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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신을 밝히 드러내신 예수님! (막3:20~30)

자신을 밝히 드러내신 예수님! (막3:20~30)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베푸신 지혜로운 스승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와 같은 견해는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컨대 막2:5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2:28에서는 그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14:9에서는 그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밝히신 이상, 예수님을 지혜로운 스승이나 훌륭한 지도자로 단순하게 간주해버리는 견해는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예수님에 대한 입장은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 정신병자가 “나는 세종대왕이다.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정신병자가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라고 대꾸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서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에게 이와 같은 증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쳤을 수가 없습니다. 미친 사람이 권위 있는 새 교훈을 줄 수 없습니다. 미친 사람이 각종 병을 고치며, 더러운 귀신을 내쫓을 수 없습니다. 또한 미친 사람을 보기 위해서,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수는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종교 사기꾼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이 이와 같은 견해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사탄을 힘입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자기를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기꾼이 될 수 없습니다. 시기꾼이 놀라운 이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기꾼이 진리를 선포할 수 없습니다. 사기꾼이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기꾼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사탄보다 더 강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보다 더 강한 이는 오직 한 분, 곧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다시 한번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외에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는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전혀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육의 세계, 영의 세계, 자연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죽음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님은 네 권의 복음서가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입니다. 네 권의 복음서는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삽니다. 천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죽습니다.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요20:28에서 도마가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합시다. 행4:13 말씀과 같이, 이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던 사람들(20~21절).


막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막1:29을 보면,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막2:15을 보면,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레위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따라서 이 때도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어떤 집에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시몬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시자, 무리가 다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각처에서 크고도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몰려오는 무리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열두 제자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막2:1 이하를 보면, 무리는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었습니다. 또한 막3:9을 보면, 무리는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대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무리는 매우 거칠고 공격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식사를 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문을 부수고라도 밀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막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막3:32을 보면, 여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을 가리킵니다. 막6:3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이라는 형제들과 또한 누이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이미 죽고 난 뒤였을 것입니다.  

막1:9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의 친족들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집에 계시다는 사실과, 또한 그 곳으로 모여드는 무리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러 나아왔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나사렛으로 데려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그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았습니다.

막6:3을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고 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의 일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도 예수님에게는 전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7:5에 있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동생들 앞에서 “의자야 나오너라, 또는 여기에 책상이 있으라”고 하시면서, 창조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나사렛에서는 이적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 때부터 예수님의 떠돌이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 것는 아니었습니다. 나쁜 소문들도 많았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무시한다더라,” “예수님은 세리 및 죄인들과 어울린다더라,”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더라,”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다더라” 등등의 소문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의 자녀들에게 그 사실을 누누이 말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동생들에게 아직은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예수님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예수님을 붙들러 나왔습니다.

물론 그들은 잘못된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며, 미친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1:14을 보면, 나중에는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신서 첫머리에서 자신들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보는 사람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특별하게 미친 사람들은 꽤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도 “나는 석가모니다,” “나는 마호메트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미친 사람들은 한결 같이 “나는 예수다”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탄이 미혹하고자 하는 이름은 “예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미혹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에게 미혹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종교 사기꾼이라고 보던 사람들(22~26절).


막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막1:28을 보면,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갈릴리뿐만 아니라, 수도 예루살렘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조사 차원에서 서기관들을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내린 결정은 그들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막3:6을 보면,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또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 곧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후6:15을 보면, 사탄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벨리알도 있습니다.

왕하2:4을 보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이 나옵니다. 그 뜻은 “파리들의 주”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신을 경멸해서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배설물의 주”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에게는 바알세불이 사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유대교는 예수님의 친족들처럼, 예수님이 미쳤다고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권세와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초자연적 존재인 하나님이나 사탄만이 그와 같이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이 들렸기에, 사탄의 능력을 힘입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논리는 억지였습니다.  


막3: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즉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을 심판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예컨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불살라버리든지, 아니면 땅이 갈라지게 해서 그들을 삼켜버리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그릇된 생각을 논리적으로 깨우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과 자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대답은 분명하게 No입니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사탄이 대적하는 것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막3: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막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는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스스로 분쟁하면 설 수 없습니다. 나라도 설 수 없고, 집도 설 수 없습니다. 분쟁하면 망합니다. 국가도 망하고, 가정도 망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보편 타당한 진리입니다.


막3: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이것은 24절과 25절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거슬러 일어나지,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지는 않습니다. 사탄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기 스스로 망하는 짓을 할 리가 만무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유대교를 대표해서, 예수님은 사탄을 힘입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전혀 타당성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모순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사탄의 종으로 몰아세우면서, 예수님을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인 것처럼 여겨지게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수님을 사탄의 종이나, 종교 사기꾼으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12:30을 보면,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기는 서기관들과 매일반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요20:28에서 도마가 했던 고백입니다. 나도 같은 믿음으로, 같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셋째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신 예수님(27~30절).


막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자명한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그의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세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결박하려면, 그 사람보다도 훨씬 더 강해야만 합니다.

이 비유에서 강한 자는 사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사탄의 나라를 뜻합니다. 그러면 그의 세간은 무엇입니까? 사탄은 영적 존재이기에, 물질적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탄의 세간은 그에 매여 종노릇을 하는 영혼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강한 자를 결박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여기서 사탄의 집을 강탈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으시며, 사탄에 매여서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의 삼분의 일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 천사들이 타락해서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사탄은 본시 천사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사탄보다 더 높고, 더 강한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결론은 자명합니다.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하십니다. 사탄보다 더 강한 분은 오직 한 분, 곧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또 다시 드러내셨습니다.


막3: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도 사하심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도 사하심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모든 모독하는 일도 사하심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독은 하나님의 신성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행26:11을 보면, 바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하심을 얻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눅23:34을 보면, 그와 같은 죄도 사하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막3: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여기에서 예수님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 곧 영원한 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원한 죄에 빠집니까?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한 죄에 빠집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성령을 모독한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방언으로 기도한답시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금하면,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까? 치유의 이적은 사도 시대로 끝났다고 말하면,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막3: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여기에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막1:10을 보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막1:12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로 가셨습니다. 또한 눅4:18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도 전하시고, 능력도 행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행하심도,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능력도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을 더럽고 악한 영이라고 말하면서 성령님을 모독했습니다.

물론 바울도 한 때는 성령님을 모독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딤전1:13 말씀과 같이, 그는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그와 같이 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사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를,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말하다”라는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충분한 증거를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성령님을 모독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 고아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일3:10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이든지 마귀의 자녀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속하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에 속합니다. 그 외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는 명백하며, 충분합니다. 또한 그 증거는 압도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갈3:26 말씀과 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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