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세우신 예수님 (막3:13~19)
오늘 본문 14절과 16절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또한 마10:1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있는 권능을 그의 제자들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힘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리해서 엡2:20 말씀과 같이, 그들은 교회의 터가 되었습니다.
또한 엡3:5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지금도 복음전파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열매인 셈입니다.
눅22:30을 보면, 그들은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계21:14을 보면, 하늘 나라의 성 새 예루살렘의 성곽에 있는 열두 기초석 위에는 그들 열두 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본시 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큼 뛰어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시골 출신이었습니다. 행4:13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은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직업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쟁쟁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됩니다. 나도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나도 사명을 잘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나도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나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기도합시다. 오 주여! 나를 사용하옵소서. 내게도 능력을 주시어, 나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멘.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네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열둘”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막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3:6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막3: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그들의 박해를 피하여 갈릴리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이,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갈릴리 바다 근처에는 산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어떤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눅6:12에 의하면, 이 때 예수님이 산으로 가신 것은 그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으로 오르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남은 때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과 의논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라는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가 원하시는 사람들을 주권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이력서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창조주로서, 그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미련함도 아셨고, 그들의 연약함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그들이 자주 넘어질 것도 아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가룟 유다도 부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그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온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면, 배와 그물도 버리고 와야했습니다. 세관에 앉아 있다가도, 즉시 일어나서 와야했습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부르실 때, 모든 피조물은 그의 부르심에 순종할 뿐입니다.
막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오늘 본문 16절에도,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열둘을 불러서 그의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열둘”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습니다.
후에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행1:26을 보면, 맛디아가 제비에 뽑혀서 그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열둘”이라는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중에 바울도 사도가 되었지만, 그는 “열둘”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셨습니까? 왜 예수님은 “열”이나 “열셋”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열둘”을 세우신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대교와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막2:21을 보면, 예수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막2:22에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완전히 부정하셨습니다.
롬10:4 말씀과 같이, 유대교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인간의 의를 세우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교를 폐지하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지도자들도 심판하셨습니다. 마23:15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들을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23:33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들도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3:22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에 속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막3:29 말씀과 같이, 그들의 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더 이상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제사장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폐하시고,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지도자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눅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새로운 지도자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교와 그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합시다.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구원도 얻습니다. 귀하게 쓰임도 받습니다. 예수님의 축복도 받습니다. 하늘 나라의 영광도 누립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고백합시다. “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아멘.
둘째로, “열둘”을 불러 세우신 목적입니다.
막3:14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여기에 “이는”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예수님이 “열둘”을 불러 세우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 그들을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11:29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봅니다.
우선 제자들에게는 이해력이 부족했습니다. 막8:17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8:21에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이와 같은 말씀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마음이 둔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행1:3을 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사십 일을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는 겸손도 부족했습니다. 막9:34을 보면, 그들은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했습니다. 막10:35 이하를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를 바라다가 다른 제자들의 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을 보이심으로, 그들에게 겸손을, 섬김을,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는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막4:40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나무라셨습니다. 막16:14을 보면,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 없는 것”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습니까? 요2:11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심으로 제자들을 믿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신 것은 불신자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제자들에게 돈독한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본을 보이심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찬송가 375장 2절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하면서, 힘써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배우도록 합시다.
둘째 목적은 그들을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부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이어 승천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대신하여, 이 “열둘”로 하여금 그의 사역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막1:38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의 최우선 순위도 역시 전도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제자들이 해야 할 사역의 최우선 순위와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였습니다. 막16:15을 보면, 이 사실은 분명해집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이것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하신 말씀입니다.
금년의 우리 교회 표어는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힙시다.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줍시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해줍시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단12:3을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옳은 데, 곧 예수님에게 인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내 이웃을 예수님에게 인도합시다.
그리하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하늘의 별은 하나가 아닙니다. 하늘의 별은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합시다. 그리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고도 영원토록 빛나는 축복을 받도록 합시다.
셋째로, “열둘”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불러서 그의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사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막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10:1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도 주셨습니다. 본시 이와 같은 권능은 예수님에게 속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셔서, 그들도 같은 권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3:1 이하를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고쳤습니다. 행5:12에 의하면, 제자들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행5:16을 보면,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들을 많이 내쫓고, 병든 사람들도 많이 고쳤다고 했습니다.
