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사람들
레 15:31
여러해 전에 깜짝 놀랄만한 분이 우리 교회에 새가족으로 등록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삼환 나우빌 자리에 백운암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기거하는 당시 60대 여자 어르신이 교회에 등록하신 것입니다. 이분은 절에서 허드레 일을 하시면서 몸을 의탁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것입니다. 아마 절에 계신 분들 모르게 교회에 나오신 것 같습니다.
이분이 주일 출석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도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새벽기도회에 나오실 때마다 목욕재개를 하셨습니다. 당시 5시에 새벽기도를 할 때인데 매일 3시 반에 일어나셔서 목욕재개를 하고 정성껏 준비를 하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꼭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는데 왜 구지 매일 목욕재개를 하십니까?” 이 분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전에 부처 앞에 새벽 예불드릴 때도 매일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그냥 나올 수는 없지요”
제가 이분께 큰 도전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에게 이와 비슷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출 30:18-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소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성전에 물두멍 즉 큰 물그릇을 만들어 두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들이 제단으로 나아갈 때 또한 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게 하신 것입니다. 만일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지 않고 제사를 집전하게 되면 죽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자신을 깨끗하게 씻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명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은 깨끗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그 영까지 깨끗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추하고 부정한 모습으로 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엄히 명하신 것입니다. 물두멍 앞에서 손과 발을 씻으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까지 정결하게 한 뒤에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올 때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몸도 정결하고, 마음도 정결하고, 무엇보다 우리의 영이 정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깨끗하지 못한 채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되면 그 예배는 헛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예배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깨끗하다는 것과 더럽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 원어로 깨끗함은 ‘타호르’(Tahor)라는 말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정결’이라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에는 ‘Cleanness’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더러움은 ‘타메’(Tame)라는 말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부정’이라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에는 ‘Uncleanness’라고 번역했습니다.
우선 이 깨끗함과 더러움은 위생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집안이 청소를 잘 해서 깨끗한 상태, 옷을 잘 빨아서 깨끗한 상태, 그리고 목욕을 잘 해서 몸이 깨끗한 상태를 타호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집 안을 청소를 잘하지 않아 더러운 상태, 옷을 제대로 빨지 않아서 더러운 상태, 그리고 목욕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더러운 상태를 타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깨끗함과 더러움은 심리적인 개념도 아닙니다. 이 타호르와 타메는 어떤 음식을 보고 깨끗하게 느끼거나 더럽게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을 보고 청결하게 느끼거나 불결하게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깨끗함과 더러움은 전적으로 제의적인 개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 합당하면 타호르 즉 깨끗한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 합당치 않으면 타메 즉 더러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지 않으면 깨끗한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깨끗하면 깨끗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더러우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함과 더러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이 깨끗한 지 더러운 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레 11장에서 15장은 정결의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더러운가를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씻을 것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깨끗해 질 수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이 깨끗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올 때 깨끗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 삶이 깨끗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11장을 보면 먹는 음식법에 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깨끗한 것이 있고 더러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깨끗한 것을 먹어야 하고 더러운 것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식생활에서도 깨끗함을 지키려고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전 10:31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고 마실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먹고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식욕을 탐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나치게 미각을 즐기려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나치게 몸 생각한다고 음식을 가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2장을 보면 출산법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깨끗하게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새생명이 축복 가운데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과정이 하나님 보실 때 깨끗한 것입니다.
레 13-14장은 소위 차라아트 법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입는 옷, 주거 시설, 문화적 환경과 사회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삶의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날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 보실 때 깨끗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레 15장은 성생활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성(性)을 깨끗하게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란한 성생활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음란한 세상 풍조 속에서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부부사랑 안에서 성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잘 가꿔가야 합니다. 그럴 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깨끗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깨끗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남극이나 북극 지방을 가보면 빙하가 흐르고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이 바다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빙하 속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푸른 비취색을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깨끗하게 보입니다. 겉은 하얀 얼음인데 그 속은 왜 저렇게 파랄까?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눈이 다져져 얼음이 된 빙산은 빛 가운데서 흰 색과 파랑 색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눈부시게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우리의 삶을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전염을 막아야 합니다.
레 11장에서 15장까지의 정결의식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더러움이 전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1:2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죽은 동물은 먹거리로서는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더러운데 이 죽은 동물을 만지는 것도 더럽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더러움이 전염이 된다는 것입니다.
12: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출산한 여인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기 전에는 외부와 접촉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더러움이 전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3:4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나병환자는 격리된 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움이 전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15:4-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출병이 있는 자가 눕는 침상은 다 부정하고 그가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그의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은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도 삼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깨끗하지 않은 것들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깨끗한 것들을 쉽게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더러움이 전염되어 오염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더러워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지난 11일 전북 김제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13일 인근 고창까지 전염이 되어 정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구제역은 발굽을 가진 가축에 나타나는 제1종 법정전염병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되는데 치사율이 최고 55%에 달해 가축 흑사병으로 불립니다. 문제는 전염성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다음해 4월까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이 때 소 15만864마리, 돼지 331만8천298마리 등 총 347만 마리가 살 처분됐습니다. 이 때 살 처분 보상금 등 피해액만 2조7천383억 원에 달했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렇게 전염이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던 농장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전국적으로 피해가 확산되었습니다. 정부가 전염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동을 제한했습니다. 살아있는 가축들 수백만 마리를 살 처분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움이 놀라운 전염력으로 확산됩니다. 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가정과 개인에 큰 타격을 입힙니다.
사실 서구 기독교 국가는 백년전만해도 기독교 세계관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속주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삽시간에 전염되어 서구 기독교 국가들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동성애 문제가 삽시간에 확산되었습니다. 교회들마저도 전염이 되었습니다. 서구 기독교회가 이런 더러움의 전염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염을 막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 방역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영적 청정지역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을 영적 청정지역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잘 씻어야 합니다.
레 11장에서 15장까지의 정결의식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러워진 사람들이 다시 깨끗해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연약합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연약해서 깨끗함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때론 더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살다보면 더러운 것과 접촉하게 되고, 더러운 일을 저지르게 되고, 또 더러운 것을 전염시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다시 깨끗해 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깨끗해질 수 있는 길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리하는 것입니다. 레 11:32-3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나무 그릇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자루에든지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그것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 그릇을 깨뜨리라”
일단 그릇이나 옷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물로 씻어내라는 것입니다. 물로 잘 씻어지지 않는 것이면 깨뜨려버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더러운 것은 정리해서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더러운 일을 저질렀거나 더러운 것과 접촉이 있을 경우 빨리 끊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리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재발을 막는 것입니다. 레 14:8-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로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더러움에서 벗어나려면 더러운 것을 정리한 뒤에 다시 재발되지 않는 장치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다시 더러운 것을 접촉하지 않도록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더러워질 빌미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더러움에서 벗어나려면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더러운 것과 차단해야 합니다.
셋째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레 15:3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 유출로 부정한 여인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하나님 앞에 더러운 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더러운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러운 일을 저질렀다면 깨닫고 정리한 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실 때 더럽고 추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마치 쓰레기 더미나 시궁창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 살면서 때로는 알면서 또 때로는 모른 채 우리가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추천 설교 > 박봉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도호 14:9 (0) | 2016.12.01 |
---|---|
신앙의 핵심을 배우자막 12:28-34 (0) | 2016.12.01 |
믿음, 구원의 핵심 롬 10:9-10 (0) | 2016.08.26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6-8 (0) | 2016.05.23 |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 행 17:1-9 (0) | 2016.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