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습관을 기르자
고전 9:25
누구든지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사람이 변합니다. 예수의 영이 사람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5:1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우리가 새롭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김치를 담글 때 생 배추를 그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 배추를 소금물에 담가서 절입니다. 생 배추가 소금물 안에 있게 되면 절여집니다. 그래서 절인 배추가 됩니다. 그 후에 김치를 담글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우리가 변합니다. 생배추가 절인배추가 되듯이 우리의 존재가 변하고 인격이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 4:22-24에서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차이는 습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구습 즉 옛 습관을 따르는 사람이고 새 사람은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기르고 그 새로운 습관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과거 예수 믿기 전에 우리 속에 배어있던 잘못된 습관들을 끊어 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습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길러야 할 습관은 무엇일까요? 바로 절제입니다.
옛 사람의 특징은 구습 즉 믿음 이전의 옛 습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 만들어진 옛 습관, 악한 시대풍조를 따라 만들어진 옛 습관을 따라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이런 옛 습관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새로운 습관이 필요합니다. 욕망을 억누르고 악한 시대풍조를 거스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좋은 자동차는 어떤 자동차일까요? 높은 출력을 내는 좋은 엔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효율이 좋은 변속기와 높은 속도를 견디는 바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편리한 전자장치들과 품격 있는 액세서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능 좋은 제동장치인 브레이크입니다. 과속을 제어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는 필수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멋진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요? 남다른 재능, 남다른 능력, 남다른 외모 등이 있으면 남다른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제입니다. 욕망을 제어하고 인생과속을 제어할 절제는 필수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 세상에서 승리를 맛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절제하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절제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고자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절제하지 않고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의 미셸 박사 팀이 했던 소위 ‘마시멜로 실험’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 실험은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입증해 보여준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4살의 어린이 653명을 교실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시멜로를 하나씩 주고는 15분간 먹지 않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3의 아이들이 15분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답니다. 나머지 1/3의 아이들은 잘 참아서 하나를 더 선물로 받았답니다.
미셀 박사팀은 15년 뒤 이 653명의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조사를 했습니다. 절제를 잘 해서 마시멜로를 더 받았던 아이들은 대학입학 시험에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뛰어났답니다. 그 후 더 추적 조사를 해 보았더니 잘 참았던 아이들은 성공적인 중년의 삶을 살더랍니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 비만에 시달리거나 약물중독이나 사회 부적응 등으로 힘겨운 중년의 삶을 살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절제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성품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뒤따라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절제하는 습관을 길러갈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는 온전한 절제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인간의 브레이크는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브레이크가 거의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고장이 나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콜 중독, 게임중독, 도박 중독과 같은 중독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대체로 브레이크가 작동을 하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고장이 나 있습니다.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정 조절에 대해서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 절제에 한계를 드러냅니다. 브레이크에 저마다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절제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갈 5:22에서 중요한 점을 가르쳐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 가운데 마지막 아홉 번째 열매로 절제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제가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려는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가르쳐줍니다. 우선 절제하는 습관은 결코 우리 힘만으로는 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절제하는 습관을 기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 4장을 보면 주님께서 40일 금식하신 뒤에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는 돌로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입니다. 40일 금식 뒤에 얼마나 시장하셨을까요? 식욕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식욕을 절제하신 것입니다.
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인기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저 갈릴리 촌 출신인 이름 없던 청년 예수로 하여금 유명해 지고 인기를 한 몸에 받게 해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이것을 물리치셨습니다. 명예욕을 절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셋은 자기 앞에 절하여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배경도 없던 청년 예수로 하여금 권력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권력욕을 절제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절제에 성공하셨습니다. 완벽하게 브레이크를 작동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중요합니다. 이 사건 직전에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는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가시는 것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 절제에 성공하실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성령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그러셨는데 육신이 연약한 우리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절제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고자 할 때 우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우리가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려면 이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에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반복해서 습관이 되다 보니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처음 그것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그 때 멈췄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몰라서 멈출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우리가 과식하는 “사람을 돼지 같이 많이 먹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돼지는 절대로 자기 위의 80% 이상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위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해서 먹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위장을 늘려서 120%, 150%까지 먹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돼지는 자기가 어디까지 먹어야 할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멈춰야 할 때를 잘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합니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개미처럼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틀린 말입니다. 개미는 결코 과로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과로로 쓰러지고 심지어 과로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개미는 자기가 어디까지 일해야 할지를 잘 아는 것입니다. 멈춰야 할 때를 잘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절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 16: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보혜사 성령께서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인 줄 알게 하시면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중단하도록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상황을 알게 해 주십니다. 지금 무엇을 오버하고 있는지 경고해 주십니다. 그리고 멈추라고 경고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질 때 주유등이 켜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멈춰야 할 때를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성령의 경고를 잘 보고 상황을 깨닫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면서 성령이 경고해 주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2.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급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그것을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것을 멈추게 할 힘이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그로 인해서 기독교가 교리의 체계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청년시절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의 근심거리였습니다. 10대를 불량배들과 어울려 쾌락을 좇고, 도둑질도 하며 방탕하게 보냈습니다. 20대에는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한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 이단이던 마니교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삶을 청산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과거의 잘못된 습관을 끊어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32세가 되던 어느 날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쓴 [참회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려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나는 성경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펼쳐진 말씀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어거스틴은 소나기와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심을 하게 됩니다. 참회록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어거스틴은 자기 힘으로 끊어내지 못하던 옛 습관을 성령의 능력으로 끊어낼 수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읽는 순간 성령의 능력이 그를 강권적으로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그 놀라운 능력으로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향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영적인 브레이크를 작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3. 자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절제하다가도 계속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계속 절제할 텐데 새로운 욕심이 생겨나고 그 새로운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절제를 계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빌 4:11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자족할 줄을 압니다. 성령께서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마음을 주시고 또 감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계속 절제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 미국의 한 한인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로님께서 집으로 식사초대를 하셔서 방문했습니다. 크게 사업에 성공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집은 의외로 작고 허름했습니다. 타고 다니는 차도 한국산 소나타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큰 집을 사서 이사하려고 하고 좋은 차를 타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런 자족하는 마음이 절제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로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제하는 습관은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면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달리던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레이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브레이크는 하루아침에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훈련을 통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만 얻게 됩니다. 더욱 절제하는 습관을 키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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