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를 배격하신 예수님! (막7:14~23)
예수님이 게네사렛 땅에 가셨을 때입니다. 그 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서는,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모든 병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교는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의하면,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 했습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씻지 아니한 손은 음식을 부정하게 만들고, 또한 부정해진 음식은 사람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이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런 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의 안은 깨끗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것들이 자기들의 외부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그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부정한 것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음식도 정한 음식만 가려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깨끗함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렘17:9 말씀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상16:7 말씀처럼,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밖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안이 문제임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14~16절).
막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게네사렛 땅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던 무리는 잠시 뒤로 물러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및 서기관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을 들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어 그들을 반박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그들과의 대화가 끝났습니다.
아마도 이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분을 이기지 못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은 뒤로 물러가 있던 무리를 다시금 예수님 앞으로 불러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새기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은 지금 중요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막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막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 본문 17절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였습니다. 그러면 비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비유란 어떤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와 비슷한 다른 사실을 예로 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을 때입니다. 그 때 나단 선지자가 그를 찾아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한 성읍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부자에게 어떤 행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가난한 자의 양 새끼를 빼앗아 잡았습니다.”
이 때 나단 선지자가 말한 것이 바로 비유였습니다. 그는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행한 짓을 예로 들어서, 실제로는 다윗이 우리아에게 행한 짓을 가리켰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실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와 비슷한 다른 사실을 예로 드는 것을 비유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진리를 표현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순한 일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표면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육체적으로 또는 생리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우리를 더럽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 몸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위로든지 아래로든지 다시 나오면, 그것은 우리 몸을 더럽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비유를 피상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슨 의도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까? 이 비유 뒤에 감추어진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이 친히 설명해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비유를 설명하신 예수님(17~19절).
막7: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막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이제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셔서,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곳에는 무리도 없었고, 예수님을 책잡고자 엿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없었습니다. 그 곳에는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만 함께 있었을 뿐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그 비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와, 또한 그 비유 배후에 있는 영적 진리 등등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고 그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뜻은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과거에 배웠던 유대교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전통을 중시해서,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유대교를 정면으로 배격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 15장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5: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서 걸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비유는 유대교를 정면으로 배격하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화가 난 줄을 아시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더더욱 분명하게 유대교를 배격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밭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하나님은 곡식을 심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심지 아니하신 가라지는 누가 심었습니까? 마13:39 말씀처럼, 가라지는 마귀가 심었습니다. 추수 때 가라지는 추수꾼인 천사들에 의해서 다 뽑혀져 불사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주축을 이루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곡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가라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지 아니하셨습니다. 마귀가 그들을 심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버리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주어질 은혜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맹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도 맹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 곧 지옥에 빠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23:15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이1:10 말씀처럼,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은 아예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사람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쓴 책도 읽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한 자라도 더 읽어야 옳을 것입니다.
마15: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마15: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 비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함을 나무라셨습니다. 사실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맹인의 인도를 받던 맹인이었습니다. 이제 마가복음으로 되돌아옵니다.
막7:18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7:19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알지 못하느냐?” 먼저 예수님은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에게 모여들었던 무리는 비유의 의미를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늘 함께 하는 제자들만큼은 그 비유의 의미를 아는 것이 마땅하다는 취지였습니다.
곧 이어서 예수님은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음식물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음식물은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실 유대교는 겉만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23:27 말씀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덤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듯이, 그들 안에는 탐욕과 방탕함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19절 끝 부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레위기 11장을 보면, 짐승과 새와 물고기 가운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다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보자기에 있는 각종 짐승들을 잡아 먹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는 속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행10:15을 보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은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롬14:20에서, 그는 모든 음식물이 다 깨끗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또한 딤전4:3~4에서도 모든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 선한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모든 음식물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말라는 율법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지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롬8:4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롬10:4 말씀처럼,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님은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따라서, 깨끗한 음식물과 속된 음식물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셨으므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음식물을 다 받아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율법을 따라서 음식을 가려먹으면,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 없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안은 깨끗한데, 그들의 밖이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러운 것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성경에도 없는 잡다한 전통들을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유대교의 주장을 단호히 물리치시며, 유대교를 정면으로 배격하셨습니다.
셋째로, 비유의 결론을 내리신 예수님(20~23절).
막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지금까지 예수님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씻지 아니한 손으로 먹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무리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무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을 구토물이나, 배설물로 여겼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더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비유의 배후에 있는 영적 진리를 다음과 같이 깨우쳐주셨습니다.
막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막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그러니까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사람에게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악한 생각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의 실례를 열두 가지로 열거하셨습니다.
악한 생각들 중 앞에 나오는 여섯 가지,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이 원문에는 복수형입니다. 아마도 이것들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반복적인 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악한 생각들 가운데 뒤에 나오는 나머지 여섯 가지, 곧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은 원문에 단수형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악한 행동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자세와 태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악한 생각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살인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미워하는 마음이 곧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상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미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간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들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더 낳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도 똑같이 부패했습니다.
막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는 비유의 총 결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는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문제가 밖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언제나 깨끗하고, 이방인들은 언제나 더럽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인들을 미워하고, 로마인들을 자기 땅에서 쫓아내기를 바랐습니다. 로마인들이 자신들을 더럽게 만든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가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움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유대교의 전통으로는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겔36:26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시면서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새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마음을 받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서 모든 악한 생각들을 떨쳐주시고, 그 대신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십니다.
성령을 따라 행합시다.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번 주간도 성령의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풍성히 맺어, 성삼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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