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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아모스(박상훈)

[스크랩] 아모스서/제38강 교만한 이스라엘의 패망(6:8-11)

제38강 교만한 이스라엘의 패망(6:8-11)

 

6:8-1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 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에는 교만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만을 뜻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오히려 교만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단어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다시 본문을 읽으면서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야곱의 뽐내는 듯한 교만함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영광이란 단어가 좋은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만, 이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교만, 또는 자만이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본문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내용과 형식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8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여호와의 맹세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내용을 보면 전반부에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즉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9∼11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범죄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실제적인 예를 통해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벌받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하나의 실례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8절에 말하고 있는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라고 할 때의 "내가"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9∼11절에 나오는 말씀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선지자 아모스가 말씀의 주체라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우선 11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3인칭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인용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아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을 덧붙임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은 8절로 끝나고, 9절부터는 선지자 아모스의 말씀이 시작됨을 우리말 성경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의 주체가 되시고, 9∼11절은 선지자 아모스가 말씀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8절 말씀부터 좀더 자세히 공부하겠습니다.
(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굉장히 위엄 있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천하의 모든 군사들을 통솔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이 말이 참으로 무서운 표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름떼와 같은 만군을 이끌고오시니 얼마나 겁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감사한 표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보살피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롬8:31∼39에서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롬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구원과 궁극적인 승리는 이 세상의 그 어느것도 빼앗지 못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아무도 대적할 자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의 원수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우리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영적인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게 됨을 여러분께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아모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데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엄청난 표현입니까?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맹세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두 가지 정도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소극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돌이키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최종 결심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열국을 심판하시는 말씀 가운데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여기서는 맹세라고 하는 형식을 빌어서 아주 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둘째로, 맹세는 뜻을 돌이키지 않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추진해 나가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맹세라는 표현을 통해서 1) 하나님이 일단 뜻을 정하셨으며, 아울러 2)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에 여기서 주 여호와가 누구를 가리켜 맹세하셨습니까?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본래 맹세라는 것은 자기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을 대상으로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서 맹세하셨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맹세하셨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를 하셨는데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약 그럴 리 없지만 맹세를 어기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자신"이라고 쓰인 단어의 원뜻은 "목"입니다. 좀더 원색적으로 번역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을 가리켜 맹세하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내 목을 걸고 맹세한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어기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따?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한 표현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식상하셨으면 이런 표현을 쓰셨겠습니까?
아모스서에는 맹세에 관한 내용을 세 군데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 뒤에는 어떤 내용이 따라오는지 살펴봅니다.
(암4: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암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암8: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맹세 뒤에 축복이 따라옵니까? 아닙니다. 맹세 뒤에는 심판이 따라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6:8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6:7을 보시기 바랍니다.
(암6:7)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사로잡힌다는 말씀을 6:8에 맹세라는 표현을 빌어서 다시 한번 엄숙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내용을 살펴봅니다.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야곱의 영광"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본시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고 난 뒤에 받은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따라서 야곱의 영광은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야곱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우선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라는 구절이 히브리어의 한 표현 기법인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싫어하며"와 대구를 이루고 있는 말은 무엇입니까? "미워하므로"입니다. 똑같은 뜻을 비슷한 두 단어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곱의 영광"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 무엇입니까? "궁궐들"입니다. 이것도 역시 같은 뜻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의 궁궐들이 바로 이스라엘이 자랑하고 뽐내는 영광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단어는 사실은 교만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줄 압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게 무엇을 뽐내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궁궐들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성읍과 거기 가득한 것을 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아모스가 말한 이 성읍은 어디겠습니까? 6:1을 읽어봅니다.
(암6: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그러니까 지금 아모스가 어디를 주로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만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나머지는 모두 안전하게 보존하신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대표적으로 이 성읍, 곧 사마리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거기 가득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성읍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짐승, 또 모든 재물, 예컨대 상아 상 같은 것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대적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적의 손에 다 사로잡혀 가고 약탈을 당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쟁 중에 다 불살라져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든 것이 남김없이 다 제거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9∼11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멸망하는 모습을 생생한 현장감을 통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9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6:9)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우선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열 사람이 많은 숫자입니까? 적은 숫자입니까? 다시 말해서 열 사람이나 되는 사람이 남아 있더라도 다 죽을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 집에 열 명밖에 안 남아 있어도 그 적은 인원도 다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우선 여기서 남는다는 것이 어디서 남는다는 것입니까? 8절에 기록된 대로 대적의 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9절에 많은 사람이 남는다는 것이 맞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 죽고 조금만 남는다는 것이 맞겠습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 명이라는 것은 결코 많은 사람이 남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8절에 기록된 전쟁에서 거의 전멸하고 겨우 열 사람이 남는다 하더라도 그들도 전쟁은 아니지만 다른 이유에서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집에"라고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생각해서 한 집에 열 명이 남았으니까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집이라고 하면 다윗 왕조 전체를 가리킬 만큼 아주 넓은 뜻을 내포합니다. 따라서 여기에 말하는 한 집도 앞에 나오는 성읍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5:3을 읽어봅니다.
