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 3-11 하나님의 위로 (2)
스트레스(stress)란 원래 물리학에서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물리학에서는 ‘물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힘’을 스트레스라 합니다. 스트레스란 말은 캐나다 내분비학자 H. 셀리 박사가 물리학의 개념을 신체 반응에 도입하여 지금처럼 유명해졌고 이제는 일상생활의 용어처럼 누구나 사용하는 보편적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스트레스’란 개체에게 부담을 주는 육체적, 정신적 자극이나 이러한 자극에 생체가 나타나는 반응을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긴장, 불안, 짜증을 스트레스라 합니다. 셀리 박사가 스트레스와 관련된 이론을 책으로 내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셀리 박사가 스트레스와 관련해 많은 연구를 하고 그 이론을 약 500쪽에 달해 정리했습니다. 그것을 책으로 내기 위해 출판사에 갖다 줬더니 출판사에서 읽어 보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다고 셀리 박사에게 간단하게 요약해 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셀리 박사는 30쪽의 분량으로 요약해 보냈습니다. 그래도 출판사측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출판사측은 조금 더 쉽게 말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셀리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개를 적으로 보느냐 친구로 보느냐에 달린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개를 적으로 보면 무섭고 두렵지만 친구로 보면 반갑고 좋습니다. 적으로 보면 스트레스가 되고(distress디스트레스) 친구로 보면 기쁨이 될 수도 있다(eustress유스트레스)는 말입니다. 결국 외부와 내부에서 일어나는 압력의 결과는 내 마음 가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요컨대 스트레스는 마음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컨트롤(control)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한다면 영육 간에 유익이 될 줄 믿습니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 급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가 `위로 산업`이라 것입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줄 애완용 동물이 인기를 끌고, 싱글 여성들은 “남자 친구 팔베개 쿠션”을 애용하기도 합니다. 또 술을 판다기 보다는 말상대를 해주는 토크 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 호주에서 유행하여 전 세계로 널리 퍼진 프리 허그(Free Hug 안아드립니다.)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후안 맨’이라는 이름의 호주청년이 처음 시작해서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말보다는 한 번 따뜻한 포옹이 위로가 된다.”는 생각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안아주어 따뜻한 위로와 정을 나누어 주는 운동입니다. 이렇듯 위로 산업이 번창하고, 프리 허그 같은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위로에 굶주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대는 위로자 하나님을 만나야하고 먼저 위로 받은 자들은 또 다른 이들을 위로를 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1978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서거했습니다. 취임한지 겨우 33일만의 죽음이었습니다. 온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장례절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황이 짧은 임기동안에 특별히 임종직전에 남긴 일기문이 공개 되었습니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직장인들이여, 무직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건강한자들이여, 병든 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남을 위해서 슬퍼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간단한 기록입니다. 이 일기문이 온 세계에 공개되게 될 때에 제일 먼저 감동을 받은 것은
노벨 평화상 위원회입니다. 저들은 곧 감동을 표현으로 나타냈습니다.
깊이 심사숙고한 끝에 인도의 빈민굴에서 한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중동문제의 해결을 위해 수고한 카터 대통령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던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 테레사에게 주게 된 사건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위로가 필요로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서로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귀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3)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모든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말씀입니다. 골드스미스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이라도 거기 어떤 위로가 동반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신비롭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비참한 상황 속에 위로의 씨앗을 함께 담아 두십니다. 아멘입니다. 우리가 겪는 환난 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문학의 대가요 유명한 수필가인 찰스 램은 심한 말더듬이어서 대학 입학도 하지 못했고 그 누이는 정신병에 걸려 그 어머니를 살해 했으나 그 누이를 평생토록 간호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문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존 밀턴은 44세에 소경이 되고 말았으나 위대한 저서 ‘실낙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베토벤도 음악가로서는 없어서 안 될 청력을 상실 했으나 그 이후에 더욱더 훌륭한 대명곡을 작곡해 냈습니다. 아름다운 찬송을 많이 작사한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어렸을 적에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되었으나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귀한 찬송시를 많이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인생의 처절한 시련과 아픔들과 함께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 다윗, 욥…….