마28:20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무엇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밝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권능은 그들의 전도에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행17:6을 보면,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이 그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들은 그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온 세상에 행사했던 것입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교회는 날로 부흥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은 온 로마 제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힙시다. 힘써 밝힙시다. 온 누리에 밝힙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밝힙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넷째로, “열둘”의 명단입니다.
막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①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막3:17 또 세베대의 아들 ② 야고보와 ③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막3:18 또 ④ 안드레와 ⑤ 빌립과 ⑥ 바돌로매와 ⑦ 마태와 ⑧ 도마와 ⑨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⑩ 다대오와 ⑪ 가나나인 시몬이며
막3:19 또 ⑫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성경에는 “열둘”의 명단이 네 곳에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0장, 마가복음 3장, 누가복음 6장, 그리고 사도행전 1장입니다. 이들 네 곳의 명단들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의 이름이 맨 앞에 나오고 가룟 유다의 이름이 맨 뒤에 나옵니다.
베드로는 “열둘” 가운데 지도자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이름이 항상 맨 먼저 등장합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자였습니다. 그는 거짓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의 이름은 언제나 맨 나중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둘째, “열둘”은 네 명씩 한 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1조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입니다. 제2조는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입니다. 제3조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가룟 유다입니다. 각 조의 조장에 해당하는 첫 이름은 항상 같습니다. 그러나 각 조원의 이름은 명단에 따라 순서가 조금씩 다릅니다.
셋째, 제1조는 많이 알려진 제자들이고, 제3조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제자들입니다.
제1조에 속한 제자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제2조에 속하는 제자들은 제1조에 속한 제자들보다는 알려진 바가 적습니다. 제3조에 속하는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열둘을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첫째가 시몬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그 뜻은 반석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그의 수제자로서, 반석처럼 든든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요1:42을 보면, 베드로는 게바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입니다. 막1:19을 보면,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뱃사람으로 성격이 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성질이 좀 누그러지기를 바라시면서, 그들에게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넷째는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데리고 오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1:42에서 그는 그의 형제 시몬을, 요6:9에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그리고 요12:22에서는 몇몇 헬라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다섯째는 빌립입니다. 그는 제2조의 조장입니다. 요1:44을 보면,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간에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요1:45을 보면, 빌립은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 인도했습니다.
여섯째는 바돌로매입니다. 아람어로 “바”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본명은 요1:49에 나오는 나다나엘입니다. 마16:17에서 시몬 베드로가 “바요나 시몬”이었듯이, 그는 바돌로매 나다나엘이었던 셈입니다.
일곱째는 마태입니다. 마10:3을 보면, 그는 세리였습니다. 마태는 막2:14에 나오는 레위와 동일한 인물입니다. 아마도 레위는 부르심을 받기 전의 이름이었고, 마태는 부르심을 받고 난 후의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신약성경을 여는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여덟째는 도마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쌍둥이입니다. 따라서 도마에게는 그와 쌍둥이인 형제나 자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요20:28에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아홉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그는 제3조의 조장입니다. 막15:40에서, 그는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상대적으로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고, 영향력도 적었을 것입니다.
열째는 다대오입니다. 눅6:16과 행1:13에 의하면, 그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그는 막둥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그에게 “여자의 젖가슴,” 곧 mama's boy라는 뜻을 가진 다대오라는 애칭을 붙여주었을 것입니다.
열한째는 가나나인 시몬입니다. “가나나인”은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입니다. “가나나”는 열심을 뜻합니다. “인”은 무리, 곧 당을 뜻하는 접미사입니다. 따라서 그 전체적인 뜻은 “열심당”입니다. 눅6:15은 그를 셀롯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셀롯도 열심당을 뜻합니다.
마지막 열두째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유다 남방의 그리욧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룟 유다라 불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판 자였습니다. 그래서 막14:21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으십니까? 승동교회를 섬기는 박상훈 목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그 책을 읽어보시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제 찬송가 375장 3절 가사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아이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나도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능력은 내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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