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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서강해/제1강 우리에게 뜨거움을 주옵소서(1:1-7)

제1강 우리에게 뜨거움을 주옵소서(1:1-7)  

“주여! 우리에게 뜨거움을 주옵소서!”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뜨거움을 심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 느꼈던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후 386년 가을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교회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어떤 교수 한 사람이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조용히 의자에 혼자 앉아서 깊은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어서는 안되는데. 내가 왜 이럴까?” 자신의 방탕한 삶을 되돌아보면서 깊은 고뇌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 하나가 지나가면서 부르는 노래 소리가 우연히 그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가운데 그의 귓가에 강하게 울리는 가사가 한 구절 있었습니다. 라틴말로 “톨레 레게! 톨레 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책을 펴서 읽어라! 책을 펴서 읽어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신비스런 어떤 강한 힘에 이끌려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옆에 있던 책을 한 권 집어들었습니다. 그 책은 로마서를 베낀 사본이었습니다. 책을 펼쳤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롬 13:13~14의 말씀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에 그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방탕한 삶을 다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서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성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그의 삶이 180도로 완전히 바뀌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 뒤에 약 천 년이 흘렀습니다. 어거스틴 파의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가 주로 가르친 과목이 로마서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교황청에 볼 일이 있어서 로마로 건너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로마에 가면 모두가 빌라도의 계단이라고 하는 높은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자기가 죽어서 연옥에 가게 되어 당할 고통을 미리 맛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그 관례대로 무릎을 꿇고 기어서 힘들게 그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서 아주 강하게 솟구치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롬 1:17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에게 들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길로 독일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마틴 루터입니다.
하나님은 마틴 루터로 하여금 로마서를 통해서 중세의 암흑시대에서 기독교를 건져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서에 의해서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칼빈도 감화를 받았습니다. 요한 웨슬레도 감화를 받았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에 독일 교회가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졌을 때 독일 교회에 새로운 강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바로 이 로마서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로마서가 발견되고, 해석되고, 로마서에 있는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그 시대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께서 우리 승동교회를 위해서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하나 생각해볼 때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워서 목이 메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그동안 꽉 매어놓았던 것을 하나하나 풀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가평수양관에 가보았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수양관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농지를 대지로 바꾸어주셔서 이제는 합법적으로 아름다운 수양관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명의도 우리 승동교회 명의로 이전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양관의 관리인이지만 늘 술주정이나 하면서 거금을 주기 전에는 이사가지 않겠다고 하던 장씨라는 사람도 자발적으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망치소리, 우렁찬 수양관 건축의 망치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몇 날이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건축의 망치소리, 우렁찬 망치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저는 요즘 계속 제 마음속에 울려퍼지는 노래 가사가 하나 있습니다. “망치소리 들리며.” 앞의 가사와 뒤의 가사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만 계속 제 마음속에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이 놀라운 일에 우리 승동의 가족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기도로 동참해주시고, 물질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적으로 중대한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는 오늘부터 이 귀한 로마서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묵상해보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기적의 역사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축복의 역사를 일으켜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 해 전에 새벽기도회 시간을 통하여 롬 1:1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 참석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마서는 가면 갈수록 은혜가 더욱더 깊어지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심정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심정으로 이 시간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기 때문에 로마서를 개관해보고 또 로마서의 제일 첫 장, 첫째 절을 묵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이 1장에서 8장까지고, 두번째 부분이 9장에서 11장까지고, 세번째 부분이 12장에서 마지막 16장까지입니다. 첫번째 부분인 1장에서 8장까지는 우리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놀라운 메시지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놀라운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나서 10년이 채 안되어 로마에는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원형경기장에 끌려가서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성도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받고, 고난받고, 순교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7에 있는 말씀대로 저들은 구원의 뜨거운 확신과 감격을 가지고 모든 시련을 넉넉히 이겨내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구원의 확신을 반드시 되찾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9~11장까지의 두번째 부분은 사도 바울이 선교적인 동기에 의해서 기록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배척하였습니다.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 바람에 복음의 물결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물결은 이방세계로 흘러흘러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우리 민족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복음의 세찬 물결은 12억의 중국을 향하여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 지역의 모슬렘을 향해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이방인의 수가 충만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다시금 잃었던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세계 선교를 향한 놀라운 비전이 다시금 불일 듯 일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번째 부분이 12장에서 16장까지입니다.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과연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분별해서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로마서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롬 1:1의 말씀을 잠시 묵상을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과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가시기 전까지 1:1의 말씀을 다 외우셔야 합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못 외우시는 분은 안 내보냈으면 좋겠어요. 1:1 말씀을 같이 읽어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말씀을 이번 한 주간 동안 계속해서 묵상해야 할 줄 압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렇게 해보십시다. 