성도 여러분!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을 치우면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냇물 속에 돌들이 있기 때문에 시냇물은 흘러가면서 돌에 부딪쳐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돌과 노래, 아픔과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위로는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듬뿍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는, 환난 중에서 위로 하십니다.(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고난이라는 것은 우릴 참으로 힘들게 하지만 우리를 정화시키고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자에게는 고난은 참으로 유익한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아직 가공이 불가능한 광물로 남아있던 시절 보석상 집 딸과 젊은 세공사가 사랑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딸을 가진 세상의 아버지들이 다 그러하듯 세상의 사내들이 전부 사윗감으로는 흡족치 않았습니다. 하물며 볼품없고 가난한 세공사 주제에 자신의 딸을 넘보다니 굴뚝새가 공작새에게 청혼을 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공사는 세계 제일의 세공술을 간직하고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만약 청혼을 거절하면 세계 제일의 세공사를 잃어버릴 것 같고, 만약 청혼을 허락하면 자신이 애지중지 길러온 무남독녀를 잃어버릴 국면이었습니다. 보석상 집 주인은 심사숙고 끝에 세공사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갈아라. 다이아몬드를 갈아서 보석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딸을 주겠다.' 세공사는 그날부터 만사를 젖혀놓고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강철보다 두 배나 강한 강도를 가진 광물로 지구상에서는 그것을 깎아낼 물질도 없었고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공사는 포기하지 않고 다이아몬드와 씨름한 끝에 마침내 다이아몬드를 깎아낼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였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깎아낸다.’
고난 속에서 정금이 나오고 고난 속에서 강한 다이아몬드가 탄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고난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찾아옵니다.
아이러니(irony)하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는 위로하십니다. 죄송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교회가 자립하지 못하고 있어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 때 따뜻한 말과 선교는 저에겐 큰 위로가 됩니다. 그 가운데 느끼는 것인데요. 주는 복이 더 크지만 받는 것 또한 복입니다. 받는다는 것이 때론 불편하지만 왜 복이 된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를 체험하게 됩니다.
②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자랑(간증)할 수 있습니다.
③ 소중한 분들을 얻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으로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위로 받은 자는 위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4)
고난에는 선교적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고난이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난 중에 받은 하나님의 위로로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선교적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습니까? 안 아파 보았던 사람보다는 먼저 아파 본 사람이 병중에 있는 자를 더 잘 위로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자가 부친상을 당한 자녀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쿤타리카라는 깊은 산에는 300여 종류의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데 영국의 리즈벨리 탐험대가 그곳에서 이상한 현상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어느 날 아침, 온 산이 떠나갈 듯이 원숭이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격인 원숭이가 세상을 떠났기에 슬퍼하는 표시였습니다. 둘째는, 부부 원숭이가 서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작은 새끼가 죽었는데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원숭이 한 마리가 커다란 구렁이에 칭칭 감겨 죽어가고 있는데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돌을 던지면서 그 구렁이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원체 커다란 구렁이라 잡은 원숭이를 다 잡아 삼키자 모든 원숭이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슬프게 울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영국의 리즈벨리 탐험대는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참여할 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아프리카의 쿤타리카 산 속으로 보내자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짐승들도 하는 위로를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먼저 받은 자들이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후서라는 성경을 시작하면서 시작과 함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잘 견딜 수 있도록 당신이 이제는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일어나는 자가 되었다면, 내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면, 이제는 당신 곁에 당신과 같은 그런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에게 찾아가서 그 사람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당신이 곧 힘이 되어 주는 위로자가 되라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가슴 속에 원인 모를 분노와 슬픔이 앙금처럼 고여 있다면
주님께서 오늘 당신을 먼저 위로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고 체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 놓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가슴이 답답하거든 이 하나님 앞에 당신의 심정을 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을 것입니다. 위로를 받으셨다면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먼저 된 자들에게, 먼저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의식을 가지고 나 같은 고난을 당하는 자, 또 다른 나를 찾아가 함께하시고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한다면
세상은 여러분으로 인해 조금 더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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