과 거짓 신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가 참신인지 가나안의 우상이 참신인지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참신이라고 생각하면 여호와를 택하고, 가나안의 우상이 참신이라고 생각하면 가나안의 우상을 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마무리를 잘 하려면 참신이 누구인지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참신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 요소들이 널려있습니다. 심지어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소리에 미혹되어 믿음의 길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큰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배웁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웁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배웠는데 학교에서는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큰 혼란을 겪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나?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인가?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이런 혼란 속에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짝퉁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짝퉁은 반드시 명품이 있을 때 생겨납니다. 그리고 짝퉁이 많을수록 그 물건은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기독교에 이단과 사이비가 많은 이유가 그렇습니다. 명품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짝퉁이 많이 나와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요사이 짝퉁이 진품보다 더 진품 같아서 전문가도 분별하기 어렵답니다. 그래도 몇 가지 명품 가방과 짝퉁 가방을 분별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1. 비 오는 날 가슴에 품고 뛰면 명품이지만 머리에 이고 뛰면 짝퉁이랍 니다.
2. 지하철에서 무릎 위에 꼭 붙잡고 가면 명품이고, 선반 위에 올려 놓 으면 짝퉁이랍니다.
3. 친구에게 빌려주지 않으면 명품이고, 쉽게 빌려주면 짝퉁이랍니다.
4. 값이 얼마인지 잘 알면 명품이고, 잘 모르고 얼버무리면 짝퉁이랍니 다.
5. 주일 대예배 때 가지고 오면 명품이고, 새벽기도회 때 가지고 오면 짝퉁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참 진리와 거짓 진리가 뒤 섞여있습니다. 거짓 진리가 더 참 진리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거짓 진리가 참 진리 행세를 하고 참 진리로 대접 받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누가 참신인가? 무엇이 참 진리인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고 결국 영적인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결단하는 능력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한 마디로 결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애굽에서 오랜 세월 지내던 중에 알게 모르게 자기들에게 스며들어왔던 우상숭배를 결단하고 끊어내라는 말씀입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알게 모르게 자기들이 받아들였던 우상숭배를 결단하고 끊어내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받아들였던 우상숭배를 결단하고 끊어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무리를 잘하려면 결단을 잘해야 합니다. 분별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이 들면 결단해야 합니다. 끊어내야 합니다. 단절하고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그대로 붙잡고서는 결코 마무리를 잘 할 수가 없습니다.
‘결심한다’는 말은 영어로는 ‘decide’입니다. 이 말은 접두어 ‘de’와 어근인 ‘cide’가 합해진 말입니다. 여기서 ‘de’는 ‘무엇으로부터’라는 뜻이고, ‘cide’는 ‘잘라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영어로 결심한다는 말의 뜻은 자기가 무엇을 잘라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결단은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내 삶이 엉망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로부터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면, 술을 끊지 않으면, 살을 빼지 않으면 당신은 얼마를 더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끊어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요즘 말로 스펙이 신통치 않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든지, 좋은 집안 출신이라든지, 남달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든지... 이런 점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저들은 결단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저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같이 과감하게 결단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를 들어 마 4:19-20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결단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 4:21-22을 보면 역시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결단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다른 삶을 살지 못합니다. 남보다 학벌이 대단합니다. 남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다른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변치 못한 삶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결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감하게 잘라낼 것을 잘라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었지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무리를 잘하려면 결단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깨달았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깨달았으면 단호하게 잘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3. 지속하는 능력
본문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여호와만을 섬겨왔습니다. 애굽에서도 여호와만을 섬겨왔습니다. 광야 생활하는 도중에도 여호와만을 섬겨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여호와만을 섬겨왔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무리를 잘하려면 지속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분별하고 결단했어도 이것이 지속되지 못한다면 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시작했으면 끝장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블링크], [티핑포인트]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이 쓴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요점은 지속하는 능력이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지속하는 능력이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타고난 지능과 탁월한 재능만으로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숨겨진 이점과 특별한 기회, 문화적 유산, 그리고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보면 심리학자 에릭손(K. Anders Ericsson)이라는 사람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릭손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팀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엘리트’로 장래에 세계 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냥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은 프로급 연주를 해본 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학생들이었습니다.
연구진은 그룹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집어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왔는가?” 세 그룹에 속하는 모든 학생들은 대략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초기 몇 년간은 대략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비슷하게 연습을 했지만, 여덟 살이 될 무렵부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엘리트 학생들은 다른 아이보다 연습을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살 때는 일주일에 여섯 시간, 열 살 때는 열 두 시간, 열네 살 때는 열여섯 시간으로 연습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서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일주일에 서른 시간을 연습했습니다.
결국 스무 살이 되면 엘리트 학생은 모두 1만 시간을 연습하게 됩니다. 반면 그냥 잘하는 학생은 모두 8,000 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000 시간을 연습합니다. 에릭손과 그의 동료들은 이 연구 결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천재성과 재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속적인 연습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자기들끼리 했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중국교회지도자들이 저와 우리교회를 남다르게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해 두해 돕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무려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결 같이 교류하고 돕고 후원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속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무엇하나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더 강한 표현으로 말씀드려보면 끝장을 보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계속 그 교회를 다녀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봉사를 해도 지속적으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입니다. 금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 인생의 마무리, 우리 신앙생활의 마무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설 때 인생의 마무리, 신앙생활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무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분별하는 능력, 결단하는 능력, 그리고 지속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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