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노래! (눅2:8~14)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미5:2 말씀에 의하면,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가이사 아구스도는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또한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호적하는 기일을 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헤롯 왕은 각 사람이 자신의 고향에 가서 호적하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와 총독 구레뇨와 헤롯 왕을 사용하셔서, 요셉과 마리아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들 모두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 나그네를 위한 여관에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다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딸린 마구간을 임시 거처로 정했습니다.
그들이 아직도 마구간에 거할 때,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찼습니다.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강보로 쌌습니다. 그리고는 아기 예수님을 구유, 곧 짐승의 꼴을 담는 그릇에 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기 예수님은 낮고 천한 곳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요셉과 마리아를 제외하고서는, 그 때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전했습니다. 곧이어 그 천사와 함께 수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천사들의 노래입니다.
우리도 성탄을 맞이하면서,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큰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천사의 출현입니다(8~10절).
눅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그 지역에.” 이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땅 베들레헴 지역을 가리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시골 동네였습니다. 베들레헴 인근에 있는 어느 들에서,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낮이면 양들은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유롭게 풀을 뜯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양들은 목자들이 돌이나 나무 가지를 사용해서 임시로 만든 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목자들은 교대로 깨어서, 들짐승이나 도적이 양 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지킵니다.
그 때 잠을 자는 목자는 우리의 입구에 드러눕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우리 밖으로 나가려는 양이 있으면, 그 양은 필히 목자를 밟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목자는 자동적으로 깨어서, 우리 밖으로 나가려는 양을 붙들어 다시금 우리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요10:7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10:11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말하자면 목자들이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문에 드러눕는 것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우리 안으로 들어온 양들을 결코 우리 밖으로 내보내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양들은 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로 쓰여졌습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맨 처음 알린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또한 천사는 목자들에게 희생의 제물이 되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으로 알린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눅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여기에 나오는 주의 사자는 10절에서 그 신분이 밝혀집니다. 그는 천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에서는 이번에 세 번째로 천사가 나타난 셈입니다. 맨 먼저 사가랴에게, 그 다음으로 마리아에게, 그리고 이제 세 번째로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때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도 역시 가브리엘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천사가 목자들 곁에 섰습니다. 물론 사전에 어떤 예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때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목자들은 그 천사를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눅1:16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여기서의 주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에는 “주”라는 칭호가 30번 이상 사용되었는데, 이 칭호는 언제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실 때, 때때로 하나님은 빛난 영광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이 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켜서 “쉐키나”(Shekinah)라고 부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장막을 치다,” 또는 “거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이 때 목자들을 두루 비춘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쉐키나의 영광이었습니다.
이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쉐키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러자 목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사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죄인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눅1:12 말씀을 보면, 사가랴도 천사를 보고서 놀라며 무서워했습니다. 또한 눅1:30 말씀을 보면, 마리아도 천사를 보고서 무서워했습니다.
따라서 목자들이 천사를 보고서 크게 무서워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천사는 목자들에게 나타났을까요? 눅2:38 말씀처럼,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쓰여질 양들을 치면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예루살렘을 속량하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그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렸을 때, 그들은 이것저것 따져 묻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사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천사가 한 말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런 후에 눅2:20 말씀이 밝히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가랴도, 마리아도, 목자들도 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사를 보내시며, 그들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도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을 받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천사가 전한 소식입니다(10~12절).
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목자들은 천사를 보고서,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 앞에는 여러 개의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먼저 그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슬픔의 소식이 아니라,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것도 작은 기쁨이 아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목자들은 무서워할 이유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러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란 과연 어떤 내용입니까?
눅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의 “오늘”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난 바로 그 날을 가리킵니다. 또한 눅2:4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다윗의 동네”는 유대 베들레헴을 가리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바로 그 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었습니까? 천사는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하여, 그 날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에게 세 가지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구주라고 불렀습니다.
“구주”(救主, Savior)는 구원자, 곧 구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무엇에서 구원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은 모든 문제, 모든 질병, 모든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온 백성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합니다. 그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마1:21에서 천사가 요셉에게 밝힌 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삼하23:1 말씀을 보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나옵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들을 높였습니다.
눅1:33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히3:1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아울러 히1:2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왕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시고,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주(主)라고 불렀습니다.
눅1:16 말씀과 같이, 여기에서의 “주”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예수님은 주, 곧 하나님이십니다. 사9:6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분명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주, 곧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로 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주, 곧 하나님이십니다. 롬10:9 말씀과 같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주, 곧 하나님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나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구주로 나셨습니다. 또한 나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로 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여기에 표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징표라는 뜻입니다. 천사는 자기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목자들에게 하나의 징표를 주었습니다. 그것은 구주 곧 그리스도 주이신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라고 해서 찬란한 옷을 입은 채로 태어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태어나시자 말자, 다른 아기들처럼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서 강보에 싸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아기가 강보에 싸인 것은 징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기들도 똑같이 강보에 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곧 이어서 구체적인 징표를 목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갓난아기가 구유에 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는 목자들이 그들의 구주 곧 그리스도 주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징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기의 “온 백성”에는 우리 모두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 곧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에 끌려 다니면서, 고통스러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나를 죄 가운데서, 또한 삶의 모든 고통에서 이미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크게 즐거워하며, 크게 감사합시다. 이것이 바로 성탄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셋째로, 천사들의 노래입니다(13~14절).
눅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天軍)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천군은 하늘의 군대, 곧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내려왔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그 수가 많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적으면 수십 명, 많으면 수천 명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때 천사들은 “홀연히,” 다시 말해서 순식간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목자들은 단 한 명의 천사로 인해서도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하물며 수많은 천사들이 홀연히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 분명히 목자들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때 수많은 천군이 내려왔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여준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여기서 “그 천사들”이라고 잘못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그 천사, 곧 단수형입니다.
아무튼 이 때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환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예수님을 경배해왔습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늘에서 누리시던 모든 영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사람의 타락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그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곧이어 찬송의 내용이 나옵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들의 노래는 두 절로 되어있습니다. 첫 절과 둘째 절은 서로 대칭을 이룹니다. “지극히 높은 곳”과 “땅,” “하나님”과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그리고 “영광”과 “평화,” 이와 같이 첫 절과 둘째 절은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첫 절에서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계4:9이나 계5:13을 보면, 천사들의 본분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때도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읽어보면, 하늘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도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고전10:31 말씀과 같이,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또한 장차 하늘 나라에서도,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절에서 천사들은 이 땅에 평화가 있음을 노래했습니다. 여기서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나 심령의 고요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때의 평화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 곧 구원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평화를 가리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은 자신을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평화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단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엡1:5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예정되어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이 평화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주셨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의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큰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합시다. 우리 모두 큰 기쁨과 큰 즐거움과 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분명 하나님의 영광은 이 곳에 모인 우리 모두를 두루 비출 것입니다. 또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은 이 곳에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 평화, 곧 하나님과의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파도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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