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는 습관을 기르자
마 10:12-13
일전에 제가 다이어트를 한 일이 있습니다. 6개월 동안 약 8kg을 뺐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늘 보아왔기 때문에 살이 빠진 것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무슨 병 걸리셨습니까? 암에 걸리면 체중이 빠진다던데요...” 또 어떤 분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교회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목사님이 스트레스 받아서 체중이 빠진다던데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꼭 말을 이렇게 밖에 못하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날씬해 지셨네요. 원래 목사님 미남이신데 체중이 빠지니까 영화배우 아무개처럼 멋있습니다. 체중을 빼시니 활기차 보이시네요. 축하합니다. 잘 하셨네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 목사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알고 보니 이 목사님은 누구를 만나도 축복하는 말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God bless you!”를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셨습니다. 한 마디로 이분은 축복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축복하며 사는 그 인생이 멋있습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사람은 추합니다. 저주하며 사는 그 인생은 정말 꼴불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명령의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축복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에 합당하면’과 ‘합당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입니다. 축복할 때 우리 생각에 축복할 만한 사람이 있고, 또 축복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 축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결코 축복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합당하거나 합당하지 않거나 개의치 말고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축복할 만한 사람이거나 축복해서는 안 될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기꺼이 축복하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지만 내키지 않는 사람과 심지어 결코 축복할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조차도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늘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한 마디로 축복을 습관화하면 가능합니다. 그가 누구든지 축복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가능합니다.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든지 축복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가능합니다. 생각한 뒤에 축복하려면 어렵습니다. 상황에 따라 축복하려면 어렵습니다.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축복하려면 어렵습니다. 습관화되면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축복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까요?
축복의 마음
우선 축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창 1: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시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것은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났다면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 5장의 산상보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말씀하시면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이 바로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복을 받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12절까지 무려 아홉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주님의 제자들이 복 받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이런 주님의 마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복 받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히 11:20-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이삭과 야곱이 행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들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삭의 일생은 복되고 귀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 산에 올라 번제로 바쳐질 뻔 하다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던 그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히브리서 저자였다면 이 사건을 다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삭의 일생 가장 기억해야 할 일을 한 가지 꼽는다면 바로 믿음으로 축복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합니다. 놀라운 일들도 많고 힘든 일들도 많았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건하과 얍복강에서 밤새 천사와 씨름하던 사건이 있습니다.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사건도 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고생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히브리서 저자였다면 야곱의 일생 가장 대표적인 일을 꼽으라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을 꼽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야곱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로 믿음으로 자식들을 축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은 축복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이삭과 야곱은 그 마음속에 축복하려는 마음을 담고 살았습니다. 평소에도 축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축복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축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축복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축복의 언어
다음으로 축복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려면 축복하는 마음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말로 그 축복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댓글문화입니다. 영어로 ‘reply’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댓글이 주로 악의적인 말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것을 소위 ‘악플’이라고 합니다. ‘악’과 댓글이라는 뜻의 ‘reply’를 합해 놓은 말입니다.
우리사회에 이 악플이 창궐해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연예인들이 주 공격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이 악플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고 그 중의 몇 몇 사람은 끝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진실씨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평소에 악플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실과 다른 루머가 퍼지면서 최진실씨는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살한 날도 죽은 사람을 욕보이고 저주하는 악플이 집중 돼서 결국 포털들이 댓글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터넷 세상은 이미 저주의 마당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주의 말로 그 정신과 영혼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 중 73%가 욕을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중에 32%는 습관적으로 욕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녀들이 2/3는 욕을 하며 살고 있고, 1/3은 입만 열면 욕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욕과 저주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롬 12:1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고 해도 절대로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욕과 저주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축복의 언어를 통해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어느 수필가의 글을 읽다가 마음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서울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신설동 집안의 복이 계속 따라오라고 방마다 창호지를 북북 찢고 청소도 대충 했습니다. 복이 그 집이 싫어서 나를 쫓아오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봉천동 집에 도착해서 빈 집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창호지도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온종일 따뜻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 수필가는 한편으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말, 그 축복의 행동에 눈물이 나도록 감사를 느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축복의 말로 이 세상을 바꿔가야 하겠습니다. 욕과 저주로 지옥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축복의 말로 천국으로 바꿔가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축복의 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는 형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등등
둘은 “당신은 ... 될 것입니다.”하는 형식입니다. “당신은 잘 될 것입니다. 당신은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기도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등등
셋은 “당신이 ... 되기를 바랍니다.”하는 형식입니다. “당신이 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등등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축복의 언어를 입에 달고 사십시오. 우선 자녀들에게 매일 이런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아내와 남편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런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교우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축복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여러분 주변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기도
또 하나 우리가 축복하는 습관을 기르려면 늘 축복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축복하는 기도가 우리를 축복의 사람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민 6:22-2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축복기도하게 하신 뒤에 제사장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축복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향해 제사장 사명을 받고 파송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24-26에 이렇게 축복기도를 드리라고 그 내용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둘은 은혜 베푸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은 평강을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 내용으로 축복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선 자녀를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십시오. 아내와 남편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십시오. 나아가 지인과 이웃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드리십시오.
한 어르신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늘 부모님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자랐답니다. 6.25때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됐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바란다는 축복기도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를 했답니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어느 곳에 있든지 새벽 5시가 되면 우리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분은 전쟁에 나가서도 늘 부모님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그 기도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답니다. 그래서 죄짓는 자리에 가지 않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답니다. 밤새 전투가 벌어져서 잠도 못자고 공방이 벌어졌답니다. 그가 참호에서 적진을 살피고 있는데 마침 새벽 다섯 시가 됐답니다. 부모님이 지금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힘들고 두려운 마음에 자기도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기도하고 있는 그 시간 참호 위로 적의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답니다. 서 있던 사람들이 여럿 죽고 파편에 여러 사람이 다쳤답니다. 그런데 마침 자기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 꿇고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답니다.
이분의 간증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부모님의 아들을 지키시기를 원한다는 이 축복기도가 자기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축복기도가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의 축복기도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도 축복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축복을 베풀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축복의 습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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