(암5: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열 명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본시 유대인들의 관념에 의하면 한 사회를 이루는 가장 최소한의 인원이 열 명입니다. 열 명 이하는 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열 명이 있으면 회당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의인 50명부터 시작해서 몇 명까지 내려갑니까? 열 명까지 내려갔습니다. 왜 열 명까지만 내려갔을까요? 다섯 명 까지 내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열 명이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열 명이 안 되면 사회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때는 개인별로 구원이 필요하지 사회로서의 존재 가치는 더 이상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아모스 본문에서도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열 명조차도 남지 못하고 다 죽고 말 것이라는 말씀은 더 이상 그 성읍이 하나의 사회로 재건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성읍은 완전히 집단으로서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파멸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럼 전쟁에서 살아 남은 열 명은 어떻게 죽게 됩니까? 본문에 명백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10절에 있는 말씀이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줄 압니다. 10절을 읽어봅니다.
(6:10)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너와 함께 한 자가 있느냐 하여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10절은 대단히 난해한 구절입니다. 또 사람들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우선 우리말 성경에서는 "죽은 사람의 친척"과 "시체를 불사를 자"를 동일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대로 놓고 해석을 해보면 하나의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9절에 보면 열 사람이 다 죽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과 시체 불사를 자를 동일인으로 보지 않고 각기 다른 인물로 보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과 시체를 불사를 자 두 사람이 시체를 치우기 위해서 성읍에 왔습니다. 한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밖에 있는 사람이 집 안에 들어갔던 사람에게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왜 시체를 불사르려고 하는 것입니까?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중한 죄를 지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화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화장하는지 살펴볼까요?
(레20:14) 누구든지 아내와 그 장모를 아울러 취하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레21:9)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
(수7: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특별히 큰 죄를 지은 사람만 불사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때는 전쟁 후의 전염병, 곧 악역으로 인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더러운 병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불살라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성읍의 열 사람도 결국 염병에 의해서 다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죽은 사람의 친척과 시체를 불사를 자 두 사람이 그 뼈를"이라고 했는데 "그 뼈"는 시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가는 것은 시체를 불사르기 위해서겠지요?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다시 말해서 밖에 있는 자가 안에 들어간 자에게 물었습니다. "아직 너와 함께 한 자가 있느냐?" 이 말은 "살아남은 자가 있느냐?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자가 있느냐?"는 뜻입니다.
"대답하기를 아주 없다 하면 저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우선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이겠습니까? 내실 밖에 있는 자가 내실에서 시체를 점검하는 자에게 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집 밖에 있는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말라고 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본문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몇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다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엇을 기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실에 있는 자가 아무도 그 안에 살아남은 자가 없는 것을 보고서 "아이고 하나님 맙소사!"라는 식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서 망령되이 일컫기 때문에 밖에 있는 자가 주의를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셋째로, 더 좋은 해석이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나자빠졌습니까?
(암4: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5:17)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 마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이로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괜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가 자기들이 살아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발각되기라도 하면 자기들도 역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입다물고 조용히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멸망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11절을 봅니다.
(6:11)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11절은 심판의 확실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명하시므로." 심판을 명하시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명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심판은 너무나도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침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입에서 뱉는 침을 말합니까? 아니면 한의사들이 놓는 침을 말합니까? 이 말은 친다는 뜻입니다. 긍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큰 집, 작은 집을 치시는 도구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갈라지고 터지는 것은 어떤 천재지변일 때 볼 수 있는 현상입니까? 지진입니다. 그러니까 8절은 대적과의 전쟁, 9절과 10절은 염병, 11절은 지진을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큰 집은 무엇으로 지었겠습니까? 5:11의 말로 대답해보세요. "다듬은 돌"로 지은 것입니다. 또 물어봅니다. 하나님께서 큰 집을 치시고 작은 집을 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집들은 어떻겠습니까? 안전하겠지요? 아닙니까?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큰 집부터 작은 집까지 그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을 치신다는 것입니다. 양쪽에 있는 두 개를 대표적으로 말함으로써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까지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을 메리스무스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전쟁에 의해서 거의 다 죽고, 남아 있는 극소수의 사람은 염병에 의해서 죽게 되고, 저들이 뽐내던 성읍은 지진에 의해서 완전히 황폐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공부하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몇 군데만 찾아봅니다.
(시101:5)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잠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사13:11)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렘50:31)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날 곧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말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롬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제일 싫어하심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교부 성 어거스틴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제일 첫걸음이 무엇입니까? 마5:3을 보시기 바랍니다. 산상수훈의 8복 중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겸손한 것입니다. 오늘 아모스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교만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또한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교만한 기도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겸손한 기도,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자신을 낮추는 기도에는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언제나 우리 자신을 낮추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높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드리지 말고 세리와 같이 나를 낮추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에 은혜의 이슬이 많이 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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