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단 6:16-23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불신자들까지도 많이 아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구원받은 이야기입니다. 요약해 보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다리오 왕이 메대 바사라는 나라를 다스릴 때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왕 다음의 총리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고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음모를 꾸몄습니다. 30일 동안 왕 이외의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금령을 만들어 왕의 재가를 받아 반포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음모를 꾸민 자들이 다니엘을 체포하게 됐고, 왕은 어쩔 수 없이 금령대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왕이 이 사실을 확인하고 음모를 꾸민 자들을 다니엘을 대신하여 사자 굴에 던져 넣어 죽게 했습니다.
왕은 다시 조서를 내려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과거보다 더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과 도전을 줍니다.
위기 앞에 선 다니엘
다니엘은 그야말로 만사형통하고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 왕의 총애를 받아 총리까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시기하는 사람들이 판 함정에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져 죽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다니엘의 위기대처능력이 놀랍습니다. 결과적으로 위기를 잘 대처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전화위복의 더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든든히 서 있어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위기의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서서 그 위기를 잘 대처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도약과 성숙의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감당하기 힘든 고난과 실패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위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가야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선 침착했습니다.
다니엘은 위기가 닥치자 우선 침착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위기가 들이 닥쳤는데 ‘전에 하던 대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다니엘은 함정에 빠져서 체포되었습니다. 총리가 졸지에 죄수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총애하는 왕 앞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살려달라고 애원도 하지 않습니다. 담대합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결국은 이 함정에서 벗어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침착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위기 앞에서 침착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께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내셨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이 큰 위기 속에서 마음속에 새기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조선수군에게 지엄하게 강조했습니다.
“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태산처럼 무겁고 침착하게 행동하라.”
이순신 장군께서는 이 말씀 그대로 정말 태산처럼 무겁고 침착하게 위기에 대처해 나갔습니다. 조선수군들도 장군을 따라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그래서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의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위기가 닥쳤는데 가벼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태산처럼 무겁고 침착하게 행동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물령망동 정중여산’해야 합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태산처럼 무겁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 극복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위기가 닥치자 침착하게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다니엘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음모에 걸려들었습니다. 자기가 사자 굴에 던져져 죽을 만큼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왕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왕이 대적들의 음모에 속아 자기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왕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왕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선처를 부탁했을 것입니다. 왕이 다니엘을 총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풀어주든지 아니면 사자 굴에 던져 죽게 하는 것만큼은 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에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위기를 맞게 되자 기도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생각이 납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와 바사 땅 수산성에서 고국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도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에 탔다는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느 1:4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한 마디로 기도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위기를 만날 때 기도에 몰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만 하면 어떻게 하는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먼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도는 그 뒤에 해도 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먼저 보시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2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기도를 마치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술 관원으로 발탁됩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들고 왕 앞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왕이 금식하고 기도하던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며 그의 기도 제목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토록 보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기도부터 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부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 놀랍습니다. 10절을 보면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사자 굴에 던져질 판입니다. 억울하게 음모에 걸려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감사했을까요?
예수님이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고 위급한 상황에서 기도하실 때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눅 22장의 최후의 만찬 때의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그리고 19절을 보면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제자들과 작별하며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정말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셨을까요? 하나님과 함께 위기를 맞게 된 것을 감사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위기를 잘 극복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지 않으셨을까요? 나아가 위기를 통해 전화위복의 복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지 않으셨을까요?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함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위기 한 가운데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기 앞에서 다니엘처럼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기임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감사로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기에서 건지신 하나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질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자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위기 중에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게 사자 굴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사자 굴에서 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셔서 다니엘이 털끝하나 다치지 않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자 굴속의 다니엘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다니엘은 팔이 묶여 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질 때 결박당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사자들이 다니엘을 두려워합니다. 다니엘이 다가 서자 꽁무니를 빼고 있습니다. 다니엘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으려 들지 않고 다니엘을 무서워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자들이 왜 그러는 것일까요?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그것도 결박당해 있는 다니엘을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사자들이 다니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 뒤에 다리오 왕이 음모를 꾸민 자들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가 던져졌던 같은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그 결과를 2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같은 굴에서 같은 사자들이 이번에는 저들을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번에는 사자들이 저들 뒤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사자 굴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위기 한 복판에서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다음으로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뒤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높여주셨습니다. 왕이 직접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무죄를 선언하고 대신 다니엘을 모함했던 대적들을 처단했습니다. 사람들의 음모로 총리가 갑자기 죄인이 되어 모욕과 수치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니엘을 다시 높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위기 이전보다 더 높여주셨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전보다 더 높여주실 것입니다.
본문 25-27절을 보면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다리오 왕이 스스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그 조서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다리오 왕이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힘써 전도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기 이후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전도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게 되면 우리로 인해서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전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또 하나 2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축복하시는데 다리오 왕 이후 바사가 다스리는 시기 특히 고레스 왕의 통치 때까지도 관직을 유지하며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했던 사실을 고레스 왕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라가 바뀌었지만 계속 관직을 유지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전화위복입니다.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큰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를 믿음으로 잘 극복한 사람은 위기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지만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잘 극복해야 합니다. 우선 믿음으로 침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위기가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위기 이후 전화위복의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위기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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