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막6:45~52)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것도 남자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를 합하면, 그 수는 이만 명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서 임금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다음날, 사람들은 또다시 예수님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으로 다시금 배부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떡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떡을 사모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6:22~59을 보면, 그 내용이 길게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신이 배부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영혼이 영원히 주리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배불리 먹을 떡을 주지 아니하시자,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예수님에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려는 의향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열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표적으로 예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똑같이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제자들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을 이해하면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차이가 생겼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이 떡을 떼시던 일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이 남들과 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그들을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살피시는가를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45~46절).
막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셨습니다. 왜 이 때 예수님이 무리를 해산시키셨는지 오늘 본문은 설명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요6:15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18:36에서 예수님이 밝히신 것처럼,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세상 나라의 임금이 되시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마귀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이 때도 마귀는 무리를 이용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를 해산시키심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다시금 본문 말씀을 봅니다.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즉시”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긴급했음을 뜻합니다. “제자들을 재촉하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기만을 바랐습니다. 이제는 그 분위기가 무르익은 듯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옹립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무리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아니하도록, 그들을 무리에게서 떼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보내시는 동안,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왔던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바다 건너편에 있는 벳새다를 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어찌하여”라고 묻지도 않았고, 또한 “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예”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겠나이다”라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참 제자의 모습이며, 이것이 언제나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무리와 작별하셨습니다. 이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해산시키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세가 그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따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기도하셨을까요?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이른바 “대제사장의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때도 예수님은 먼저 그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먼저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이 때도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사람들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로, 그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고,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나를 동정하십니다. 그래서 롬8:34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지금도 나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애 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나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친히 나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나를 찾아오십니다(47~48절).
막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벳새다 율리아스를 출발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갈릴리 바다 서편에 있는 또 다른 벳새다였습니다. 서로 간에 그다지 멀지 않았습니다. 해변을 따라서 가면, 금방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이 탄 배가 해변 가까이 있지를 않았습니다. 바다 가운데 있었습니다. 마14:24에 의하면, 이 때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본시 그들이 예상했던 항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보면, “바람이 거스르므로”라고 말씀했습니다. 역풍이 불었던 것입니다. 요6:18을 보면, 그 때의 역풍은 큰 바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파도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거센 역풍과 파도 때문에, 그들이 탄 배가 바다 가운데로 밀려났던 것입니다.
바람과 물결로 인하여 제자들이 힘들어하는 동안, 예수님은 홀로 뭍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그들을 보살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거센 바람과 흉흉한 물결이라 해도, 결코 그들을 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바람이 거스르므로 돛을 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돛을 내리고 노를 저었습니다. 큰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 때문에, 노를 젓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곳으로 가기 위하여, 계속해서 힘겹게 노를 저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은 그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높은 산에 계셨고 제자들은 낮은 바다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보셨던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는 밤 사경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 당시 로마인들은 해가 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의 열두 시간을 각기 세 시간씩, 모두 네 경(更)으로 나누었습니다.
일경은 저녁 6시부터 저녁 9시까지입니다. 이경은 저녁 9시부터 자정까지입니다. 삼경은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경은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까지입니다. 그러니까 때는 밤 사경, 곧 새벽 3시에서 새벽 6시 사이로 어두울 때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탄 배는 육지에서 이미 수 리나 떨어져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의 육안으로 그들을 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라도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139:12 말씀처럼, 예수님에게는 낮과 밤이 같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둠이, 또한 거리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어디에 있으며,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는지 다 보고 계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얘들아,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서, 어두운 바다 위를 헤매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에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아니하시고, 신속하게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8절 끝 부분을 보면,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마치 그 곳을 곧 스쳐 지나쳐가려는 듯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신속하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셨던 것입니다.
바다는 예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바다를 길 삼아서, 그 위로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으실 때마다, 분명 바람도 그치고 물결도 잔잔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은 조금도 젖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십니다. 머리카락의 수는 계속 변합니다. 새로 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나의 머리카락을 다 세어 놓고 계십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나를 환하게 아십니다.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힘들어 할 때, 예수님은 내가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또한 신속하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나를 풍랑 가운데서 구원하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십니다(49~52절).
막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지금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으시는 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 바다 위를 걸어서 자기들을 찾아오시리라고는 전연 예상하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바다 위를 걷지 못합니다. 사람은 그 몸의 무게 때문에, 바다 위에 서면 절로 빠지고 맙니다. 따라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몸이 없는 유령이 바다 위를 걸어서 자기들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14:26 말씀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소리를 지른 것은 무서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령이 그들에게 다가와서, 자기들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령을 무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막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열두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 모두 유령이라고 생각하면서 놀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서움을 느끼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무서움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둠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은 분명히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풍랑으로 인해서 겪어야 했던 육체의 고통도, 또한 유령이라 여기면서 당해야 했던 심적 고통도 순식간에 눈 녹듯 했을 것입니다.
풍랑 때문에 고통을 당하십니까? 히13:5 말씀처럼, 예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도 아니하시며, 떠나지도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신속히 나를 찾아오셔서, 곧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나를 향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오늘 본문에는 생략된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바다 위로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면서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에 관한 내용이 생략되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마가가 그의 수행원이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 내용을 토대로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령님도 마가를 감동하셔서, 베드로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지 않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도 말고, 풍랑을 바라보지도 맙시다. 그러면 바다에 빠집니다.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그리하면 바다 위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바다 위로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막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고통을 당할 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셔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이적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힘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보신 것도,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으신 것도, 예수님이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제자들에게 오신 것도, 또한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친 것도 다 이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요6:2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그들이 탄 배가 곧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육지에서 수 리나 떨어져 있던 배가 순간적으로 육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역시 이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같은 이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 51절 하반부의 말씀처럼, 그들은 마음에 심히 놀랐습니다. 앞 절에서 그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서, 유령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물론 그 때는 무서움을 느끼면서, 부정적으로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 때 놀란 것은 헬라어로 다른 단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깊은 경외심을 느끼면서, 긍정적으로 놀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14:33을 보면, 그들은 이 때 처음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했습니다.
막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을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풍랑도 잔잔케 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직전에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태한 일이 새로 생기면, 그들은 또다시 두려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그 숱한 이적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태껏 단 한번도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분명하게 예수님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경배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을 달라지게 했습니까? 우선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둔한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누구이신 줄 그들이 깨닫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둔한 마음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들이 힘들어 할 때는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시며,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돌보심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들을 찾아오시며,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풍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들이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깨달음이 그들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깨달음이 그들을 남들과 다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랑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늘 나를 보살피시기 때문에, 내 마음도 늘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요16:33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날마다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담대하게 바다 위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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