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막5:1~20)
오늘 본문에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에게 들린 귀신은 자기의 이름을 “군대”라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많은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어서,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서 더러운 귀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쫓으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신이 온전하여 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때로부터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이 그에게 행하신 큰 일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크고도 놀라운 일들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귀신 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1~5절).
막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막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예수님과 그의 일행이 탄 배들은 해가 질 무렵에 가버나움을 떠났습니다. 바다 건너편으로 가던 도중에, 그들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거라사인의 지방, 곧 거라사 사람들이 살던 지방에 이르게 된 것은 아마도 그 다음날 동틀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는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지는 돼지들이 사육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곳 이방 땅에서 다소간의 쉼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이미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기로 예정된 사람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자,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그 근처에 있는 무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신들의 본질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귀신들은 언제나 더럽고도 악한 짓들만 행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귀신 들린 사람의 비참한 모습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막5:3 (1)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2)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막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막5:5 (3) 밤낮 (4)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5) 늘 소리 지르며 (6)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첫째, 그는 무덤 사이에 거처했습니다. 눅8:27에 의하면, 본시 그는 그 도시, 곧 거라사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러운 귀신들에게 사로 잡혀서 도시에 살지 못하고, 더럽고도 부정한 곳인 공동묘지에 거주했습니다.
둘째, 그는 통제불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 번 그의 발에 고랑, 곧 차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이나 몸에는 쇠사슬을 매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의 영향으로,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양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비정상적이고도 초인적인 힘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매번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너무도 위험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셋째, 그에게는 밤과 낮의 구분이 따로 없었습니다. 귀신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잠을 잔다거나 쉬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들은 밤낮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며 못살게 굴었습니다.
넷째, 그는 불안정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무덤 사이를 왔다갔다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을 들락날락했습니다. 또한 눅8:29 말씀처럼, 때때로 그는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잠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다섯째, 그는 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그 사람의 발성기관을 이용해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따라서 그 소리는 분명 듣기에 오싹할 정도로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여섯째, 그는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마8:28에 의하면, 그는 몹시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신 들린 사람은 자기를 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쳤습니다.
일곱째, 그는 전혀 수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눅8:27에 의하면, 그는 오래 옷을 입지 아니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나 벌거벗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귀신 들린 사람은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요8:44 말씀과 같이, 마귀는 살인자입니다. 또한 계9:11 말씀과 같이, 마귀는 아바돈이요 아볼루온입니다. 이는 파괴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마귀의 사자인 귀신들도 역시 살인자요 파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서, 자신들을 붉은 악마라고 하면서 응원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고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오 주여!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대한민국의 모든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게 하옵소서. 아멘.
둘째로, 귀신을 내쫓으신 예수님의 권세입니다(6~13절).
막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막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귀신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평소와 같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해칠 목적으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귀신들은 멀리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본시 귀신들은 하늘 나라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제2위이신 예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에게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두려움에 찬 소리였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하늘에서 내쫓으신 분도 예수님이셨고, 장차 그들을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분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귀신 들린 사람의 입을 이용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 가운데 하나가 대표적으로 말했습니다. 먼저 그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본시 그들은 천국에서 예수님을 예배하며 섬기던 천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2:19 말씀을 보면,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이십니다. 그러기에 귀신들은 장차 예수님이 그들을 결박해서 영원한 불못으로 던지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눅8:31 말씀과 같이, 그들은 언제라도 예수님에 의해서 무저갱으로 던져질 수 있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무저갱(無底坑)은 귀신들을 가두어두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 곳은 말 그대로 밑바닥이 아주 없는 구렁텅이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 빠지면, 계속해서 밑으로 떨어져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귀신들은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예수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물론 귀신들은 자기들이 종국에 가서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초림의 때이지, 재림의 때는 아니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은 자기들이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8:29 말씀과 같이, 귀신들은 때가 이르기도 전에 예수님이 자기들을 괴롭히러 그 곳으로 오셨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막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막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은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다스리시기에,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기에,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의 세계를 다스리시기에, 귀신들을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에게 간청하기를,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까 자기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이름이 군대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군대”는 본시 로마시대 6,000명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들은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들에게 나누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의 수가 적어도 이천은 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 귀신의 이름을 일부러 물어보셨습니까? 이는 예수님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귀신들의 수가 많더라도,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막5: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막5: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막5: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예수님은 이미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올 것을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귀신들은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그들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의 명을 감히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 사람에게서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무저갱으로 빠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곳에서는 악하고 더러운 짓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 지방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지방은 이방 땅이어서, 그들이 활동하기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은 예수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자기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예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막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만일 이 때 예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면, 더러운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올 수도 없었고, 또한 돼지들에게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영의 세계를 온전히 다스리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들의 제안을 허락하셨을까? 차라리 그들을 무저갱에 보내버리시면, 그만큼 귀신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좋을 텐데. 물론 예수님은 그 즉시 그들을 무저갱으로 보내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흔히들 선과 악이 우리 속에서 서로 싸우듯이, 하나님과 사탄도 서로 싸우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탄이 하나님을 이기는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도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언제나 절대주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그의 뜻 가운데 사탄과 그의 사자들인 귀신들을 사용하실 따름입니다. 그래서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사탄과 귀신들이 계속해서 활동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예컨대 욥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게 하셨습니다. 눅22:31~32에서, 예수님은 사탄에게 베드로를 키질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고후12:7을 보면, 바울에게 있던 가시도 사탄의 사자 곧 귀신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그에게 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때로는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탄과 귀신들을 이용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귀신들의 제안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서,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거의 이천 마리가 되는 돼지들이 갑자기 산비탈을 내리달렸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 있었던 기괴한 현상들이 귀신 들린 돼지들에게 고스란히 옮겨진 것입니다.
