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막 6:35~44)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네 권의 복음서가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는 이적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그 한 가지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이른바 오병이어의 이적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 자신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것도 남자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이만 명은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경험한 이적이었습니다.
요6:15 말씀처럼, 이 일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아주시며, 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이방인이었던 분봉 왕 헤롯과 분봉 왕 빌립, 그리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내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땅에 오직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요18:36 말씀처럼,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세상 나라의 왕이 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다음날, 사람들은 또다시 예수님에게 몰려왔습니다. 요6:26 말씀과 같이, 다시금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으로 배부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떡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바라보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무엇인지를 밝히셨습니다. 요6:35 말씀처럼, 그들이 사모해야 할 양식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도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물질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배부르게 먹을 떡을 주지 아니하시자,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예수님에 끌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6:66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그의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대표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요6:68 말씀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사람들은 썩을 양식을 바랐지만, 그들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요6:69입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던 것입니다.
이 시간 오병이어의 이적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믿음도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썩을 양식을 위해서 살지 말고, 늘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내린 결론입니다(35~36절).
막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막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벳새다 빈 들에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중에 있는 병자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 중에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그 날 때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14:15을 보면, “저녁이 되매”라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른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 그 시간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오늘 본문에는 생략된 내용이 나옵니다. 요6:5에서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면서, 먼저 빌립에게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6:6 말씀처럼, 예수님의 질문은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6:7에서,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그 때 사도들의 돈궤에 이백 데나리온 정도가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설사 그 모든 돈을 몽땅 다 털어서 떡을 산다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빌립의 대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문제를 숙제로 남기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나아가셔서, 그들을 가르치시며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분명 빌립은 다른 제자들과 상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숙제를 풀기 위해서, 온 종일 함께 씨름했을 것입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막6:35~36 말씀으로 되돌아옵니다. 시간이 흘러서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자기들이 내린 결론을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그들은 자신들의 결론을 뒷받침할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그 곳은 빈들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둘째, 날도 저물어 감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무슨 조처를 취해야만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론을 36절에서 이와 같이 밝혔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무리를 그 곳에서 해산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기에, 각자가 흩어져서 주변에 있는 작은 촌이나 그보다 좀더 큰 마을로 찾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인근의 벳새다나, 또는 요단 강을 건너 가버나움이나 고라신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각자가 찾아간 촌이나 마을에서, 사람들은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 곳에서 잠잘 처소를 마련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온종일 씨름해서 얻어낸 결론이었습니다. 우리처럼 그들도 어지간히 무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에게 풀어보라고 주신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 때 제자들이 생각해낸 답변은 고작 그 주변에 두루 위치해 있는 촌과 마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대하신 대답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에게서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이 모든 사람들을 먹이실 수 있으십니다.” 이와 같은 대답이 나와야 마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은 에벤에셀로 나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나와 지금도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이레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밝히신 정답입니다(37~40절).
막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제자들은 숙제를 잘못 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답을 밝히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그들 스스로가 무엇을 사 먹게 하자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답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그의 제자들에게 놀라운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신 대로, 그들도 똑같이 권능을 행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례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같은 권능을 주신다면, 그들도 얼마든지 먹을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이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물론 이 말은 예수님에게 어떤 의사를 물어보기 위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들에게 이백 데나리온 정도의 돈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20:2 말씀과 같이, 품꾼 한 사람이 하루 일해서 받는 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사 그들이 그 돈을 몽땅 다 사용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점은 여전히 남을 것입니다.
예컨대 그 많은 양의 떡을 어디 가서 한꺼번에 다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샀다 하더라도, 누가 또한 어떻게 벳새다 빈 들까지 운반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 뻔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들 앞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한하신 권능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막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가서 보라.”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와 같이 물으시고, 또한 이와 같이 명하신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먼저 번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들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알아본 결과,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요6:8~9에서 밝히듯이, 이는 안드레가 한 아이에게서 찾은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먹을 음식이었기에, 분명 그 양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떡의 크기는 초코파이 정도였을 것입니다. 물고기는 송사리 만한 것을 소금에 절여서 말렸을 것입니다. 샌드위치처럼 떡 사이에 물고기를 넣어서 몇 입 베어먹으면 끝나버립니다.