저같은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박상훈은 목사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합니다. 임마누엘 성가대를 지휘하시는 조병욱 집사님은 이렇게 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조병욱은 안수집사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임마누엘 성가대 지휘를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렇게 우리 각자의 이름을 대입하면서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더욱 넘치고 그로 인한 뜨거운 감격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자기 자신을 자세히 소개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에 대해서 로마 교인들에게 소개를 하는데, 1:1을 보면 세 가지로 소개를 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2)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3)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그 뜨거움, 그 감격을 우리가 반드시 맛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바울도 그 당시에 노예라고 하는 신분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제일 먼저 조금도 주저함없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노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를 좋아합니다.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겉으로 보기에 안 그런 것 같지요? 겉으로는 세련되게 처신을 잘해서 제가 얼마나 명예를 좋아하는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저도 제 자신이 어느 정도로 명예를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얼마나 명예를 좋아하는지를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1986년에 총신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해마다 총회는 6월에 강도사 고시를 치릅니다. 그런데 강도사 고시를 준비하는 중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강도사 고시에 부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증거들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혈기에 저와 동기생들이 의분을 품었습니다. 우리가 강도사가 안되면 안됐지, 이와 같이 부정한 강도사 고시는 치를 수 없다고 하고 그해 6월에 우리 동기생들이 전무후무하게 전부 강도사 고시를 보이코트해 버렸습니다. 시험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바로 한 달 뒤인 7월에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습니다. 나중에 제 동기생들은 그해 가을에 다시 강도사 고시를 쳤습니다만 저는 미국에 가버리는 바람에 강도사 고시를 치를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도 오랫동안 전도사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그 자격지심에 얼마나 설움을 많이 겪었는지 모릅니다. 동기생들은 다 목사가 되었는데 저는 강도사는 고사하고 계속 전도사로 있어야 했습니다. 제 생각에 남들이 저를 제대로 대접을 안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몇 해 뒤에 겨우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제가 어깨를 제대로 펴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목사면 어떻고, 강도사면 어떻고, 전도사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 하나 떨쳐버리지 못했던 한심한 제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작년 연말에 잠시 귀국을 했습니다. 그때 장로님 가운데 한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려보았습니다. “장로님, 저 박사학위 안 받으면 안되겠습니까? 목회하는데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냥 공부만 다 마치고 학위는 안 받고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승동교회의 자존심이 있고, 체면이 있으니 기필코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를 쓰고 박사학위를 받기는 받았습니다.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기서 제 속마음을 여러분에게 고백하겠습니다. 제가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러 가기 바로 직전에 룻기 강해설교집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책이 나왔을 때 제가 제일 먼저 확인해본 면이 어느 면인지 아세요? 첫 장을 넘기면 저자 약력이 나옵니다. “박상훈!” 이렇게 이름이 나와 있고 여러 가지 약력이 나옵니다. 몇 줄 죽 내려가면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트리니티 에반젤리칼 디비니티 스쿨) 졸업!”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아직 졸업식을 하기도 전인데요. 그 옆에 괄호 속에 “Ph.D”라고 써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수십 번도 더 그 책을 덮었다 펼쳤다 하면서 보고 또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는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대단한 인물로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옳지 못한 생각이 내 속에 도사리고 있구나.” 사도 바울과 나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주님 앞에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아직도 엄청나게 더 깨져야 되겠구나!”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족속이었습니다. 왕의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존경받는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설 정도였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잡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뒤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자랑거리, 육체적인 자랑거리들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그 한 분만을 사랑하고, 그 한 분만을 자랑하는 참된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뒤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했습니다. 세 번을 태장으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돌로 맞았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여행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추위와 싸웠습니다. 더위와 싸웠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목마른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것은 하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나는 종이니까. 나는 주인이 아니니까.”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왜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섭섭한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까?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속상할 때가 왜 그렇게 많고, 가슴아플 때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내가 누구인가?” 그 사실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내가 예수님의 종이 아니라 아직도 내가 나의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종이 된다고 하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내 인생도 없습니다. 내 주장도 없습니다. 내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온전히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와 같이 물을 때에 저와 여러분 모두의 대답이 “아멘!” “아멘!” “아멘!”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사도 바울의 뜨거운 감격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의 제2여전도회에서 KAL기를 폭파했던 김현희를 강사로 해서 간증집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갸냘픈 여성의 몸으로 어떻게 115명이나 되는 무고한 생명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송두리채 빼앗을 수가 있었을까? 김현희가 쓴 수기인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책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김현희는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친필로 자기가 할 임무를 써주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에 완전히 감격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임무에 자기 생명을 바치기로 결단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가 친필로 써주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뜨거운 감격이 있었겠습니까? 