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6-8
오늘은 교회력으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늘이 주님께서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든 인파의 환영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을 ‘수난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본격적인 수난의 길로 나아가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난주일에 우리의 시선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주님의 고난의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요 19:17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주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주님께서 달리실 십자가를 말합니다. 다른 죄수들과 같이 주님께서도 당신이 달리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기 때문에 자기의 십자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당시 주님께서는 다른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물론 이 때 다른 두 강도들은 자기들이 달리게 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습니다. 주님께서도 저들과 마찬가지로 당신께서 달리시게 될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지신 자기의 십자가와 두 강도들이 진 자기의 십자가는 분명히 다릅니다. 두 강도들이 진 자기의 십자가는 자기들의 죄 때문에 반드시 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죄 없는 분이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얼마든지 지지 않을 수 있는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십자가였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수난주일에 주님께서 지신 자기의 십자가를 묵상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내가 져야 할 나의 십자가를 자기의 십자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분이 내 죄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서 저 험하고 흉악한 십자가를 자기의 십자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지신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은혜이고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수난주일은 물론이고 고난주간 한 주간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이 수난주일에 그리고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 16:24에 보면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자가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앞장서서 가시면서 제자들도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한다면 우리는 다만 구경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고가야 할 자기의 십자가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려고 할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우리 자신의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딤후 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져야할 우리 자신의 십자가는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 한 복판에서 복음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일찍이 주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 15:18-19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하느니라” 복음의 사람들을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사람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을 받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고난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적극적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1. 복음을 믿으며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이 전해 질 때는 항상 박해가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처음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그 박해 때문에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작년에 로마를 성지순례한 일이 있었습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였습니다. 로마를 순례하면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로마에는 두 도시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지상의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의 도시입니다. 지상의 도시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화려한 로마입니다. 이에 비해 지하의 도시란 땅 밑에 존재하고 있는 지하무덤인 카타콤입니다.
원래 카타콤은 로마의 지하무덤이었습니다. 로마에 살던 사람들이 죽으면 묻혔던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다 복음이 로마에 전파되면서 달라졌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피해 이 지하 무덤 속으로 숨어든 것입니다. 약 200여 년 동안 이어진 기나긴 박해 동안 기독교인들은 이 지하무덤 안에 살면서 이 지하무덤을 하나의 거대한 지하 도시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카타콤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이 카타콤에서 살다가 또 이 카타콤에 묻힌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상의 로마를 포기하고 지하의 로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입니다. 저들은 복음을 믿으며 말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카타콤을 순례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모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은 이런 박해의 시대가 아닙니다. 전 국민의 20%가 넘는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서울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시대입니다. 기독교가 강자라고 경계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이런 시대에도 복음을 믿는 그 자체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아직도 복음의 불모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 가정들이 그런 곳입니다. 그리고 복음에 적대적인 회사, 학교, 관공서, 지역 공동체 등이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오늘도 복음을 믿는 그 자체가 고난입니다.
얼마 전 새가족 한 분이 오셨습니다. 이분은 저와 말씀을 나누면서 계속 우시는 것입니다. 20년 만에 다시 교회를 나오게 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신 가정에 시집을 갔는데 시어머니가 너무 완강하게 반대를 해서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결혼하면 함께 교회 다니겠다는 약속과 달리 시어머니 편에 서서 자기를 핍박하더랍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가 노환으로 몸져 누워계시고 자기가 어머니 수발을 들고 있답니다. 이제야 용기를 내서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20년 만에 다시 교회 나와 예배드리게 됨에 감격해서 울고, 그동안 박해에 굴복하여 교회 나오지 못해 하나님께 죄송해서 운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믿는 일에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그 십자가 잘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십시오.
2. 복음대로 살며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믿고 믿는 복음대로 살고자 할 때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복음대로 사는 일은 내 뜻을 포기하는 일이고, 세상의 풍조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롬 5:1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앞에서 말한 한 사람은 아담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말한 한 사람은 우리 주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셨습니다. 특히 그 말씀을 순종하는 과정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을 믿지만 그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복음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아담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한인교회 초청으로 미국 시애틀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안내로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어가 바다에서 강을 따라 올라오는 장면입니다. 연어가 다닐 수 있게 수로를 만들고 한 쪽을 유리로 해서 연어가 오르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연어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중 온전한 연어를 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가 긁히고 찢겨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연어는 속살이 다 드러나 보이기도 하고 뼈가 보이는 연어도 있었습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물살에 섞여있는 모래, 돌조각, 나뭇가지에 부딪혀 생긴 상처들입니다. 게다가 어떤 때는 폭포를 거슬러 뛰어오르며 다친 상처들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이 세상풍조를 거스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풍조와 역행하는 도중 감당키 힘든 고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복음대로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많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우리 사회 한 복판에서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갖가지 청탁과 불순한 로비를 거절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 음란한 세대 가운데 성결하게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거짓과 술수가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 정직하게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그 십자가 잘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십시오.
3. 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제자들의 사역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1:8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 어떻게 그 말씀대로 실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은 한 마디로 고난과 싸우는 이야기들입니다.
3-4장을 보면 사도들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다 붙잡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5장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7장에는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8장에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사도 외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무르지 못하고 흩어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2장에는 야고보 사도가 칼에 찔려 순교하고, 베드로는 또 다시 옥에 갇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13장 이후에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역시 사도 바울이 수없이 박해를 받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고난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행 1:8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큰 고난을 당하게 되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그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대로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은 모두가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모든 고난을 넉넉히 이겼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일전에 우리교회 전도대원 가운데 한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어느 집을 방문했답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나오면서 다짜고짜 욕을 하며 폭언을 해대더랍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가며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무척 당황스럽더랍니다. 그 집주인이 끝내는 분이 안 풀렸는지 부엌으로 뛰어가더니 소금을 뿌리더랍니다. 그래서 소금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전도대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도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전하려 애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때로는 두렵고 힘겨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그 십자가 잘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십시오.
이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주간입니다. 우리가 이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믿으며 받게 되는 고난을 견뎌내면서, 복음대로 살며 받게 되는 고난을 견뎌내면서, 그리고 복음을 전하며 받게 되는 고난을 견뎌내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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