귀신 들린 돼지들은 전부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돼지들은 어느 정도 헤엄을 칩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모조리 바다에서 몰사한 것은 귀신들이 그것들을 전부 죽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선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확실하게 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귀신들이 아주 악하고 파괴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 많은 귀신들을 순식간에 내쫓으신 예수님의 권세도 알 수 있습니다.
요일3:8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또한 요10:10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을 모두 내쫓으시고,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셋째로, 귀신 들렸던 사람의 변화된 삶입니다(14~20절).
막5: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막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돼지를 치던 자들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돼지들이 바다에 빠져서 전부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죽은 돼지들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그 많은 돼지들을 건져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얼른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신속하게 그 충격적인 일을 성안에 사는 읍내 사람들과 성밖에 있는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다 알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들은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았던 자가 옷을 입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던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졌습니다. 아무도 제어할 힘이 없던 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의 몸을 해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귀신 들렸던 자를 두려워할 이유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대상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을 다스리시는 것을 보면서, 거라사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신성이 그들을 몹시도 두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막5: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막5: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그 곳에서 돼지를 치던 자들과,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던 자에게 행하신 일과 또한 돼지들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는 거라사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소상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때 거라사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해야 마땅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이와 같이 말해야만 했습니다. “오 주여, 우리도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함께 우리 마을로 들어가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도를 자세하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마을에 들어오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흔히들 놀라운 이적을 보면, 저절로 믿음이 생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삼년 동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들을 무수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삼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했습니다.
거라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군대나 되는 귀신들을 다 내쫓으시고, 그들에게 사로잡힌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확실한 이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바랐습니다.
큰 돌멩이 아래에 숨어사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돌멩이를 들치면, 벌레들은 구멍 속으로 쏜살같이 기어 들어갑니다.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또한 이방 사람들인 거라사인들도 빛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막5: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막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들이 간구한 대로, 예수님은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그의 본 동네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두 번 다시 거라사인의 지방을 찾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배에 오르실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사람들이 오기 전에, 분명 그는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그를 그의 옛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신 것과, 또한 예수님이 그에게 행하신 큰 일을 그의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라사인의 지방은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그 곳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그 곳을 떠났다면, 그 곳에는 예수님의 증인이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 들렸던 사람의 간구를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그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보내셨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한 증인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였습니다.
물론 귀신 들렸던 사람이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가 신앙의 경륜을 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증인으로 보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즉시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막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여, 나를 보내지 마소서. 사람들은 내가 군대 귀신 들렸던 것을 다 아나이다. 그래서 내가 가까이 가면, 그들은 다 나를 피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참 믿음에는 언제나 순종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는 먼저 자기 가족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예수님이 그에게 행하신 큰 일을 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데가볼리에도 전파했습니다.
데가볼리는 “열 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부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들이었습니다. 거라사도 데가볼리에 속합니다. 귀신 들렸던 자는 데가볼리의 여러 도시들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이 그에게 행하신 큰 일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막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막8: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예수님이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습니다. 그 곳은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 가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데가볼리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았겠습니까?
바로 귀신 들렸던 사람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데가볼리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데가볼리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삼으셔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심읍시다. 물을 줍시다.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하나님은 내게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안겨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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