그러니 이것이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이제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도 없었고,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바라시는 바였습니다. 내가 할 수도 없고, 내가 가진 것도 없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뢰합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님의 놀라우신 권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막6: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막6: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마14:13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모든 사람을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요6:4 말씀처럼, 때는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까 4월경, 곧 봄철이었습니다. 늦은 비가 흠뻑 내리고 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요6:10 말씀처럼, 이 때는 푸른 잔디가 많았습니다. 이 때가 지나가고 나면, 강한 햇볕에 잔디는 다 말라버리고 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떼로 앉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았습니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눅9:14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이해할 때, 오십 명씩 백 떼로 나누어서 앉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50 x 100 = 5,000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44절 말씀처럼, 그 때 그 자리에 모인 수가 오천 명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수는 남자만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명을 따라서,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을 푸른 잔디 위에 떼를 지어 앉게 했습니다. 혼돈이 질서로 바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먹을 음식만 그들에게 제공되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의 순종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할 수도 없었고, 그들은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명하실 때, 그들은 묻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도 깊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순종하면, 나는 예수님의 권능을 봅니다. 나의 믿음도 성장합니다. 그러나 내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나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지 못합니다. 나의 믿음도 자라지를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14:21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늘 말씀에 순종합시다. 말씀하신 대로 삽시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날로 나의 믿음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해결입니다(41~44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숙제를 잘못 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정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둔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실제로 그들 앞에서 문제를 풀어서 보여주셨습니다.
막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음식물에 복을 내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는 마술사가 수리 수리 마하수리라고 말하듯이, 예수님이 음식물에 주문을 거신 것도 아닙니다.
약1:17 말씀처럼,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또한 딤전4:4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자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신 후에, 오늘 본문 말씀대로 떡을 떼셨습니다. 식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어른이 숟가락을 들면, 그 때부터 온 가족의 식사가 시작됩니다. 유대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평범한 광경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어”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주다”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 때 예수님의 이적, 곧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옛날 유대인들은 바구니를 들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바구니마다 떡과 물고기를 가득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부지런히 날라서, 사람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들의 바구니가 비면, 그들은 예수님에게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또다시 예수님의 손에서 떡과 물고기가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금 떡과 물고기로 그들의 빈 바구니를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된 것입니다.
물론 이 때 나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천사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떡과 물고기가 위에서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창조의 역사는 그저 예수님의 손에서 조용하게 진행되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막6:42 다 배불리 먹고
막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6: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너무나도 시원하게 또한 멋지게 해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문제를 해결하신 후에 되어진 결말을 세 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42절). 빌립이 제안한 것처럼, 사람들이 그저 조금씩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6:11 말씀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의 원대로 다 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다들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예수님이 창조하신 떡을 먹었습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만든 봉빵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고 신선한 떡이었습니다. 타락한 세상에 전연 오염되지 않은 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만족감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둘째,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습니다(43절). 요6:12에서 예수님이 명하신 대로, 제자들은 남은 음식을 다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거둔 것은 정확하게 각자의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는 풍성하지만, 예수님의 섭리는 세밀하고도 정확합니다. 예수님은 전혀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남지 않도록 떡과 물고기를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습니다(44절). 마14:21 말씀처럼, 그 곳에는 여자와 어린이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녀 어른들의 수만 일만 명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합치면 이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추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려주십니다. 일반 은총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 먹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상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문제가 생겼습니까?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풀어보라고 주신 숙제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믿음을 키워주시려고, 나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정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꾀를 쓴다고 해서 숙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나를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정답은 언제나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병이어처럼 보잘것없지만, 나를 예수님께 드립시다. 예수님은 나를 귀하게 쓰십니다.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나타내십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삶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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