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 (막5:21~34)
엡2:4 말씀처럼,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들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의 거센 풍랑을 잔잔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도 살리셨습니다.
이와 같은 능력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그의 능력만으로 그가 하나님이심을 보이려 하셨다면, 예수님은 얼마든지 좀더 쉬운 방법들을 이용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 앞에서, 새처럼 한번 멋지게 공중을 날라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갈릴리 바다 근처에 있는 산을 옮겨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혀 버리는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말씀으로 소나 양을 창조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내쫓으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죽은 자들을 살리심으로 그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의 능력과 함께 그의 풍성하신 긍휼을 나타내시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21절).
막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그의 본 동네 가버나움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바다 맞은편에 있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다시금 바다 건너편에 있는 그의 본 동네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예수님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막3:9 말씀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 밀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막3:20 말씀처럼, 그들은 예수님에게 식사할 겨를조차도 주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또한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아주시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 때에 모여든 큰 무리 가운데서, 오늘 본문은 두 사람을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야이로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무명이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병들어 죽어 가는 열두 살 된 딸이 있었었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왔습니다. 야이로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가진 것을 다 허비했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기 때문에, 회당의 제반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혈루증을 앓았기 때문에, 회당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높은 위치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낮은 위치에서 수치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야이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몰래 예수님의 뒤로 왔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자기 딸 위에 손을 얹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 자기의 손을 대고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조금도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그들 두 사람을 똑같이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똑같이 대하시면서, 그들에게 똑같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막10:13 이하에 있는 말씀을 보면, 베레아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안으시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남자이든지 여자이든지, 어른이든지 아이이든지, 지위가 높든지 지위가 낮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누구라도 다 만나주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 모두도 기꺼이 만나주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22~24절).
막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막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그 당시의 유대교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몹시도 미워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이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 날 그 곳에서 큰 무리 가운데 섞여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바닷가에 그의 모습을 드러내시자,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사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 곳으로 왔다는 자체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너무나도 절박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발 아래 공손하게 엎드려서, 예수님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간곡하게 구했습니다.
눅8:42을 보면, 그 때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열두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곧 시집을 가서 아내가 되고, 또한 아이를 낳아서 어머니가 될 때였습니다. 꽃을 피워야 할 때에, 야이로의 딸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야이로의 외딸이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습니다. 그러니 야이로가 그 딸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그래서 시집을 갈 만큼 다 자란 딸이었지만, 오늘 본문에서 야이로는 그를 가리켜 “내 어린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야이로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예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는 예수님이 그의 집에 오셔서, 병들어 죽어 가는 그의 딸 위에 손을 얹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그의 딸이 병에서 구원을 받아 살아나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야이로의 믿음이나 그의 동기가 전적으로 순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어 가는 자기의 딸을 한번 살려보겠다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막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예수님은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큰 무리가 따라가면서,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마12:20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우리의 사정을 간곡하게 아룁시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간구를 그대로 들어주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십니다(25~34절).
막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막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며,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습니다. 이는 막3:10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짐으로써 자기들의 병을 고치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 가운데 있던 한 여자를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증이라 함은 여자가 하혈을 하는 증세를 일컫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상황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왔습니다. 혈루증의 원인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궁에 종양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는 열두 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하혈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그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더 심했을 것입니다. 레15:19 이하에 따르면, 혈루증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에 대인 모든 것이 덩달아 부정하게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 생활이나 가정 생활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접촉하는 모든 것이 다 부정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죽은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둘째, 그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의사마다 처방하는 방법이 달랐을 것입니다. 병이 중한만큼 먹는 약도 독했을 것입니다. 지켜야 하는 사항들도 까다로웠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셋째, 그는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가진 재산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넷째, 그는 아무 효험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그의 돈만 축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에게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괴로움만 더해주었습니다. 그의 병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그의 병은 도리어 더 중해졌습니다. 그 동안 그가 의사들에게서 받은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그의 재산도 그들에게 다 갖다바쳤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병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막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막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비록 그의 상태가 절망적이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한 가지 희망이 남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병을 다 고치신다는 소문을 그가 들은 것입니다. 그에게 남은 희망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리 가운데 끼어서, 예수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혈루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예수님에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물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뒤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필사적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말랐습니다. 그의 병이 순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나은 것입니다. 그는 자기 몸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확연하게 느끼고서, 이제는 자기가 완전히 나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이 다소 이기적이었다면, 여자의 믿음은 다소 미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믿음에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긍휼이 인색하신 예수님이 아니시라,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막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여자가 병 나음을 받는 순간, 예수님은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를 개별적으로 들어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능력도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에서 기록하기를,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와 개별적으로 교통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어떤 부흥사는 자기 손을 TV 화면에 비치면서, 거기에 손을 갖다대면 누구라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손 씻은 물을 마시면, 누구라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다 비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한꺼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집니다. 그 날 예수님을 에워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이 나간 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뒤로 돌이키시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정말로 모르셔서, 이러한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막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막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막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르시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하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했는지를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자가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왜 그가 두려워하여 떨었습니까? 그가 혈루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음이 알려졌기 때문입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서 두려워하여 떨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두려움이며, 거룩한 떪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의 거센 풍랑을 잔잔케 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이 군대 귀신들린 자를 온전하게 고치셨을 때, 거라사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여자도 예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알고서 두려워하여 떨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예수님의 신성 앞에서 두려워하여 떨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에게도 엎드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만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바르게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눅8:47에 의하면,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공적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막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자는 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그를 돌려보내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시기 위하여, 일부러 그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가지 말씀으로 그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를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여자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를 딸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를 “딸”이라고 부르심으로, 그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컨대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이 그에게서 귀신들을 내쫓아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은 이기적이었고, 이 여자의 믿음은 미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시며, 그들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고전15:6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을 때, 그 곳에는 오백여 형제가 함께 모였습니다. 분명 그 자리에는 야이로도, 또한 혈루증에서 나음을 받은 여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신체적인 건강을 허락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그의 사회 생활과 그의 신앙 생활도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가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웃들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회당에 들어가서,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과의 평안, 이웃과의 평안, 자신과의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열두 해 동안 앓아 왔던 혈루증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분명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십니다.
병에 걸리셨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셨습니까? 걱정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풀리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감당하지 못하실 짐은 아주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나갑시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나오면, 예수님은 우리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아뢰면, 예수님은 우리의 간구를 개별적으로 들어주십니다. 아울러 우리의 믿음이 비록 겨자씨 한 알처럼 보잘것없어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더하여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입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고통의 멍에를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풍성하신 긍휼을 본받아서, 우리도 언제나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추천 설교 > 박상훈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 (막5:35~43) (0) | 2016.04.30 |
---|---|
[스크랩]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눅17:11~19) (0) | 2016.04.30 |
[스크랩]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 (막5:1~20) (0) | 2016.04.30 |
[스크랩]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막4:35~41) (0) | 2016.04.30 |
[스크랩] 소망을 말씀하신 예수님! (막4:30~34) (0) | 2016.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