나같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예수께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시고 나에게 이 귀한 사도의 사명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바울의 마음에는 뜨거운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자기를 동등시할 때에 바울은 그런 인간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뿐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쟁이들도 모조리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메섹에도 예수쟁이들이 많이 숨어산다는 소문을 듣고 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찾아와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그를 바꾸어놓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현희가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집회를 할 때에 간증을 끝내고 나서 마지막으로 우리 성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를 위해서 찬송가 405장을 다 같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이 찬송은 나를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가 있었다면 그도 405장을 불렀을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나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목사로 세워주셨고, 장로로 세워주셨고, 집사로 세워주셨고, 권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그 놀라운 은혜, 그 뜨거운 감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405장 1절만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불러보시겠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세번째로, 바울은 자기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도 바울은 복음에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살고 복음을 위해서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가슴이 벅차오르는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이 복음은”이라고 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복음이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던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침묵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입을 열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도 제일 처음에 복음이라는 단어로 시작을 하고, 16장 제일 마지막도 복음이란 단어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마디로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복음에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저도 이번 기회에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는 군생활을 해병대에서 했습니다. 여러분, 해병대를 잘 아시지요?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합니다. 그 해병대 가운데서도 저는 가장 기합이 세고 훈련을 많이 받는 보병 소대장을 하면서 제대를 했습니다. 알고보면 저도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저를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제가 화가 나면 귀신까지 때려잡는 사람입니다.
제가 제대하기 얼마 전에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때 여의도에서는 80년도 복음화대성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제가 그 집회에 참석을 했다가 심령이 깨어지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동안 죄에 완전히 찌들어빠진 모습, 죄로 비참해진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영이 맑아지니까 제가 지고 있는 죄의 짐이 얼마나 엄청나고 무거운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텐데 내려놓을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을 많이 쳤습니다. 군대에 복귀를 해서 고통스런 마음을 해결받기 위해서 이불을 싸들고 숙소 근처에 있는 군교회에 가서 밤을 지새우면서 목이 터져라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기도하다가 목이 터져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괴로워서 아침을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시간이 날 때마나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나같은 죄인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결국은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시고, 모든 죄의 짐을 다 대신 져주셨습니다. 저를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그때의 감격이란 여러분에게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목이 터져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할 정도로 괴로웠던 제 마음이 완전히 자유함을 받게 되었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때부터 저는 완전히 복음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복 상의 양쪽 주머니에 기드온에서 출간한 신약 성경 두 권을 넣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성경책을 펴들고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은혜에 젖어들어서 웃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면 아예 보기가 싫었습니다. 신문도 보기 싫고, 잡지도 보기 싫고, 시간만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예수를 믿는지를 먼저 물어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나를 찾아와주신 예수, 나를 사랑해주신 예수, 내가 영원토록 찬양해야 할 예수님을 있는 성의를 다해서 그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성경을 꺼내 주면서, “이 성경을 꼭 읽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세요”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군대에서 참모회의를 할 때도 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제가 보고할 차례가 되면 제가 일어섭니다. 해병대는 장교들도 군기가 대단히 셉니다. 선배 장교들이 후배 장교들을 구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군기가 센데도 선배 장교들조차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일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성경 구절을 하나 외웁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대대장님,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랑하는 선후배 장교님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이 예수를 믿고 이 다음에 죽어서 하늘 나라에 가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제가 보고해야 할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를 할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첫사랑이 이제는 식어졌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구원에 대한 뜨거운 감격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로마서를 통해서 먼저 제 자신이 다시 한번 뜨거워지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제 자신이 반드시 회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 뜨거웠던 첫사랑을 다시금 회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도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첫사랑을 이 로마서를 통해서 다 회복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가 아까 숙제를 하나 내드렸지요? 롬 1:1 말씀을 다 암송하는 것입니다. 롬 1:1 말씀을 우리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넘어가서 6절을 보시면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고 살아가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목사로 불러주시고, 권사로 불러주시고, 장로로 불러주시고, 집사로 불러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귀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뜨거운 감격이 다시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거룩한 성일을 허락하셔서, 주의 전에 올라와서 경배 드리며 주신 말씀을 통하여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가졌던 뜨거움과 감격을 저희들이 맛볼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도 나같은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종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입을 열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그 놀라운 사실과 특권을 하시라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뜨거움을 저희들에게 허락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번 회복할 수 있는 우리 승동의 가족들이 다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우리 모두가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주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들도 주님을 위하여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거룩한 결단이 이 시간에 불일 듯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앞으로 로마서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계속 묵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에게 놀라운 변화의 역사, 기적의 역사, 축복의 역사를 반드시 허락해주실 줄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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